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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초월 고전의 매력은 무엇인가
삶의 본질 꿰뚫은 선현의 지혜로 오늘날을 비춰 앞길을 제시해줘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



열하일기 우리말 필사본(왼쪽), 맹자언해(오른쪽)
아나톨 프랑스(1844~1924)는 "고전은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책이다.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 하였다. 가치가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고전. 지금 이 시대에 고전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정제되지 않은 각종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 시간과 속도가 빨리 흘러가는 정보와 인터넷의 시대.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정전에 가까운 고전을 찾으며, 일상을 반추하기 위해 역으로 느림의 미학을 상상하고 또는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고전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된다.

# 지금 왜 다시 고전인가?
우리가 일상에 쫓겨 사는 한, 고전을 붙잡고 있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대면한 우리의 정서적 틈을 파고들어 고전 읽기가 점차 힘을 얻는 추세이다. 더욱이 고전 읽기의 필요성과 그 난해함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고전 읽기의 방향과 길라잡이를 제시해 주는 다양한 방식의 책들이 출간되면서 지금 고전 읽기가 새롭게 주목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고전은 시공을 넘어 가치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만 낯설다. 고전은 늘 가까이 있지만, 공부에 쫓겨 혹은 일상에 지쳐,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한다는 핑계로 잊고 산다. 우리가 이런 핑계를 잠시라도 물리치고 고전을 접하면, 어느덧 잊고 지냈던 낯선 시공을 체험할 수 있다. 그 기쁨과 즐거움은 모르던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참다운 맛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선함일 터이다.

고전은 익숙한 우리의 현재 처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상식처럼 믿고 있는 익숙함, 아무런 의심을 지니지 않고 존중하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일깨운다. 익숙한 관행은 반드시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우리의 정신을 가두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고전에게 말을 걸고 고전과 소통하며 대화하기 위하여 고전을 찾는 것은 일상사에 '영혼'을 잊고 세파에 영혼을 다친 사람들, 아니면 자아를 발견하고 싶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전은 언어가 생긴 이래 수많은 선현들의 고뇌와 지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비롯하여 지금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깊은 통찰과 현재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이 담고 있는 각각의 내용을 보면, 지금 우리의 삶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생생하게 이어지는 것들이다. 시공을 넘나들면서 감동을 주는 고전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전을 읽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요약한 것을 읽을 수 있으며, 원문으로 읽을 수도 있고, 원문 해독이 어려울 경우 번역본을 읽을 수도 있다. 또한 고전을 통해 그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으며, 선현들이 추구한 삶의 가치를 읽을 수도 있다. 난세와 난제를 헤쳐 나온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으며, 참다운 인간의 삶이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답게 사는 가를 파고들 수도 있다. 산 정상을 오르는 데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고전(古典)은 고전(苦戰)이다."라는 속어가 있듯,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같은 '지식과 정보의 바다' 속에서 한번 클릭으로 손쉽게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고전을 위해 인내하면서 꼼꼼하게 정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입시를 위해 혹은 교양을 위해 이미 다 읽었으니 굳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마크 트웨인이 "누구나 한 번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책"이라고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 되새겨 볼 일이다.

고전은 언어가 생긴 이래 수많은 선현들의 삶의 예지와 성찰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고전은 천천히 그 의미를 음미하면서 공을 들여 읽어야만 한다. 작자가 이르렀던 정신적 경지와 정서적 감동을 직접 대면하면서 맛볼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은 반복과 집중의 글 읽기가 아니고서는 결코 체감할 수 없다. 요약한 고전을 읽거나, 하나의 눈과 잣대로 고전을 읽는 것은 참다운 맛을 모르는 방법이다. 국왕 정조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이미 얻은 정보를 거듭 연구하면, 그 정보에서 저절로 새로이 깨닫는 맛이 있다."고 풀이하였듯이, 고전은 거듭 읽고 음미하며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그 참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 고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고전은 화석화된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 쉬고 우리에게 지적 자극과 영감을 주는 '현재형'이라는 데 그 생명력이 있다. 고전은 박물관의 전시품이나 박제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고전에서 오늘의 문제를 되묻고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사색하고 때로는 시공을 넘어 현실의 난제마저도 사유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은 외견상 언어와 표현 생각 등과 같이 옛날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겉옷만 벗기고 나면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새 우리의 사유에 다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우리의 영혼을 일깨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을 통해 낡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성찰하도록 한다.

시대가 바뀌고 독자가 달라져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읽는 것은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의 단순한 경구나 짧은 문장에도 쉽게 감동하며, 혹은 선인들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그릇됨을 부끄러워하고, 상심에 휩싸였을 때에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얻는 것은 그러한 힘이 있어서이다. 이렇듯 고전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의 방식에 대한 기준과 척도, 혹은 전범 역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오래 된 것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버려 새로운 맛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식어 있는 것을 데워 새로운 맛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은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고전은 오랜 기간 불을 쬐지 않아 식어 버린 채 있지만, 우리가 시선의 불길을 주고 데우기만 하면, 언제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데 미덕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고전 속에서 지식과 정보의 보물창고를 만나고, 우리의 삶의 질과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고전 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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