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를 위한 '착한 여행' 바람] 환경오염, 현지인 착취구조, 왜곡된 관광문화에 대한 반성서 시작개념혼선, 상업화 부작용, 이분법적 시선 등 풀어야 할 숙제

1-지리산 2-'지리산길 할머니네 홈스테이'에서 제공하는 밥상 3-지리산 치유여행 4-네팔 여행
김다은(20·여)씨는 현재 대학 입학을 유보한 채 세계여행 중이다. '스무살 여행'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일본, 호주, 미국 등지를 여행하는 것이다. 공정여행 온라인 카페(http://cafe.naver.com/fairtravel.cafe)에 현지의 스무살 친구들과의 인터뷰, 여행후기 등을 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좀 특이하다. 렌터카나 관광버스가 아닌 지역(local)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5성급 호텔이 아니라 홈스테이 등 지역민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대신 현지의 '가난한 밥상'을 선호한다.

정씨는 여행을 하며 만난 또래의 대화에서 지혜를 얻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생각이다. 현지 대학을 찾아가고 자원봉사를 하며 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가 그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스스로의 기획과 실천으로 떠난 '착한 여행'이 그가 왔다 간 자리에 쓰레기보다는 미소를 남길 것만은 분명하다.

'착한 여행' 등으로 불리는 대안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는 소비적 여행이 남기는 환경오염, 현지인 착취구조, 왜곡된 관광문화 등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정의로운 소비를 하겠다는 계층이 늘어남에 따라 대안여행은 점차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대안여행의 개념혼선, 상업화의 부작용, 운동의 이분법적 시선과 계몽적 태도는 풀어야 할 과제다.

1-반젯마을서 소수민족과 이야기하며 걷는 모습 2-베트남 몽족과 바느질 체험 3-벤트남 반젯마을서 밥짓기 4-몽족과 물건 흥정 5-로드 스꼴라 6-라오스 딱밧
대안 여행에 열광하는 사람들

대안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자생적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2007년 NGO 이매진 피스가 만든 공정여행 온라인 카페에는 현재 33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정여행 방법과 후기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정보를 찾고, 정기모임 등을 통해 보다 공정한 방법의 대안여행 방법과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이매진 피스가 17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벌인 공정여행 포럼에는 100여명이 참석해 대안여행에 관한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대안여행가들이 이를 상품화한 예비 사회적 기업도 출현했다. 하자센터에 속한 예비 사회적 기업인 여행협동조합 맵(MAP)은 지난해 11월 문을 열고 국내외로 떠나는 공정여행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맵은 전북 진안의 한 할머니 댁에서 묵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지리산길 할머니네 홈스테이', 네팔의 여성 셰르파, 귀환한 이주노동자에게 안내를 받는 '네팔 공정여행 – 히말라야 트레킹' 등을 내놨다. 현재는 꿈 분석가 고혜경씨와 강화 아차도로 떠나는 마음치유 도보여행 상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NGO인 아시안 브릿지는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현지인에게 직접적인 이득을 주는 방식의 '착한 여행'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NGO 이장도 '책임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다.

주류 관광업계에서도 이런 공정여행 붐에 호응하고 있다. 하나투어는 올해 전국 관광학과 대학생을 상대로 한 공모전 주제를 '공정여행'으로 잡기도 했으며 내년께 공정여행 상품 출시를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레일은 올해 서울-곡성, 서해안, 남해-곡성 구간 등에서 자전거 열차를 운행했다.

'공정 여행'에 기꺼이 비용 지불

대안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정의로운 방법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원료 생산 현지 주민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공정무역의 정신을 여행에도 도입한 셈이다.

여행협동조합 맵은 '여행 경비가 현지인에게 직접 전달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을 공정여행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매진 피스도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현지인 운영 숙소 음식점 교통 가이드 이용하기)'을 공정여행 가이드라인 가운데 한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항공사나 여행사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고 지역민은 노동착취의 소외를 경험하는 대량관광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의 투어리즘 컨선(Tourism Concern)에 의하면 실제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여행할 때 쓰는 비용의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현지 공동체에 돌아가는 비용은 1~2%뿐인 경우가 많다.

이런 여행은 서구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대안여행 방식으로 주목받아온 것이다. 1989년 영국에서는 관광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정여행을 촉구한 투어리즘 컨선 운동이 출현했다. 미국에서도 남미에서 커피와 카카오 농사를 돕는 자원봉사로 여행을 겸한 글로벌 익스체인지(Grobal Exchange)가 대안여행을 주도했다.

이들은 현지인 가이드나 포터, 숙박업소 종업원을 비롯한 관광노동자가 정당한 대가와 노동조건을 적용받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직접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여행방식을 고른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음식을 선택해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

현지 황폐화 막는 '책임 여행'

대안여행은 관광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예방한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생태지역을 여행하지만 대량관광의 방법으로 행해질 경우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하는 에코투어의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정여행 가이드 북 <희망을 여행하라>에 따르면 여행자는 하루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남기고,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주민 한 명이 쓰는 양의 30배에 달하는 전기를 소비한다. 고급호텔 객실 하나에서는 평균 1.5톤의 물이 사용된다. 골프장이 들어서는 곳에서 사용되는 물 때문에 농사를 짓는 현지 주민은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안여행은 지나간 자리에 생채기를 남기는 기존 여행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을 보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생태관광을 지향한다.

이들은 도시락을 지참해 쓰레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여행한다. 일회용품 사용 역시 최소화 해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관광지역을 황폐화하는 물 낭비를 자제한다.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에서 낭비하는 물이 지역민에게 가뭄의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동수단도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의 '평화헌법(헌법 9조)' 수정 반대를 홍보할 목적으로 9월 한국을 찾은 NGO 워크나인 한국순례단은 걸어서 이동했다. 농사를 거들고 밥을 얻어먹으며, 여행지 주민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다.

대부분의 대안여행가는 자전거를 선호하고 기차, 버스 등 지역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한다. 탄소배출 최소화에 동참하는 뜻으로 차량이나 비행기를 통한 이동도 자제한다.

여행문화 성숙시키는 '착한 여행'

잘못된 여행문화를 바로잡는다는 점 역시 대안여행의 주안점이다. 이들은 관광 중 성매수를 결코 하지 않는다는 수칙을 만들어 왜곡된 관광문화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매진 피스는 '공정여행을 위한 10가지 방법'에서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아동매춘, 섹스여행, 비즈니스 매춘여행)'을 공정여행 가이드 라인 가운데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여행협동조합 맵도 '8가지 공정여행 원칙'에서 '현지인을 착취하거나 동물을 학대하는 일체의 행위(아동노동, 포터 혹사, 성매매, 동물쇼, 코끼리 투어 등)를 하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동남아를 비롯한 제 3세계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관광은 지구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해외 원정 성매매가 사회문제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대안여행의 정신은 더욱 유효한 측면이 있다.

현지인과의 '소통'을 여행의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대안여행가는 현지인과 소통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여행을 꿈꾼다. 여행과 자원봉사를 겸하는 방식을 택하는 이유다.

여행협동조합 맵이 운영하는 로드 스꼴라는 탈학교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자신이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그 나라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한 뒤, 현지인과 소통하는 여행으로 인생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교실이다.

이매진 피스도 여행인문학 강좌를 개설해 이론적 공부와 준비를 바탕으로 현지인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공정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공정여행 상품 과연 공정한가

그러나, 이런 대안여행의 상업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권위주의'가 대량여행의 문제점을 답습하게 만드는 역설도 있다. 관광상품화 한 공정여행 코스의 경우 기성여행사에 비해 가격이 높다. 여행지 국민에게는 공정하면서 국내 고객에게는 불공정한 상품인 셈이다.

대안여행 상품을 내놓은 NGO들은 기성 관광업체가 패키지에 참가한 관광객에게 거의 강요하는 '옵션' 등을 고려한다면 공정여행 상품 가격은 결코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어떤 목적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이 정당한지 납득할 수 있도록 집행내역과 예산을 세세히 공개하는 곳은 드물다.

정당한 소비와 지출이니 '믿고 따르라'는 식이라면 대안여행은 또 하나의 '우상'일 뿐이다. 일부 대안여행 활동가의 편향적 정치색과 계몽적 태도 역시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요소다.

개념혼선 역시 치명적인 약점이다. '공정여행', '책임여행', '착한 여행' 등은 모두 언어 자체에서부터 다른 여행을 불공정여행, 무책임여행, 못된 여행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선을 내재하고 있다.

대안여행이 이머징 마켓인지 여부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책임여행이 20여 년의 역사 속에 안착한 영국의 경우에도 책임여행은 전체 여행시장의 5%선에 그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정여행 단체들은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너무 크게 보고 있는 듯하다.

대안여행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과잉 낙관의 태도는 기성 여행사가 여행을 바라보는 상업적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정여행은 공정무역과 같이 로하스(LOHAS) 계층이 더 비싼 가격을 치르고라도 정의로운 여행을 하겠다는 태도가 확산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도 "일부 매개자가 이것을 이머징 마켓으로만 이해하고 본래의 뜻을 왜곡한다면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의 씨앗을 망가뜨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