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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문화를 아시나요] "88만원 세대 전형, 나는 소작농이다"
전 '아마추어 증폭기' 한 받 씨
척박한 노동환경의 비정규직 일상 보여주는 듯한 음악 공감대 얻어





김청환기자 chk@hk.co.kr
사진=임재범기자 happyyjb@hk.co.kr



"물 좀 주소. 목 말라요. 물 좀 주소. 목 말라요. 목이 막혀 죽을 것만 같소"

힘없는 목소리가 물기 없이 흐른다. 약간은 기괴한 리듬에 통기타 연주, 스스로 내는 박수 소리로 리듬에 장단을 맞춘다. 단발머리 가발에 선글라스, 체크치마에 하와이안 셔츠를 받쳐 입었다.

머리에 쓴 초록색 모자에는 새마을 운동 마크가 선명하다. 노숙자의 모양새를 닮아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길거리 공연을 펼치는 전 <아마추어 증폭기>, 현 <야마가따 드윅스터> 한 받(35) 씨의 공연 모습이다. 6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한 씨는 일단의 인디밴드들과 함께 한대수의 노래 '물 좀 주소'를 리메이크 했다. 지난 2003년부터 이화여대 인근에서 공연을 시작한 그는 홍대 앞에서 매년 열리는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전위적인 공연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2008년에는 <로우 파이 오페라>란 제목으로 공연했다. "대본을 대놓고 보면서 이야기하고 노래도 즉흥적으로 하는 말 그대로 허접한 공연이었다"는 게 한 씨의 말이다. 2004년 공연에서는 관객들에게 양파를 주고 자신에게 던져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형편 없는 나의 음악과 음악가들의 어려운 현실을 허접한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며 "관객의 야유를 받고 그대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비관하지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유머코드를 담고 있는 88만원세대의 '루저(Loser; 패배자)'정서의 전형이다. 한 씨는 "그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면서도 "내가 처한 현실과 비슷한 이들이 많다보니 공감대를 얻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소작농이다." 한 씨가 말하는 자기정체성이다. 그가 만든 <소작농>이란 노래는 동유럽의 소작농이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내용이다. "지금 뭘 생각해요.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한 씨는 2003년 대학을 졸업했으나 1년여 동안 100여군데 원서를 넣고도 정규직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비정규직으로 한달 120여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서울의 홍대앞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2000년에는 사업에 실패해 동유럽으로 가 집시가 되겠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중국을 거쳐 홍콩으로 갔다 길거리 공연을 하며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가 음악에 빠진 계기 역시 '루저'의 정서를 안고 있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그는 대학에서 독립영화를 만들었으나 25살 때인 1999년 주위의 부정적인 평가를 듣고 좌절한다. 그는 혼자 집에서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고 음악에 심취한다.

그러나, 그는 좌절로 상황을 끝내지는 않는다. 그는 2003년부터 홍대앞에서 <아마추어 증폭기>로 노래를 불렀다. 2005년에는 연주자인 노트북과 '싱어'인 자신이 팀인 2인조 댄스음악 그룹 <야마가따 드윅스터>를 결성했다.

그가 만든 '쥬뗌므 르 쁠뤼 아몽드'란 곡은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해요'란 의미를 담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단식투쟁 현장 공연에서 댄스음악에 흥겨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가 떠올린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곡이다. 그는 "일터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투쟁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한 씨는 이달이면 계약이 끝나 전업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작년에 결혼한 그의 아내 역시 비정규직으로 이달에 근로계약이 끝난다. "대양에 떠 있는 돛단배 같은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도 "공연비를 올려야겠죠"라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

그의 음악과 삶의 태도는 '비관'에서 '유머'로 가는 '루저'세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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