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그래피티] 태그형 벗어나 스탠실·도배 기법에 댓글·벽보 형식으로 발전

1)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커피숍 벽면에 등장한 그래피티.
2)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왼쪽)과 서울 신촌동 연세대 인근에 등장한 'DOUBLE-P'의 그래피티.
3) 미국의 한 열차에 그려진 그래피티.


#.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길거리 쇼핑가의 한 커피숍의 벽면. 사람 크기의 그림이 스탠실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사람 그림의 바로 앞에 있는 액자에는 다시 돼지를 끌고 가는 경찰의 그림과 더블 피(double-P)라는 태그가 선명하다. 액자의 옆에는 '예술은 끝났다(ART IS OVER)'라는 강렬한 구호가 있다.

커피숍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이 벽그림은 사실 가게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한 길거리 예술가에 의한 그래피티(Graffiti)다.


그래피티 혹은 스트릿 아트(Street Art)라 불리는 게릴라 식의 길거리 미술이 서울 거리에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존재를 과시하는 태그(Tag; 자신의 별칭) 형식에서 벗어나 스탠실 기법 등을 활용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형태의 그래피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88만원세대 '루저문화' 붐을 탄 그래피티가 주류예술(뮤지엄 아트)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호 경희대 미대 교수는 "근본적으로 도시의 모든 길과 광장은 시민의 것인데 오늘날 도시공간이 광고의 홍수 속에서 일부 기득권층의 목소리로만 가득 차 있다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 그래피티가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뮤지엄 아트와 스트릿 아트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에 주류예술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예술계 충격 주는 그래피티

의미심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제도권 예술에 도전적인 방법을 사용한 길거리 미술이 급증하고 있다. 더블 피는 홍대 앞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글자가 쓰인 티셔츠와 십자가를 들고 포교하는 스탠실 기법의 그래피티로 일부 극력 기독교도의 폭력적 선교행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더블 피의 작품은 작년까지 곳곳에 눈에 띄었으나 최근작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피티 작가들은 독특한 태그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속해 있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래피티 작가들이 더블 피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가 한국계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최근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나나(NANA)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예술은 끝났다(ART IS OVER)'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담고 있다. 그는 정규 미대를 졸업한 20대 여성으로 알려졌다.

예술적인 면에서 그래피티는 미술관이나 화랑의 제도화된 미술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허락 받지 않은 벽면에 값싼 락카로 하나의 예술적 그림을 그려 넣는 행위 자체가 기성미술에는 위협일 수 있다.

이태호 교수는 "그래피티를 통한 사회적 발언은 포스트모던이라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태그에서 벗어나 스탠실을 사용하고 사회적 발언 등을 담은 포스트 그래피티는 지난 100여년간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캔버스에서 전문가 중심으로만 제작되고 소통된 미술계의 엘리트주의·폐쇄주의에 대한 반항과 저항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4)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상가 건물 2층에 등장한 그래피티. 벽보에 미리 그림을 그려놨다가 붙였다.
5)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그래피티. 댓글 형식.
6)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미술학원 건물 벽면에 등장한 그래피티.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영어 메시지를 담고 있다.
7)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그래피티.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모습.
4)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상가 건물 2층에 등장한 그래피티. 벽보에 미리 그림을 그려놨다가 붙였다. 5)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그래피티. 댓글 형식.
6)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미술학원 건물 벽면에 등장한 그래피티.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영어 메시지를 담고 있다.
7)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의 그래피티.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모습.

강렬한 문화사회적 메시지

문화·사회적으로 새로 등장하는 그래피티는 소수의견의 공격적 표출을 통해 도시공간에서 정치적 발언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소수자로서 공적 공간에서 비주류의 방법으로 정치적 반박과 사회담론에 대한 소통 욕구를 게릴라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광고와 전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더블 피는 서울 신촌동 연세대 인근에 녹두장군 전봉준의 그림과 함께 '삼성중공업은 서해를 살려내라'는 메시지를 새겨놓기도 했다.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그림을 그려놓고 '편히 쉬세요'란 의미의 R.I.P.(Rest In Peace)란 글을 써놓은 그래피티도 등장했었다.

공권력과 정치권력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메시지를 담은 그래피티도 이를 잘 드러낸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올 초까지 홍대 후문 쪽 돌계단에는 전투경찰이 예수를 끌고 가는 그래피티가 벽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홍대의 한 뒷골목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형상화한 듯한 그림의 주인공이 손으로 브이(V) 자를 그려 보이는 그림과 'i'm a god'이란 문구가 드러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손으로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을 그려 넣은 그래피티도 있다.

성 소수자의 사회적 발언 역시 드러난다. 홍대 인근의 한 미술학원 건물 뒷편에는 토끼의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말라. 죽을 때까지 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내용의 영어 메시지가 들어간 그래피티가 등장했다. 이는 동성연애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이태호 교수는 "그래피티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도시공간에서 개인이나 소수 시민의 의사를 표현하는 한 방식"이라며 "돈에 의해 구매되고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도시의 공간 틈새를 비집고 내쉬는 시각화된 의사표현, 한마디로 '도시 정글에 피는 꽃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88만원세대 '루저문화'로서 그래피티 붐

그래피티는 연원에서부터 하위문화로서의 특성이 있다. 하지만 대졸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할 수 없는 패배자의 대중화 시대에 '루저(Loser)문화'에서 비롯한 예술방식인 그래피티는 젊은이들 사이에 더욱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피티 예술가는 대부분 420ML의 값싼 락카를 이용해 허락 받지 않은 벽면에 게릴라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자리를 뜬다. 미리 그림의 본을 판화 형태로 뜨고 락카를 뿌려 만드는 스탠실 기법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다.

스탠실 기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리 벽보에 스탠실로 그래피티를 그려와 도배하는 기법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홍대 앞 놀이터에서 상상마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마스크를 쓴채 'STOP CO2'라는 문구가 들어간 피켓을 들고 있는 그래피티가 벽보형태로 붙어 있다. 이 그래피티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댓글문화의 영향 역시 나타나고 있다. 홍대 인근의 한 벽면에 누군가가 'XXXX JAPS'란 그래피티를 남기자, 다른 글씨체로 'BUT JAPS LIKE IT'이란 답을 남기기도 했다. 질시 때문인지 남이 그려 놓은 그래피티에 덧칠한 그림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초기의 그래피티는 1971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지하철에 'TAKI183'이란 태그를 쓰고 다니던 데미트리우스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알려졌다. 그는 회사와 회사 사이에서 서류를 옮겨주던 오늘날의 퀵 서비스 업체 직원과 같은 사람이었다.

이후 1970~80년대 이름 글자를 소재로 하는 '스타일 전쟁(style War)'을 펼치는 그래피티가 미국 슬럼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경찰은 이를 막으려 했으나 갱스터의 영역표시의 욕구 등과 겹치면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그래피티의 일종인 벽화로 그림을 시작한 장 미셸 바스키아나 키스해링이 주류미술계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그래피티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이른다.

불황의 시대를 맞은 90년대 그런지(Grunge; 주변적 거리문화)가 범사회적으로 나타난 미국에서 그래피티는 랩, 비보잉, 스케이드 보드 등과 함께 힙합문화를 추동하는 한 양식이었다.

2000년대 영국의 뱅크시가 반전, 반핵 등의 정치적 내용을 담은 스탠실 그래피티를 선보인 '후기 그래피티' 시대에는 정치사회적 소수자의 사회적 발언 공간이자 예술형태로 발달했다. 뱅크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포위하기 위해 만든 벽면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그래피티를 그려 전 세계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그를 따라하기도 했다.

1968년 프랑스 68혁명 당시에 이미 무정부주의자와 상황주의자들이 '첫째, 불복종하라; 그리고 벽에 글을 써라'는 내용을 68십계명에 포함시킨 것은 그래피티를 통한 정치적 발언의 기원에 해당한다. 이들은 에콜드 보자르 미술대를 점령하고 학교 시설을 이용해 '상상력에게 권력을!', '금지를 금지하라'와 같은 구호와 포스터를 스탠실 기법으로 수없이 찍어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래피티는 저소득층 청소년이 기성세대의 권위에 저항하는 일종의 거리예술의 하나로 출발했다"며 "공식화하고 주류화되지 않는 그래피티 퍼포먼스 자체가 힙합문화의 계급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참고 : 스트릿 아트, 도시 정글에 피는 꽃들. 이태호. 2008년.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