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영화 다시보기] 작품성·대중성에 공통의 정서 담고 운 따라야 신화 창조

부산이 또 하나의 '괴물'을 낳았다. '메이드 인 부산'으로 <친구>라는 국민영화를 만든 이후 또 한 번 부산영화 <해운대>로 지난 23일로 천만 관객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천만 관객을 넘어선 것은 역대 한국영화사상 다섯 번째로, <괴물>(2006) 이후 3년 만이다.

사실 지난 2006년 <괴물>이 1300만 관객을 기록했을 때 영화계 관계자들은 당분간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는 것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왕의 남자>나 <괴물> 이후엔 '천만 영화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무언의 전제가 관객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는 첫 천만 영화라는 기록에 이끌린 면이 많았다.

그래서 <해운대>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잘 되어야 관객 700만 명 정도로 예상됐던 영화였다. 그것도 110억 원의 제작비와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라는 흥행배우들을 감안한 예상치였다. 윤제균 감독도 흥행감독이긴 하지만 누구도 이 영화가 천만 명을 넘어서리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오히려 2006년 개봉 당시 흥행 참패로 고배를 마셨던 <태풍>과 비슷한 처지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개봉 첫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인 <해운대>는 이후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으며 개봉 32일만에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천만 영화가 나올 때마다 언론과 평단, 관객들은 저마다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하지만 다섯 편의 영화들이 걸어온 길은 천차만별이다. 거대 배급사의 힘으로 처음부터 물량공세를 펼친 끝에 기어이 고지에 등극했던 영화도 있고,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뒷심을 발휘해 정상에 오른 작품도 있다.

그래서 이들이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공통적인 요인을 추출하기란 쉽지 않다. 최대한의 배급이나 창의적이고 다양한 마케팅 방법, 관객들의 입소문과 매니아 형성으로 인한 재관람 같은 영화 외적인 요인들은 기본이다. 영화 내적으로는 어떤 세대, 어떤 계층의 관객이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정서'가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첫 번째로 천만 고지에 올랐던 <실미도>는 마치 80년대 한국소설 같았다. '실미도 사건'이라는, 신문의 사회면에나 나올 법한 소재들을 가지고 강우석 감독은 기어이 그 안에서 영화적 '재미'를 뽑아냈다. 군사정부 시절의 음습한 치부를 까발리는 이 영화는 당시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의문사 규명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어두운 시기를 거쳐온 중장년층 관객들까지 극장으로 모이게 할 수 있었다.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대에 통용될 수 있는 영화의 위력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다시 한 번 발휘됐다. 역시 흥행감독이었던 강제규 감독은 6.25 전쟁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장동건과 원빈 두 꽃미남 형제의 불행한 개인사를 겹치면서 효과적인 상업영화를 완성시켰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실미도>처럼 시사성에 무게를 실기보다는 전쟁의 참혹함과 형제애가 단순하게 결함되면서 투박하지만 우직한 감동을 자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1-영화 '실미도'
2-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3-영화 '왕의 남자'
4-영화 '괴물'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폭군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 시대의 폭정을 돌이켜보게 했다. 큰 텍스트 안에 다양한 작은 텍스트들이 상존하고, 그것들이 서로 상호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폐인 현상'도 이끌어냈다. 이준기라는 벼락스타가 탄생한 것도 이 같은 폭군의 비판자로서의 광대의 역할과 동성애 코드의 텍스트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낸 결과였다.

권력을 향해 도전하는 광대, 사랑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연인, 보수적 사회에서 동성 사이의 우정이 아닌 애정 등 전통극의 형식에서 변주되는 현대적 텍스트들은 수많은 폐인을 양산하며 자연스레 천만 관객 신화를 만들어냈다.

한편 <괴물>은 괴수영화라는 신선한 장르 안에 환경오염과 미 제국주의를 향한 메시지를 담아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었다. 한강변에서 하루벌이를 하며 사는 소시민들이 '괴물'을 만나며 고초를 겪지만 정부는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바보 같은 정부와 악당 같은 미국, 그리고 괴물. 이들 사이에서 저항하지만 힘없이 희생당하고 또 그렇게 하루를 버티는 소시민들.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문제로 시끄러웠던 당시 사회에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세계관으로 목소리를 냈고 관객은 역대 최다 관객으로 이에 화답했다.

<해운대>는 이런 현실의 반영이나 거대담론은 없지만 대신 휴머니즘이 있다. <색즉시공>,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 등 전작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의 코믹한 묘사에 장점을 보여왔던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에서도 특기를 살려 쓰나미의 스펙터클과 부산 시민들의 일상을 자기 방식으로 버무렸다. 윤 감독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영화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고, 그 장치는 현재까지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천만 영화의 조건은 언제나 유동적이어서 명료하게 얘기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언급한 영화 내외적인 요건들을 기본으로,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해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예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요즈음, <해운대>와 <국가대표>와 같은 라이벌끼리의 경쟁도 천만 관객 신화를 만드는 추동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