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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전하는 '목소리의 마법'

[내레이션, 그 속 깊은 이야기]
프로그램 성격 따라 성우, 아나운서, 연예인 기용 효과 극대화
  • MBC 스페셜-승가원의 천사들, 채시라
'서술·이야기란 뜻으로 영화·텔레비전·연극 등에서 화면 또는 무대 장면에 설명을 넣는 기법'을 우리는 내레이션(narration)이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사용되며 드라마에선 심리묘사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 이 내레이션 작업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TV에 이어 영화, 광고에까지 일고 있는 내레이션의 면면을 살펴본다.

내레이션, 진정성을 위한 도구

"내레이션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작업."

비슷한 색깔을 가졌지만 흘러나오는 소리는 전혀 다른 두 프로그램이 있다. KBS <인간극장>과 <다큐멘터리 3일>. 이 프로그램은 일반 서민들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되는 진솔한 이야기들이다. <인간극장>은 특정 개인이나 가족, 단체 등 우리 삶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밀착 취재하며 리얼한 상황을 담아낸다.

  • KBS1-인간극장
<다큐멘터리 3일>은 특정한 공간을 제한된 72시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한국사회의 단면을 세밀하게 관찰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상황변화와 인간 군상의 일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린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가공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진짜' 우리의 삶을 엿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말 그대로 '진짜'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극장>과 <다큐멘터리 3일>은 내레이션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크다. 그런데 이 '진짜'를 담는 기법은 비슷한데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사람들에서 차이를 보인다. <인간극장>은 아나운서를 기용하는 반면, <다큐멘터리 3일>은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인사에게 내레이션을 맡긴다. 왜 두 프로그램은 차이를 보이는 걸까?

진정성의 접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극장>은 2000년부터 시작해 10년 동안 안방극장을 지킨 프로그램이다. 약 30분 동안 방영되는 5부작 휴먼 다큐멘터리로 웬만한 일일드라마 못지 않은 구성을 보인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KBS 베테랑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아나운서만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는 화면에 비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사 '제3비전'의 장강복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용과 화면에 집중할 수 있는 내레이션이 필요했다. <인간극장> 초반에는 성우에게 내레이션을 맡기기도 했으나, 이금희 아나운서를 기용한 이후부터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선호하고 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다정다감하고 차분한 말투는 성우의 멋스럽고 깔끔한 목소리보다 가공되지 않은 감칠 맛을 낸다. 그 이후부터 <인간극장>의 진솔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화려하지 않은 어법과 차분한 어투, 절제된 감정표현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한다."

  • MBC 언더커버 보스, 박명수
<다큐멘터리 3일>은 3년간 진행되면서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자주 빌렸다. 김C, 양희은, 양희경, 유열 등이 참여해 친숙한 내레이션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큐멘터리 3일>은 기획초기부터 성우나 아나운서를 배제했다. 역시 프로그램의 진정한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다큐멘터리 3일>의 KBS 정승우 PD는 "특정한 장소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다 보면 엄숙하고 차분한 어조보다는 친숙한 말투와 목소리가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담게 될 경우 감정이 드러나는, 우리가 아는 친숙한 내레이션이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는 강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다큐멘터리지만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상당히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방송뿐만 아니라 TV 광고에서도 이 진정성을 위한 메시지가 전파를 타고 있다."왜 간식이 심심풀이일까. 왜 간식을 우습게 보는 걸까. 간식에 책임감을 더하자"라는 한 제과업체 광고는 개그맨 강호동의 멘트다. 강호동은 목소리만 참여했다.

재미있는 건 개그맨이, 그것도 씨름선수 출신의 먹는 걸 좋아하는 연예인이, 캠페인을 전달하듯 광고 내레이션을 펼쳐 대중에게 아이러니한 반응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 소비자들에게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제품에 대한 진정성을 전달하려는 의도다. 이런 경향은 기업 이미지 광고나 공익 캠페인 광고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 광고기획 관계자는 "최근 의식주나 주거생활에 있어서 TV 광고가 내레이션을 기용하는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과대광고를 넘어 솔직하게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이심전심이라는 전제하에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뿐만 아니라 그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다큐멘터리 3일
스타 내레이션 열풍, 왜?

채시라, 김남주, 이윤지, 이현우, 박명수, 김남길, 오만석, 고현정, 김희선, 김제동, 박규리.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 다큐멘터리나 리얼 프로그램의 내레이션 참여로 주목 받은 연예인들이다. 최근 연예계는 '내레이션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연예인들의 내레이션 참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 열풍의 주된 원인은 일주일에 30편 이상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관련 프로그램 덕이다. 매주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수는 10편 내외. 케이블 채널의 다큐멘터리 방송까지 합산하면 매주 상당한 수의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타는 셈이다. 단편적인 다큐멘터리의 경우 더욱 스타들의 내레이션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고, 친숙한 목소리가 재미를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연료에서 1편당 아나운서를 기용할 경우 10만 원 미만이 지급되며, 성우는 50만~200만 원, 유명 연예인은 300만~500만 원 선 등으로 심한 차이를 보이지만, 스타를 선택하는 건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투자 대비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지상파 방송 교양팀 PD는 "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유명 연예인을 선호하는 건 어쩌면 생존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면 생존 여부와 별개일 수 없다"며 "높은 제작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스타를 기용하지만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는 묘책으로 해석해도 좋다. 다큐멘터리, 즉 교양 프로그램이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 다큐멘터리 3일, 못골시장 편
연예인들 또한 다큐멘터리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만나 따뜻하고 안정된, 지적인 이미지로의 변신이 가능해졌다.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또 하나의 단면이다. 채시라는 얼마 전 의 내레이션으로 감동의 선율을 전했고, '요리 박사'로 통하는 이현우는 에서 신뢰감을 높이는 내레이션을 보여주었다. 방송가에선 연예인들의 풍부한 감성과 언어 전달력은 아나운서나 성우에 못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연예기획사 웰메이드스타엠의 신승훈 대표는 "얼마 전 목소리 기부라는 형태의 선행이 줄을 이으면서, 스타들도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며 "특히 다큐멘터리와 연예인들의 공동작업이 성공하자 스타들의 내레이션 열풍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내레이션도 입맛 따라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케이블 채널 tvN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에서 성우 서혜정의 말투는 대대적인 인기를 끌며 내레이션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정형화한 내레이션을 예능적으로 풀어 무미건조한 억양과 말투를 새롭게 만들어낸 일대 사건이었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성우에게조차 '도전 아닌 도전'으로 방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레이션의 변화 하나가 프로그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영화 <오션스>도 새로운 내레이션의 법칙을 시도했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보석과 진지희를 기용해 부녀 내레이션을 탄생시켰다. 두 사람은 해양 동물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두 사람 외에 눈에 띄는 건 배우 배한성의 합류다. 배한성은 <오션스>의 전체적인 가이드 역할을 하며 정보석, 진지희가 놓친 부분을 설명해 준다. <오션스>의 미국판은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일본판은 미야자와 리에 등 한 명이 내레이션을 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오션스>의 홍보사 영화인측은 "타깃에 따라 내레이션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오션스>의 경우 정보석과 진지희를 기용해 가족 단위의 관객들에게 타깃을 맞췄다. 다큐멘터리 영화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재해석된 것이다. 배한성의 합류는 성우 특유의 차분함과 절제된 어조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연예인과 성우의 내레이션 협연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큐멘터리의 성격에 따라 내레이션도 변하기 마련이다. 은 매주 주제에 따라 내레이션의 색깔이 변한다. 최근 방송된 <승가원의 천사들>은 채시라의 내레이션으로 더욱 빛을 본 경우다. 이어서 <나는 한국남자와 결혼했다>는 배우 사미자, 전노민, 박지빈, 김나운 등 4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내레이션을 펼쳤다.

<나는 한국남자와 결혼했다>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접근 대신 친근하고 개성 있는 터치로 다가간 프로그램. 네 명의 배우들은 감칠 맛 나는 목소리로 감정을 실어 다문화 가정에 따뜻한 시선을 불어넣었다. <치킨>편에서는 성우 양정화가, <도시의 유인원>편에선 개그 듀오 컬투 등이 내레이션을 맡아 색깔 있는 방송을 이끌어냈다

의 윤미현 PD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내레이션의 선택을 좌우한다. 어법과 말투가 안정적인 성우들은 전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건, 사고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적합하고, 가족이나 문화 등을 다루는 방송에서는 감정을 움직이는 정서를 담는 연예인들의 내레이션이 훨씬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성우협회 김익태 이사장 인터뷰
최근 연예인들의 내레이션 열풍에 대한 생각은.

공식적으로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언어에 대한 깊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 위주의 말투와 어법이 방송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성우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데.

누구의 영역이라고 따로 나누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잘 지켜졌는지도 의문이다. 내레이션이 성우들의 고유영역이라고 규정지은 적은 없다. 단지 최근에 연예인들의 내레이션 참여도가 높아지다 보니, 지금처럼 성우영역이라고 인식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 관심들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성우들에게 작용했으면 한다.

성우들의 자리가 위축됐다는 시선에 대해.

사실 방송사에서 우리 성우들의 자리가 위축됐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현재 성우협회에는 700여 명의 방송사 공채 출신들이 가입돼 있다. 이들을 내세워 나름의 자구책으로 교육 사업을 통해 우리 영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 사업을 통해 우리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연계사업도 전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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