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KBS·국립국악원 소속 악단순수예술과 대중의 접점찾기… 지역 주민들에 클래식 대중화 나서

'그래도' 클래식은 어렵다. 귀는 열려 있지만 눈은 무거워진다. 아무리 <베토벤 바이러스>를 떠올려봐도 클래식 공연장으로의 발길은 역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언론은 연일 '클래식 대중화' 운운하며 클래식과 대중의 '미팅'을 주선하지만, 둘의 만남은 어딘지 익숙하지 않다.

클래식이 낯선 이유는 또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클래식은 여전히 판타지다. 여기서 '판타지'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판타지다. 이들에게 클래식이란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이미지다. '서울인'들은 강마에의 현신을 보고 싶을 때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찾으면 된다. 그들은 거기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실체'를 직접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의 공연장까지 시간을 맞춰 오기 힘든 지방민이나, 신체적, 경제적 제약으로 이동이 힘든 이들에게 '정마에'는 실체를 느낄 수 없는 이미지일 뿐이다.

순수예술과 대중의 '접점 찾기'는 이런 데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도 자주 봐야 정이 들듯, 낯선 예술 장르도 우선 익숙해져야 정이 가고, 참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이치다.

최근 음악회들이 '찾아가는 서비스'를 선보이며 소외계층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각박한 인심이 팽배한 지금의 세상이야말로 음악의 힘이 사람들의 피폐해진 영혼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 비해 순수예술 향유의 기회가 적었던 지역 시민들과, 아예 문화생활 자체를 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찾아가는 음악회'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현재 서울시향을 비롯해 인천시향, 수원시향, 대전시향, 대구시향 등 주요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시립교향악단들은 대개 '찾아가는 음악회'로 지역 주민들에게 클래식을 즐기는 문화를 보급하고 있다.

정명훈 예술감독 부임 후 히트상품이 된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는 올해엔 시민들의 편의성을 더욱 고려해 공익성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 횟수를 늘리고 신청절차를 간소화시켜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닌 '클래식 관람 문화의 대중화'를 노리고 있다.

한쪽에 치우친 개최도 지양한다. 가급적이면 연말까지 도시 안의 모든 구를 골고루 순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42회에 달하는 실내악 공연은 기존에 방문하던 병원이나 공립 도서관, 구민회관 외에 올해부터는 다문화 가정과 장애인 복지센터에 역점을 두고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KBS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은 지역 방송국과 연계해 올해부터 전국을 돌며 '찾아가는 음악회'를 시작했다. 시작은 강원도 원주였다. 지난달 21일 교향악단 내 현악 4중주와 금관 5중주단이 KBS 원주방송국 TV 공개홀에서 클래식 소품과 기악 실내악곡 등을 구성해 들려줬다. 모차르트의 실내악곡과 엔리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요한 슈트라우스의 춤곡 등 이미 대중의 귀에도 익숙한 멜로디는 첫 공연을 찾은 관객들에게 편안한 관람이 됐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날 공연의 의미는 원주 지역 청소년과 주부, 기타 문화 소외계층 등 300여 명이 참석해 한동안 서울시민만의 전유물이었던 KBS 교향악단의 수준높은 공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KBS 교향악단은 지난 10일 청주의 성신 장애인학교로 자리를 옮겨 청주시내 장애 청소년과 학부모 등 300여 명을 앞에 두고 또 한 번의 공연을 치렀다.

애초 이러한 공연들의 취지가 문화 향유의 균형에 있는 만큼, 공연 장르는 서양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KBS 국악관현악단은 대전에 있는 대덕 소년원을 찾아 익숙한 대중문화 안에서 재해석된 우리 음악의 선율을 들려줬다. 레퍼토리도 영화 <왕의 남자> 중 '인연',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오버 더 레인보우', 뮤지컬 <명성황후> 중 '나 떠나거든' 해금 솔로 등으로 구성해 국악에 대한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KBS 관계자는 "KBS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은 국민의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전국 각지의 문화 소외계층을 비롯해 지역 청소년, 주부 등에게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클래식과 국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2월부터 월1회 공연으로 정착된 KBS의 '찾아가는 음악회'는 앞으로도 지역 방송국의 요청을 우선적으로 하되, 적극적으로 문화소외 지역을 발굴해 고른 공연 계획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립국악원은 산업현장의 근로자를 찾아가 <2009 희망! 우리소리에서 찾다>라는 제목으로 음악회를 개최한다. 지난 14일 인천주안공업단지를 찾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과 창작악단은 오는 18일에는 한국산재의료원 소속 안산중앙병원을, 21일에는 제11회 청계천 잡 페어에서 잇따라 공연을 펼치며 경제 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게 된다.

'클래식 붐'이라는 조어는 실제로 클래식을 즐기지 못해왔던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더해왔다. 사실상 서울의 일부 계층에서만 나타나는 클래식 붐이 다시 그들에게 전유되는 문화 독식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들만의 문화'란 수명이 길지 않은 법이다. 좋은 것은 나누고 함께 즐길 때 그 생명력도 커지고 오래간다. '찾아가는 음악회'는 특정 지역, 특정 계층만의 붐이 아니라 보편적 공감을 자아내는 클래식 붐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클래식 대중화의 효과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