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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찾아가는 음악회] 세상의 그늘진 곳에 '음악의빛'을
'아마레앙상블' 등 산골마을서 교도서까지 '감동바이러스' 퍼뜨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연주 중인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찾아가지 못하는 세상의 구석진 곳에서 음악의 빛을 밝히는 연주자들이 있다. 문화 소외계층을 세분화 했을 때, 어찌 보면 가장 아래쪽에 위치할 것 같은 이들. 길도 없는 산 속 깊은 마을이라던가,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연주자들이 먼 길 마다 않고 길을 나선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발걸음은 더 가벼워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고된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작은 움직임이 '베토벤 바이러스'를 넘어서는 강력한 '감동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경기 침체여서 찾아가는 음악회의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활동을 접는 연주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 침체이기에 더 열심히 찾아 나서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주는 것보다 오히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가슴 찡한 이들의 감동 스토리를 들어봤다.

한 달에 네 번, 그들과 만나는 시간 <아마레 앙상블>


이런 정성이 어디에서 나올까 싶다. 피아노 오중주 '아마레 앙상블'의 다섯 멤버는 한 달에 네 번 '찾아가는 음악회'를 한다는 철칙을 10년째 지켜오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창단 멤버 장은식 리더(비올라)를 축으로, 오주은(첼로), 김문철(피아노), 박민석(제2바이올린), 지난해 말 새로 입단한 이 영(제1바이올린)으로 구성된 아마레 앙상블. 모든 멤버들이 오케스트라 단원 활동과 학교 출강 등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1999년 창단해 본격적으로 활동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네 번이라는 원칙을 어겨본 적이 없다.

이 달만해도 두 명의 단원이 각각 프랑스와 독일에서 연주가 있지만 다섯 명이 시간을 맞춰 결국 2월의 마지막 주에 네 번의 일정을 잡았다. 이렇게 쌓아온 횟수가 500회를 헤아린다. 병원에서 시작해 강원도의 산골 마을, 교도소, 고아원, 한국의 입양아들이 2만 명 정도 된다는 스웨덴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음악을 원하고, 또 그들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10년을 빈틈없이 쌓아온 덕인지, 그들은 이제 '찾아가는 음악회'의 유명인사다. 아마레 앙상블 홈페이지를 통한 음악회 요청이 줄을 잇는다. 여기에 장은식 리더는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까지도 알아보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단국대학교의 장충식 명예총장의 제의로 창단되어 사회봉사단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는 아마레 앙상블은 서울문화재단에서 별도로 받은 지원금을 모아 고아원의 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있다. 한번은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던 지방의 한 고아원 아동들에게 바이올린 협회에서 기증 받은 수십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내려 보낸 적이 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서 레슨을 받아 악기를 잘 다루게 된 아이들이 이제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봉사연주를 펼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도 들려온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그들이 전하는 특별한 감흥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없다. 서로의 소리를 예민하게 잡아내고 그에 맞춰 자신의 박자를 가늠해야만 한다. 단원 17명 중 10명이 시각 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전 하트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 광경이다. 단원 자신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고 할 만큼,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2년 전부터 '찾아가는 음악회'를 해오는 특별한 존재다. 박자의 변화가 많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쉼표로 클래식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지휘자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짧거나 길게 연주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오지 않았던가. 처음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결성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짧은 시간동안 꽤 많은 팬을 확보했다. 창단 공연 준비만 꼬박 3개월, 2007년 7월 창단 공연 당일까지도 중간에 연주가 끊기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막대기를 쳐가며 거듭한 박자연습 덕에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때부터 레퍼토리를 늘리고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도소, 병원 등을 찾아가며 연주회를 열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든 매번 정장으로 말끔히 갈아입는 그들. '굴비처럼 엮어 들어가 더듬더듬 자리를 찾다 보니 도통 폼이 나지 않아서'라고 김종훈 악장은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마음으로 전해질 뿐이다. 지난해 20회의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던 하트 블라인드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교도소 연주 후에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재소자의 모습에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곤 했다.

보통 오케스트라가 한 두 번이면 맞춰볼 수 있는 클래식 소품을 마스터하기 위해 100시간에서 200시간을 투자한다는 그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4-5시간, 길면 7-8시간 모여서 연주한다. 악기가 닳도록 연습해 이제는 완전히 몸에 익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그들의 주요 레퍼토리. 난이도를 높여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서곡,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메들리, 그리고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연마 중에 있다. '실력보다 노력으로 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말하는 김종훈 악장은 앞으로도 학교와 교도소를 중심으로 '찾아가는 음악회' 활동을 계속 펼쳐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반주가 없으면 목소리만으로, 조명이 없으면 촛불로... <김자경 오페라단>


"성악가들도 노래할 기회가 없으면 목소리가 녹슬어요. 목소리도 지키고 감동도 나누고, 결국 서로를 위한 일이죠." 올해는 산업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음악회를 열 예정이라는 김자경 오페라단의 최승우 대표의 말 속엔 지나친 겸양의 어투는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명문 오페라단의 사회적 책임감이나 사명감이랄까. "단의 설립 목적이 첫째 신인 발굴, 둘째가 오페라 대중화였어요. 찾아가는 음악회는 이미 설립 목적 속에 있는 거죠."고 덧붙이는 목소리가 의욕적이다.

경기침체와 함께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산업현장을 올해의 목적지로 삼은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국내 오페라계의 대모이자 신화인 故 김자경 선생이 1968년 창단한 김자경 오페라단은 순수 민간 오페라단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 그녀의 생전에도 이미 서울 시내 공원과 지방의 대공원을 찾아다니며 시민들 가까이로 다가가는 음악회가 있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김자경 오페라단의 문화 소외계층을 찾아다니는 음악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재작년. 한 해 동안 30회의 공연을 했다. 지난해에는 <카르멘> 등의 대규모 오페라 준비로 활동하지 못했지만 올해에 지난해 몫까지 더해 50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소프라노 고미현, 바리톤 정지철, 소프라노 윤유정,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 바리톤 최강지, 소프라노 정정화, 테너 김달진 등 김자경 오페라단의 간판급 성악가 10여 명이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투우사의 노래' '축배의 노래' 등 귀에 익숙한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들을 노래한다.

그 동안 시설이 열악해 '찾아가는 음악회'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이 최 대표의 말이다. 울산의 한 농아학교에서 연 공연은 청력 수술을 한 이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가사가 들리지 않아도 울림으로 음악을 듣고 박수 치며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성악가들은 커튼 뒤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피아노가 없어 가져간 신디사이저가 내부 정전이 되면서 작동하지 않은 적이 있는데, 반주 없는 성악가의 노래와 조명대신 촛불을 켜야 했던 경험은 곤혹스러움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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