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부 예술 새싹 키우기전국 청소년 대상 시와 정부·대기업 문화예술 프로그램 활발히 운영

미인과 석유의 나라로 불리던 베네수엘라 앞에 세계는 ‘음악강국’이라는 이름표 하나를 더해주었다. 2009년부터 향후 5년간 LA 필하모닉을 이끌어갈 최연소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와 세계 최고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 에딕슨 루이즈.

폭력과 마약 등 범죄가 끊이지 않던 환경 속에서 이들을 키워낸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세계 속에서 잔잔하면서도 강한 긍정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수의 선택된 이들이 아닌, 낮은 곳으로부터의 변화, ‘엘 시스테마’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국내에도 그러한 움직임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예술 영재를 발굴하고 후원해온 금호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 대원문화재단, 혹은 최근에 문광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설립된 한예종의 영재교육원의 행보와는 또 다른 형태다.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와 정부가 나서고 있고 실제로 ‘엘 시스테마’의 프로그램을 표방한 대기업의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작지만 신선한 움직임은 음악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지난 10일 서울시의 4개 투자출연기관은 저소득층을 위한 ‘희망플러스 통장’의 MOU를 체결했다. 여기에 참여한 서울문화재단은 희망플러스 통장 가입자의 음악, 미술 전공자 자녀에 대한 교육비, 악기 대여비 등의 지원과 문화예술교육을 약속했다.

서울문화재단의 관계자는 “문화향유와 예술교육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 중인 “청소년 비전 Arts-TREE에 추가지원 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청소년 비전 Arts-TREE’는 서울문화재단이 야심차게 시행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지난 2004년부터 4년간 서울의 105개 청소년 동아리를 지원했던 ‘청소년 문화벤처단’이 발전된 형태로 문화예술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15개교를 선정해 음악, 연극, 뮤지컬, 전통예술의 분야의 전문가에게서 최대 15번의 교육을 받는 방식이다.

전문강사 이외에 현장체험학습과 비전제시를 해주는 프로젝트 마스터가 있는데, 음악에서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바리톤 김동규이 맡았고 연극, 뮤지컬, 전통예술 분야에서는 각각 연극배우 조재현, 뮤지컬 배우 남경주, 장고 연주자 김덕수 등이 그들이다. 올해 6월 첫 시행했다.

문광부 산하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00년 국악을 시작으로 현재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등 다섯 분야에 대해 예술강사를 파견해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원하는 학교에서 신처을 하면 강사를 학교에 배치해주고 연수를 받은 강사는 3월부터 12월까지 강의를 맡게 된다.

이는 방과후나 특기적성이 아닌 정규 과정 중에 포함해 진행하고 있으며 동아리 활동을 통해 심화학습을 한다. 올해만 4800개 학교가 신청했고 지금까지 교육을 받은 학생은 55만 명에 이른다. 반응이 좋아 작년 178억에서 올해 206억으로 예산도 매년 늘고 있다.

시와 정부 주도의 과정이 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반면 대기업이 진행하는 교육과정은 소수에게 보다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해 ‘해피뮤직스쿨’과 ‘해피뮤지컬스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해피뮤직스쿨’은 ‘엘 시스테마’를 표방해 탄생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 송영훈, 백주영(바이올린), 주희성(피아노), 현민자씨(첼로)를 교수진으로 하고 추가로 18명의 전문강사가 매주 1회, 일대일 레슨을 해주고 있다.

일년에 한 차례 줄리어드 음대 교수를 초빙해 마스터 클래스도 연다. 지난해 첫 도입해 45명을 선발한 ‘해피뮤직스쿨’은 올해 15명을 추가로 선발해 60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고 있다. 실력향상을 위한 꼼꼼한 학사플랜뿐 아니라 멘토링을 통한 인성적 자양분을 전한다.

‘해피뮤직스쿨’을 담당하고 있는 윤상준 매니저는 “클래식 음악공연을 함께 보거나 공연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적 소양 쌓을 수 있게 돕고 있다”면서 “영재에게는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며 무엇보다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기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철학.”이라고 밝혔다.

‘해피뮤지컬스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예술교육지원센터와 공동운영하며 연출가 한진섭, 뮤지컬 배우 남경주 등의 전문 강사들이 20명 학생에게 매주 2회 연기, 음악, 무용 등을 지도한다.

올해 3월에 시작해 8월 2기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 중이다. CJ문화재단은 ‘청소년 연극 프로젝트 연’을 통해 청소년들과 소통한다. 지난해 CJ영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 ‘청소년 연극 워크숍’이 확대된 ‘청소년 연극 프로젝트 연’은 서울, 수원, 전주, 창원 등에서 널리 진행되고 있다.

특정 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시행해본 결과 절반 정도가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라는 CJ문화재단의 관계자는 “그들에게 숨겨져 있던 심적 상처들을 치유하는 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풀 뿌리처럼 자라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지만 얼마 되지 않은 시간동안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0여년간 ‘엘 시스테마’의 변화를 체험해온 곽승 지휘자는 “‘음악을 통해 사회를 정화하자’는 의도로 아브레우 박사가 일생을 바쳐 해온 일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불우한 아이들이 자라나 사회의 이바지를 할 수 있게 해준 바람직한 사례.”라고 말했다.

오는 12월 14일과 15일 ‘엘 시스테마’의 산증인인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내한한다. ‘엘 시스테마’는 물론 다양한 음악교육방식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들을 통해 낮은 곳으로부터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이자 그러한 움직임들이 더욱 크게 자라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다.

■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청소년 순화 목적서 시작, 클래식 인재 양성 으로 발전


베를린 필의 전ㆍ현직 지휘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사이먼 래틀이 격찬해 마지 않던 ‘엘 시스테마’의 역사는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문화부 장관이자 경제학자, 더불어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던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사회적 환경 바꾸기 운동을 하던 중 청소년 정서 순화를 위해 음악교육을 시작했다.

지하주차장에서 7명의 단원으로 태동한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이제 300명을 헤아리고(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이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아이들은 40만 명에 이른다. 아브레우의 열정과 세계 5번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정부의 든든한 재정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국 125개 학교에서 일주일에 여섯 번,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공부하는 25만 명의 아이들은 학비는 물론 야외 활동비까지 지원 받고있다. 항상 그들 옆에 있는 1만 5천 명의 교사들 역시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이자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이들.

세계적인 지휘자와 성악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주세페 시노폴리도 그들을 가르쳤고, 현재 대구시향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곽승 역시 16년 전부터 매년 2~3월 지휘를 가르치는 클래식계 유명인사다.

‘엘 시스테마’의 목적은 클래식 인재를 키워내는 데만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FESOJIV’(베네수엘라 음악교육재단)의 사무국장이 ‘우리의 첫째 목적은 아이들을 전문 연주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범죄와 마약에서 구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실제로 프로그램 시행 이후 청소년 범죄율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청소년 정서를 순화시키고자 시작한 프로그램이 클래식 인재까지 길러낸 셈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