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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정' 문학의 길을 밝히다

[우리 문단의 스승과 제자 인맥도]
정지용과 오장환 대표적, 김동리·조지훈도 후학양성 아름다운 인연
  • 장 그르니에
'다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온 이 같은 행운을 기뻐할 뿐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절한 시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경도하고 스승을 얻고, 그리하여 여러 해 여러 작품들을 통하여 그 스승을 끊임 없이 존경할 필요를 느꼈던 나 자신에게는 더 없이 좋은 행운이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 앞에 붙인 알베르 카뮈의 헌사다. 장 그르니에의 이 책은 청년 카뮈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카뮈는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라 칭송했다.

주지하다시피 카뮈는 가난했던 10대 시절, 스승 장 그르니에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눴고, 그의 작품 <반항하는 인간>, <안과 겉>, <결혼, 여름>에 수록된 에세이 <사막>을 그르니에에게 바친 바 있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저 바다 건너 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 문학계의 사제를 살펴봤다.

별명이 '신경통'이었던 정지용

  • 알베르 카뮈
문단의 스승과 제자 '인맥도'를 그리려면 한국 근대문학이 태동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터다. 스승 제자 인연을 맺기 쉬운 곳은 학교, 근대문학이 태동하던 1920~30년대는 대학보다 현재의 대학 기능을 했던 고등보통학교에서 그 인연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지용과 오장환의 관계다. 시인 정지용은 1918년 휘문고등보통학교(이하 휘문고보)에 입학해 1학년 때 '요람 동인'을 결성해 동인지를 간행하고 학교 '문우회' 학예부장을 맡을 만큼 어려서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예과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모교인 휘문고보로 돌아와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가 심취한 것은 인도의 타고르, 기타하라의 시, 중국의 한시 같은 동양 사상에 바탕을 둔 시였다. 때문에 스승으로서 그의 모습은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는 그의 책 <나는 문학이다> 정지용 편에서 "영어만 가르치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는지 종종 학생들에게 신경질을 부려 '신경통'이란 별명이 붙게 된다"(184페이지)고 밝혔다.

이때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제자가 오장환 시인이다. 그는 1931년 휘문고보에 입학해 정지용으로부터 시를 배웠고, 이는 그의 시작(詩作)에 중요한 전기가 된다.

  • 정지용 시인
오장환은 정지용이 창간부터 관여하고 있던 교지 <휘문>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1933년 <휘문>지에 기재된 시 '아침'과 '화염' 등이 대표적이다. 오장환 시의 특징으로 전통과 낡은 유습에 대한 거부반응, 병적 관능, 퇴폐성 등을 꼽지만, 초기 습작기에 쓴 그의 시에는 정지용 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많다. 그가 쓴 동시 '느림봄'에는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구(해설피엔 게으른 송아지도)가 발견된다.

'노래가 먼저 건너옵니다./ 누가 부는지/ 버들수페 호들기소리./ 가까이 들려오는 호들기소리./ 좁은 개울이지만/ 그래두 발벗고 건느십시오./ 해설피엔 게으른 송아지도/ 풀바테 무릅꿀코 울습니다' (동시 '느린봄' 전문)

참고로 '해설피'란 말은 충청권 시인들만 쓰는 단어로, 충청권에서 해가 설핏 기울 무렵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동향(충북)의 사제지간이었다. 정지용 역시 <어린이>지에 동시를 여러 편 발표한 바 있다.

정지용은 오장환의 재능을 인정하고 아꼈다고 전해진다. 도종환 시인은 논문 <오장환 동시의 세계>에서 "오장환 시인이 쓰는 동시의 내용적, 형식적 특성까지도 거의 (정지용과) 유사하다는 점이 실제 작품의 분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자도 밟지 못한 엄한 스승, 김동리

  • 오장환 시인
1970년대 말까지 문인을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대학의 학과는 중앙대 문예창작과가 유일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의 전신은 1953년 문을 연 서라벌예술학교. 문예창작과는 서울대 문리대와 더불어 막강한 문단의 인맥을 자랑하는데, 1972년 중앙대에 합병됐다. 중앙대와 서라벌예대 두 학교의 명실상부한 '사부'로 꼽히는 문인이 소설가 김동리다. 서라벌예대 시절부터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해 중앙대 예술대학장까지 역임했다.

스승으로서 그는 굉장히 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송작가 홍하상 씨는 한 공개편지를 통해 "대학 4년 간 선생님 앞에서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수업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너무 엄하셨기 때문에 선생님 그림자도 밟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홍 씨의 동기가 수업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추적추적이란 어휘가 맞지 않는다고 100분간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산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는 문장을 쓴 학생도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은 없다는 말로 야단을 맞았다.

분명 조사하지 않고 작품을 쓴 것이라는 것이 꾸중의 이유. 작가인 자신도 들꽃 이름을 알기 위해 농부들에게 꽃 이름을 묻고 메모해서 소설을 쓰고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도 그렇게 알게 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은 소설가 김주영, 김원일, 이문구, 한승원, 오정희, 조세희, 하일지, 송기원 등이다. 서라벌예대, 중앙대에 입학하지 않고서도 그를 스승으로 모신 문인은 수십 명에 달한다.

  • 197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 학장 시절 교정에서 김동리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은 김동리 선생에게 시를 보여준 후 "소설을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평을 듣고 단편 '불안시대'를 썼고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했다. 박경리 선생은 책 <영원으로 가는 나귀>에서 "선생님은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과반의 작가를 길러내셨고 현대문학의 지평을 그으신 분이다.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셨던 선생님, 배은망덕한 이 제자, 저승에 가게 되면 그때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주십시오"라며 생전에 제대로 찾아 뵙지 못한 회한을 털어놨다. 이 책은 김동리 타계 10주년을 맞아 지난 2005년 71명의 문인이 낸 추모문집이다.

근면하면서도 관대했던 스승, 조지훈

1948년 고려대 국문과의 틀을 만들며 교수로 부임한 문인이 조지훈 시인이다. 조지훈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명륜전문학교 강사를 지내다 이듬해 경기여고 교사로 재직하고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했다. 1948년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임명되며 1968년 타계하기까지 20여 년 고려대에 몸 담았다.

제자들은 스승 조지훈을 호탕하면서도 섬세하고 자상했던 스승으로 기억하는데, 술을 좋아했던 시인은 술에 대한 일화를 많이 남겼다. 그 중 한 가지는 아무리 술이 취해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꼿꼿한 자세. 밤새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까지 입고 있던 모시옷이 구김살 간 데 없이 반듯했다고 전해진다.

  • 김주영 소설가
그의 제자인 김인환 고려대 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그런 자세가 건강을 더 빨리 해치게 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은 삶 자체가 예술이었으며 지사로서의 마지막 현인이라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조지훈은 제자들과 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늘 "책을 많이 읽고 산문을 써야 한다. 시만 쓴다고 다 시인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고려대에서 그를 사사한 제자는 김명인 시인, 최동호 시인, 정진규 시인과 소설가 최창학 등이 있다. 김명인 시인은 같은 대학 문예창작과에, 최동호 시인은 국문과에 재직 중이다.

스승이 된 젊은 작가들

최근 몇 년간 대학 문예창작과 강의가 소규모 실기 위주로 편성되면서 한창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이 강단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때문에 요즘에는 스승과 제자 나이 차이가 거의 없거나 역전되는 현상도 있다.

  • 김원일 소설가
서울예대에는 김혜순 시인이 시를, 평론가 이광호 씨가 이론을 가르치는데, 몇 년 전 소설가 한강 씨가 소설창작실기 교수를 맡았고 소설가 김태용 씨가 초빙교수로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소설가 김경욱 씨가 서사창작과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고 소설가 한유주 씨 등이 글쓰기 강의를 맡고 있다.

소설가 박범신 씨가 교수로 있는 명지대 문예창작과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합평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명지대 문창과 출신의 소설가 이기호 씨는 2년 전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했다. 임철우, 최수철 소설가가 교수로 있는 한신대 문예창작과와 동국대 문예창작과 역시 박성원, 이원, 손홍규 등 젊은 문인들이 합평 수업을 담당한다.

이들은 예전 '그림자도 밟지 못한 엄한 스승'이 아니라, 문학적 고민을 함께 나누는 선배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문학사 등 지식을 주는 수업보다 학생들의 작품을 함께 읽고 평하는 '합평' 수업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카뮈의 저 위대한 문장으로 돌아가자. 그는 말한다. 문학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정신이 정신을 낳은 것이며 인간의 역사는 다행스럽게도 증오 못지 않게 찬미의 바탕 위에도 건설되는 것이라고. 이것은 비단 그 시대, 그들의 것만은 아닐 터다. 지성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유다.

'스승과 제자는 오직 존경과 감사의 관계 속에 서로 마주 대하게 된다.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식의 투쟁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면 그 생명의 불이 꺼질 줄 모르며 서로서로의 생애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대화인 것이다.

  • 오정희 소설가
이 오랜 기간에 걸친 교류는 예속이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장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을 야기시킨다.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도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 스승을 흐뭇해한다.' (알베르 카뮈, '<섬>에 부쳐서' 중에서)

  • 이문구 소설가
  • 조지훈 시인
  • 최동호 시인
  • 김명인 시인
  • 김인환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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