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시의 미래인가] 첨단 미래 도시 송도와 배다리 일대 구도심, 한국 도시 딜레마를 대표

1)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 조감도 2) 2009인천세계도시축전 '투모로우 시티'관에 전시된 유비쿼터스 기술 3) 2009인천세계도시축전 도시계획관 내부
지금 인천은 마치 둘로 나뉜 것처럼 보인다. '2009인천세계도시축전'(이하 '도시축전')이 열리는 송도와, 배다리 일대를 비롯한 구도심.

전자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래 도시'인 반면 후자는 인천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다. 경관도, 오가는 사람들도, 거리의 속도도 확연히 다르다. 단절감이 커서 어느 쪽이 '진짜' 인천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이는 공간을 구성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장 방안들을 제시하는 성대한 행사는 윤택한 미래의 발판으로써 도시를 구상하고, 배다리를 지키는 시민들은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도시를 모색한다.

두 '인천'을 오가며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이 오래된 도시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각각의 공간이 내보이는 도시상과 그 논리의 충돌은 도시를 중심으로 경제, 사회 체제가 재편되고 있는 이 시대 자체의 갈등 양상과 속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한국사회의 여러 도시들이 비슷한 처지다. 누군가가 '공간의 격전지'라고 표현한 인천의 사례는 이 모두를 대표하는 동시에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4) 배다리 일대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알렌 별장 터 5)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6) 배다리 일대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 미감리교 여선교사 기숙사인 갬블홀
도시축전은 인천의 미래일까

지난달 7일 인천 송도에서 막을 올린 도시축전은 안상수 인천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명품도시' 인천의 비전을 펼쳐보인 장이다. 미래 도시를 테마로 한 전시관들의 초점은 주로 그 기술적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유비쿼터스 도시'를 체험할 수 있는 '투모로우 시티'가 대표적이다. 행인을 감지하는 신호등, 인터넷이 연결된 버스 정류장, 손을 대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쇼윈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기업의 친환경 기술을 모은 '녹색성장관', 청라 지구에 조성 예정인 로봇 랜드와 우주 과학 기술을 소개한 '로봇사이언스미래관' 등이 같은 맥락이다.

이는 진대제 조직위원장이 상상하는 미래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CEO,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친 그는 IT 산업에 가까이 있는 인물.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미래 도시는 정보화된 도시이며 친환경적인 에너지 효율이 높은 도시. 교육과 건강, 의료 등의 서비스를 안전하고 쉽고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인천'이 없다는 점이다.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본보인다는 취지의 '도시계획관'을 제외하고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돌아본 흔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도시계획관'도 인천 구도심의 역사를 박물화하는 데 그쳤다.

인천의 미래로 언급되는 지역은 송도-청라-영종 지구를 잇는 경제자유구역뿐이다. 이곳은 갯벌을 메워 만든 그야말로 '신도시'라는 점에서 인천의 과거와는 물리적 연속성이 없다. 공사도 투자 유치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인천의 현재도 아니다. 그야말로 이상향인 셈이다. 기술적 혜택이 어떤 인천 시민에게,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개발주의 욕망의 도시

"실제 인천 사람들의 삶,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이희환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도시축전에 정작 삶의 터전이자 환경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시민과의 소통 없이 기획 추진된 탓이 크다는 것이다.

조직위원장부터 인천에 연고가 없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정통부 장관 시절 3700억 원을 송도에 투자한 것이 인연의 전부"다.

그러다 보니 안상수 시장의 개발주의적 관점만 부각되었다. 이희환 집행위원장은 이 "스펙터클 이벤트"에서 19세기 후반~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박람회의 함의를 읽어낸다.

지난 여름 계간지 <황해문화>에 기고한 글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의 문화정치학'에서 그는 이 행사에 "갯벌을 매립한 인공도시 위에 건설된 경제자유구역 개발을 촉진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개발주의의 욕망"만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축전은 획일적인 개발주의를 앞세워 인천 구도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생사업들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인천건축재단의 구영민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재생사업은 지역의 한계와 목적에 맞게,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게 추진되어야 하는데 그런 고려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동구 배다리 일대 개발 계획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헌책방 거리와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이곳에 시가 산업 도로, 주상복합건물 건설 등을 추진하면서 이슈화되었다. 현재 이 일대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살리면서 '개발' 대신 '개량'하는 방향을 모색하자는 시민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시가 밝힌 역사 문화 보존 방안은 헌책방 거리를 철거한 자리에 '헌책방 거리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정보 도서관, '독서의 분수', 야외 카페테리아가 들어서게 된다.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이하 '배다리시민모임')'은 이에 대해 "'살아 있는' 문화를 박제화 경관화시키는 것이며 그럴싸한 문화의 '외피'를 입혀 개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다리시민모임이 내놓은 대안은 이 일대를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해 마을 자체를 '에코뮤지엄'으로 꾸리는 것. 배다리시민모임은 지난 18일부터 시민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시가 추진하는 또 다른 사업인 계양산 골프장 건설, 월미도 케이블카 설치 역시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시민 단체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도시 개발의 판타지와 그 이면

지난 9일 경인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인천시 김진택 공보관은 "도시축전은 새마을 운동"이라고 언급했다. 미래 도시로서의 경제자유구역의 모델을 보임으로써 외국 자본을 유치해 인천을 성장시킨다는 논리다. 그는 경제자유구역에 유치된 외자가 구도심까지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총체적이고도 구체적이며 균형 잡힌 도시 계획과 철학이 필요하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에서 지적하듯이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과 초자본의 논리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흔히 경이적인 성장과 개발의 상징처럼 예찬되는 두바이와 같은 도시개발의 환상적 이미지가 모든 가치에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판타지 이면에 어떤 '위기의 그림자'가 있는지 내막은 가려진다. 판타지는 강력한 고부가가치 성장엔진으로 위장된다."

이는 도시축전 개최가 인천 경제자유구역이 본래 취지와 달리 '베드타운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가림막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 연구단지로 계획되었던 용지 중 상당 부분이 주거 시설로 채워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도시축전이 '새마을 운동'으로서도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발을 통한 성장이라는 구호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논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도시축전바로보기 인천시민행동과 민주당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관람객의 43.1%가 도시축전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불만족', 혹은 '매우 불만족'한다고 대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23.6%에 그쳤다. 도시축전으로 인한 생산-고용유발, 부가가치 창출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다수였다. '실현가능성이 다소 없다'가 34.8%,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가 21.3%였다.

인천 지역, 시민과의 연관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도시축전이 제시하는 청사진이 인천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도시축전이 타 지역행사와 차별성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59.2%가 차별성이 없다고 대답했고 도시축전의 수혜자에 대해서는 20.7%가 '시장과 공무원', 35.1%가 '행사주최자와 건설업자'를 꼽았다. '인천시민'이라는 대답은 30.7%였다.

도시 계획의 미래는 조화와 공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해내고 자본주의 체제를 작동시키는 토대로서의 도시의 속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시는 역사와 문화를 지닌 공간이자 삶의 환경이다. 도시의 미래는 인간과 도시가 맺는 여러 관계들을 두루 품어 구상되어야 한다.

이들이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파괴와 재건이 성장을 담보한다는 믿음만을 기초로 한 행정적 수준의 개발 계획은 오히려 도시를 초국적 자본의 투기 지역으로 만들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는 잘 살려낼 때, 그 자체가 '자원'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에너지와 상상력을 북돋우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구영민 교수는 "21세기 도시계획은 싹 지우고 새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삶과 어울리게 짜여져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조화와 공존이 도시계획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어 있기도 하다. 2005년 일본 '아이치 세계엑스포'의 개최 과정에는 이런 변화가 잘 드러나 있다.

아이치 현이 엑스포를 기획한 때는 1988년. 올림픽 유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에 엑스포 주제를 '기술, 문화의 교류: 새로운 지구의 창조'로 확정하고 엑스포 개최지 일대 삼림지역을 '미래교류도시'로 개발하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지역 사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환경 파괴를 우려한 시민 운동이 활발해졌던 것.

결국 아이치 현은 시민과의 협의를 거쳐 엑스포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하게 된다. 1995년에 '개발을 넘어서: 자연의 예지 재발견'으로 주제가 바뀌었고, 1999년에는 엑스포 개최와 함께 계획되었던 신주거도시 개발, 도로 건설도 무산되었다. 6년간의 준비 끝에 아이치엑스포는 환경엑스포로 열렸고, 2010년 상하이 세계엑스포의 방향성 역시 친환경 도시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인천의 오래된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인천은 어떻게 그 오래됨을 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김민수 교수는 "인천이 지닌 여러 역사적 축의 장소성을 각각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문학산 자락 '비류백제'의 발상지, 19세기 말 개항된 제물포 일대, 일제시대 인천시청이 있었던 중구와 시청이 옮겨간 남동구 등이 그 축이다. 여기에 축적된 "시간의 켜"들이 모두 인천의 정체성의 뿌리라는 것이다.

"각각의 지역마다 형성된 삶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도시 계획은 삶의 문제다. 그 삶들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장소의 내력을 보듬고 가꾸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역사의 흔적을 관광자원화하려는 인천시의 개발 정책은 역사성에 대한 고려와, 송도국제신도시를 비롯한 경제자유구역의 '배후지'화 전략 사이에 있다.

"예를 들면 개항장 근처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18은행'을 '근대건축박물관'으로 운영하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이 일대가 개항장으로서의 의미보다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천의 역사가 놀 거리로 바뀌는 것은 송도국제신도시에 '선택과 집중'하는 인천시의 도시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송도국제신도시는 살기엔 지루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여기에서의 삶을 즐겁게 해줄 배후지역이 필요한 것이다."

19세기 말 개항의 역사를 바탕으로 대도시가 되었고 경제자유구역이라는 21세기형 개항장을 통해 앞날을 구상하고 있는 인천은 도시가 지역인 동시에 세계화된 경제 체제에서의 주체적 단위로 부상한 현재, 도시에 대한 패러다임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경합하는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다.

동시에 지자체가 개발주의를 내세워 도시 정체성을 포섭하는 한국사회 도시계획의 관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도시축전의 부대행사로 열린 도시 계획 컨퍼런스의 내용에만 귀를 기울여도 그 한계가 보인다.

지난달 6~8일 열린 '도시재생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로버트 쉬블리 뉴욕주립대학교 교수는 인천처럼 바다에 면해 있으면서 장기적인 산업 쇠퇴를 겪은 뉴욕 버팔로시의 재생사업을 소개하며 도시계획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장소를 조성할 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인간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도시의 미래는 결국 여기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성장해야 한다"

도시축전바로보기 인천시민행동 이희환 집행위원

지난달 3일 인천시민단체들은 '도시축전바로보기 인천시민행동'(이하 '도시축전시민행동')을 발족했다. 도시축전이 인천 시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전시성 행사임을 비판하고 그 내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였다. 도시축전시민행동의 집행위원이자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인 이희환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를 만나 도시축전과 인천의 도시 계획에 대해 물었다.

도시축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미래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도시의 흔적을 지우고 개발해야 하는 것처럼 홍보한다는 점이다. 역사와 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정치적 목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측면이 크다. 원래 '인천도시엑스포'로 기획되었다가 '엑스포'로 공인 받지 못하자 이름을 바꾼 사실은 그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전시 내용은 어떻게 평가하나.

여러 전시관의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인천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호기심만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시와 기업의 홍보관 같다. 인천의 역사를 담는다는 도시계획관은 마치 투자유치를 위한 모형판처럼 꾸며졌다.

바람직한 도시 계획은 어떻게 세워져야 할까.

도시는 그 축적물이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한다. 도시 계획은 그 과정을 돕는 것이다. 도시축전이나 현 인천시장의 개발 계획이 의도하는 것처럼 외부 충격에 의해 숨가쁘게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의 인천은 송도와 그 외의 지역으로 급격히 단절된 인상이다.

인천 내에서도 송도는 다른 지역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정한 계층만 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송도를 "상류층의 방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곳이 이대로 집중적으로 개발된다면 인천 내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다.

도시축전시민행동의 계획 중 대안적 도시상을 모색한다는 것도 있던데.

국제 이벤트와 지역 개발의 논리, 개발주의와 미래 도시의 담론에 대한 포럼을 열 계획이다. 도시축전도 끝날 때까지 꼼꼼하게 감시할 생각이다. 그 도시 철학, 경제적 효과, 행사 내용의 질, 시민 만족도 등에 대한 전문가 조사를 실시해 폐막 직후 발표하려고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