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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따기의 영화보기] 인간의 내면 및 심리 상태를 스크린으로 재현

36. 표현주의(Expressionism)

자연 혹은 현실적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realism)의 상대적 개념.

아티스트가 갖고 있는 주관적 가치관, 감정 혹은 꿈, 환상 등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의미, 현실의 재해석, 새로운 창조 시도 등을 예술 형식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표현주의의 특징을 언급할 때 사실주의의 특성도 병행돼 설명되고 있다.

사실주의 영화이론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카메라는 현실을 사진처럼 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표현주의 미학을 전파 시킨 이론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명저 〈예술로서의 영화 film as a Arts>(1933)를 통해 ‘영화 매체는 현실적 한계를 뛰어 넘어 재구성하거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른하임은 ‘슬로우 혹은 패스트 모션, 이중 인화, 편집을 이용한 시, 공간의 재배치 등 현실을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변형하는 것이 표현주의의 본질’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영화 제작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차 도착 The Arrival of a Train>(1896) 등으로 영화 역사의 태동을 알렸던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ere)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 현실 풍경을 그대로 카메라 렌즈에 맞추는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반면 마술사 출신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달나라 여행 A Trip to the Moon>(1902)을 통해 포탄이 달 표면을 맞추자 얼굴을 찡그린다든지 하는 상상력을 동원한 풍성한 창의적 장면을 삽입 시켜 표현주의 형식의 장점을 각인 시킨다.

네오리얼리즘, 다큐멘터리 등이 리얼리즘 전통을 계승했다고 한다면 독일에서 번성한 표현주의, 프랑스 인상파 및 초현실주의, 러시아 형식주의 이어 20세기 들어 재조명 받은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표현주의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1차 대전 패전 이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은 전쟁 책임과 막대한 배상 문제의 해결을 요구 받는다.

국제 정치계의 압박과 함께 독일 내부에서는 패전에 따른 궁핍과 황폐, 가치관의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만연하게 된다.

화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는 색채를 의도적으로 왜곡 시켰고 연극인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는 과도한 감정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는 공연을 펼친다.

예술계의 흐름을 간파한 로베르트 비네(Robert Wiene) 감독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1920)을 통해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발아 됐음을 선포한다.

정신병 환자의 망상 속에서 연쇄 살인범이 저지르는 만행을 묘사한 작품은 헨릭 갈린(Henrik Galeen), 폴 베거너(Paul Wegener) 공동 연출의 <골렘 Der Golem>(1915)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1920년대 독일 국민들이 느꼈던 불안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걸작으로 공인 받고 있다.

이미지 왜곡과 과장, 비틀어진 건축물, 명암의 선명한 대비, 불안감을 조성해 주는 안정적이지 못한 카메라 앵글, 본능적 성적 욕구, 정신이상자의 비이성적 행동, 사회 질서 파괴, 분노감에 휩싸여 있는 인물 등은 이들 장르의 단골 설정이 된다.

패전으로 정치, 경제가 붕괴됐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영화계만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1917년 제국주의 선전을 위해 정부 주도로 설립된 영화사 우파(UFA, Universum Film Aktien Gesellschaft)의 역할이 컸다는 지적.

UFA는 중소 영화사들이 결집돼 정부로부터 아낌없는 재정 지원을 받아 고급 인력과 제작 설비를 갖추게 된다.

이런 기반으로 인해 UFA 소속 감독들은 전후 독일 영화의 부흥을 선도하게 된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은 프리츠 랑(Fritz Lang)의 〈마부제 박사Dr. Mabuse The Gambler>(1922), 인류 최초 살인자 행적을 다룬 〈엠 M>(1931),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감독의 〈노스페라투 Nosferatu〉(1922) 〈마지막 웃음 The Last Laugh〉(1924) 등이 공개된다.

인간이 로봇 인간에 의해 통제 당한다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1927)는 노동자와 도시 기획자간의 차별로 인한 계급 사회 대한 비판, 비관적인 디스토피아 제시, 웅장한 건축물을 통한 세련된 미장센을 제시한다.

<메트로폴리스>는 1984년 이태리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가 사운드트랙을 삽입 시켜 재공개된 뒤 2002년 개봉 75주년 기념 123분 복원판 상영, 2010년 145분 복원판 리바이벌 상영 등 꾸준한 주목을 받으면서 독일 표현주의 걸작으로 회자된다.

당시 독일 영화인들은 * 예술의 본질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허물어 트리는 것에 있는 것이며 집합적이고 체계적인 것 보다 모순과 대립적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교과서적인 영상 전개에 대한 철저한 반기를 들면서 수많은 형식 파괴를 시도한다.

이같은 스타일 특징은 할리우드로 전파돼 공포물과 필름 느와르 번성에 절대적 기여를 하게 된다.

연극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와중에 음악으로 해설 추가, 관객들에게 대화 시도, 연극 무대 장치를 드러내는 등 관객들이 공연에 완전 몰두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런 시도는 ‘거리두기 효과 Alienation Effect’로 명명된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1960)에서 좀도둑 미셸이 우발적으로 경찰을 죽이고 피신하는 와중에 카메라를 쳐다 보고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 등은 ‘거리두기 효과’에서 차용한 것이다.

듀상 마카베제브 (Dusan Makavejev) 감독은 (1971).

시인 큐버크는 뉴욕 시내를 찌그러진 철모를 쓰고 돌아 다닌다.

프로이트 제자이자 정신 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가 인간은 성적 표현과 쾌락을 통해서만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유럽 국가 유고에 거주하는 여공이 섹스를 나누는 남자로부터 목이 잘려 죽지만 참회의 노래를 부르는 남자를 떨어진 목이 미소를 지으면 용서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3가지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극은 시종 실험적 스타일로 전개돼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음을 입증 시킨다.

장 뤽 고다르는 <사랑과 경멸 Contempt / Le Mepris>(1963)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1962) <여자는 여자다 (A Woman Is a Woman / Une femme est une femme>(1961) 등을 통해 진행됐던 화면이 전혀 별개의 장면으로 이동되는 점프컷을 비롯해 카메라 각도가 흔들리거나 자유자재로 회전하며 빈번한 트래킹 쇼트, 줄거리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음악과 자막 삽입 등을 시도해 독일 표현주의 스타일을 더욱 유행 시키는 첨병 노릇을 해낸다.

이런 시도 와중에 공개된 빅토리아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 The Bicycle Thief / Ladri Di Biciclette>(1948).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태리. 모든 국민이 곤궁한 생활에 처한 상황. 벽보 붙이는 일용직을 얻기 위해 침대 시트를 팔아 자전거를 마련하지만 생계 도구인 자전거를 도둑 맞아 실직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자전거를 찾기 위해 로마 거리를 배회하면서 겪는 곤궁한 일상이 담담하게 묘사돼 이태리 스타일 사실주의인 네오 리얼리즘의 태동을 알린다.

영화학자 루이스 자네티(Louis Giannetti)는 명저 <영화의 이해 Understanding Movie>를 통해 ‘영화계는 사실과 표현주의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닌 상호 보완적이며 융합적인 관계로 발전되어 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감독의 〈카메라를 든 남자 The Man With A Movie Camera / Chelovek S Kinoapparatom>(1929)에서는 카메라를 매고 도시 풍경을 찍어대는 한 사나이는 벌어지는 풍경을 가감없이 촬영하는 동시에 주관적 관점으로 도심의 이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런 서술 방식은 사실과 표현주의 방식을 융합 시킨 스타일로 해석 받았다.

1933년 나치 히틀러 집권 이후 프리츠 랑, F. W. 무르나우 등 유능한 영화인들이 창작 자유를 찾아 미국 시장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에서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영화학자들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이 연속적으로 발표한 심리 스릴러, 1930년대 공포물을 유행 시킨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1931) <드라큘라 Dracula〉(1931),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 Touch of Evil〉(1958), 팀 버튼(Tim Burton)의 <프랑켄위니 Frankenweenie>(2012)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Sweene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2007) <유령 신부 Corpse Bride / Tim Burton's Corpse Bride>(2005) <슬리피 할로우 Sleepy Hollow>(1999) <에드 우드 Ed Wood>(1994) <배트맨 Batman>(1989) 등은 명암을 대비 시킨 영상 스타일 및 카메라 구도, 반사회적 행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는 것 등이 독일 표현주의의 규칙에서 감화를 받은 작품으로 언급하고 있다.

유럽 영화인들은 독일인들이 할리우드에 이주해서 공개한 작품을 독일 표현주의의 연장 선상으로 수용하는 것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미국 영화학자들은 ‘칼리가리즘 Caligarism’ ‘유사(類似) 표현주의 Pseudo-expressionism’ 등을 사용하자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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