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유현미 개인전 <Bleeding Blue>

"그림 같은 사진 혹은 사진 같은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아주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고 감탄하고, 아주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한다. 이 두 가지를 합친다면 누구나 갈망하는 절대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유현미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의 사진은 사물을 배치하고, 그 전경이 그림 같도록 색칠한 후 찍은 것이다. 귀납적으로는 사진이되, 카메라로 귀결되기까지 조각, 회화의 공정을 거치는 복합 장르인 셈이다.

그래서 그 안에 조각의 양감과 회화의 질감, 사진의 즉물성이 다 있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장르적 성질을 질료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조립했다는 평을 받아 왔다.

이번에는 영상까지 도입했다. 이는 서사를 들여왔다는 뜻이다. < Bleeding Blue >는 한 남자의 방-물론 소파에 앉은 남자도 포함해서!-을 통째로 '그리고', '찍어낸' 과정이다. 작가의 진두지휘 하에 작업자들은 방의 면면을 새하얀 캔버스로 표백한 후, '그림 같은' 색채와 명암을 입힌다. 자신만의 방에서 쉬거나 TV를 보거나, 고민에 빠져 있었을 남자의 한 순간은 침입자들의 붓으로 포박당한다. 이런, 미술의 무자비한 박제!

그리하여 도달한 저 마지막 장면을 무엇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저 인공의 덧칠과 남자의 사연, 기계적인 시간의 흐름 사이에서, 관객의 감각과 기억에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왼쪽부터 'Composition(자켓), 2009', 'Composition(거북이와 사다리), 2009'
거대한 구, '돌구름', 계단의 일부와 테이블에 앉은 나비 등 전작의 상징적인 내용에 비해 이 '대중적인' 내용은 작업에, 삶에 더 가까운 은유의 역할을 부여한다. 관객 스스로를 남자 '주인공'에 대입해볼 여지를 주는 것이다. 우리 역시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의 도구들에 어느 순간 꼼짝 없이 점령 당한 것은 아닌가. 혹은, 미술 세계에 일생을 바치는 중인 작가 자신을 향한 자조(自照, 자기를 관찰하고 반성함)거나 자조(自嘲, 자기를 비웃음)같기도 하다.

전작의 맥을 잇는 사진 연작 < Composition >도 전시된다. 그런데 눈에 띄는 변화는 사물들이 서로, 그리고 땅과 붙어 있다는 점이다. 주로 날으는 꼴들을 표현한 초기작에 비해 중력이 강해졌다는 것도 유현미의 최근작이 삶과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유현미 개인전 < Bleeding Blue >는 내년 1월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린다. 02-736-1446~8.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