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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 애국주의를 넘어

[문학, 8월의 역사를 보다] <불멸> <가미가제 도고다이> 등 정통 서사와 팩션형 소설 발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문학계에서도 다양한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올해 발표된 소설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뉜다. 우선 한일 강제병합 시대를 살았던 실존 인물을 그리는 정통 역사소설의 형태다. 이문열의 <불멸>, 권비영의 <덕혜옹주>, 조성기의 <좌옹의 길> 등이 대표적인 사례.

두 번째는 10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가정하는 팩션형 소설이다. 김별아의 <가미가제 독고다이>, 강동수의 <제국익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팩션형 소설은 일제시대와 친일을 다룬 이전 문학작품들과 궤를 달리 한다.

실존인물로 역사 그려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출간된 첫 소설은 이문열의 <불멸>이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 소설은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는 올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소설은 안 의사가 열여섯 청년이던 시절부터 시작해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이듬해 3월 형장에서 짧은 삶을 마감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불멸>에서 안중근 의사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다른 일에 정신을 팔기에는 가혹한 시대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던 것.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안 의사의 삶은 경건함 그 이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소설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덕혜옹주의 삶을 추적한다. 아버지 고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덕혜옹주는 한일병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했다. 끌려가다시피 한 일본 유학생활 내내 일본인들의 비웃음에 시달렸고, 첫눈에 서로 끌렸던 남자와는 맺어지지 못했다.

일본은 격에 전혀 맞지 않는 일본 귀족을 결혼상대로 들이민다. 망국의 황녀이기에 쌓여가는 고통과 분노, 소원해지는 남편, 조선인의 피가 절반 흐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 고국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결국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덕혜옹주의 로맨스나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 중에는 소설적 설정이 많다.

조성기 작가의 <좌옹의 길>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이자 친일파였던 좌옹 윤치호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애국가를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윤치호는 개혁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나 한일강제병합 이후 친일파로 변절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영어로 쓴 윤치호의 일기가 남아 있다는 것.

작가는 편역된 이 일기를 토대로 민족주의자인 유학파 지식인 윤치호가 친일을 선택하게 되기까지의 시대상황과 내면 갈등을 그렸다. 작가가 본 윤치호는 민족진영의 분열을 회의하면서 친일파 행태를 비판했던 경계인이다. 윤치호의 고민과 개인사, 당대 분위기의 생생한 묘사가 담겼다.

팩션형 인물의 탄생

앞의 세 작품이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작가의 시선이 녹아든 정통 역사소설의 형태라면, 최근에는 작가의 상상으로 과거를 반추한 팩션 형태의 소설도 선보인다.

장편 <미실> 이후 줄곧 실존 인물에 관한 역사소설을 쓴 김별아 작가는 최근 <가미가제 독고다이>에서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태평양전쟁에 관한 상상을 펼친다. 주인공 하윤식은 태평양전쟁 말기 구식 전투기를 몰고 자폭하는 일본군 가미가제 특공대에 차출된 친일파 집안 출신의 '모던 뽀이'.

소설은 그가 강제 징집돼 가미가제 특공대가 된 사연을 10장의 이야기로 우회한다. 윤식의 아버지 ?시는 열일곱 나이에 단신 상경해 일본인 행세를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일에 매진한다. 이후 진주 하씨 양반 족보를 돈으로 사서 이름을 하계운으로 바꾸고, 몰락한 양반가 출신 개화 여성을 아내로 맞아 아들을 낳으니 첫째는 경식, 둘째가 주인공 윤식이다.

별 볼품없는 윤식은 잘생기고 공부 잘 하는 형 경식이 이복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주색잡기로 삶을 탕진한다. 형 경식은 아버지의 친일과 탐욕에 환멸을 느끼고 '주의자'가 되고, 윤식은 그 형의 옥바라지 과정에서 마주치게 된 형의 애인 현옥을 마음에 품게 된다.

사랑은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는 것이어서, 윤식은 현옥을 통해 조선인 빈민촌 현실을 체험하게 되고 충격을 받고 급기야 형을 대신해 학도 지원병에 나가기로 한다. "시대의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을 그리려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전쟁의 비극과 광기를 희극적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강동수의 <제국익문사>는 고종 직속 비밀정보기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제국익문사를 소재로, 대한제국의 멸망사를 상상한 팩션이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동자 우범선의 행적을 비중있게 그리며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범선이 1903년 자객에 의해 중상을 입지만 목숨을 구하고, 이후 우범선이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전 개화파 박영효 일파와 함께 고종을 감금하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해 정변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민 것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과학자 우장춘의 아버지로 알려진 친일파 우범선은 1903년 고영근에 의해 살해당했다.

집단적 죄의식 탈피, 입체인물로 발전

정통 서사의 방식이든, 팩션 등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든 올해 발간된 일련의 문학작품은 친일문제를 다룬 이전 문학작품들과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이들 소설이 '가해자 일본'과 '피해자 조선' 이분법으로 나누는 집단적 민족의식의 시선에서 탈피했다는 점이다.

1900년대 조선의 식민 상황을 논하며 흔히 한국 사회는 '일본 민족=식민주의의 가해자=집단적 유죄' 대(對) '한국 민족=식민주의의 피해자=집단적 무죄'의 등식을 성립시켜왔다. 집단적 죄의식은 한국 사회가 식민주의 과거와 관련해 일본에 강요했던 논리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논할 때, 어느 민족에 속했는가를 기준으로 인간과 역사를 재단하는 민족주의 논리는 문화예술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문학은 집단적 피해의식에서 탈피해 오히려 설득력 있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1996년 MBC 광복절 특집 드라마 <마지막 황녀 덕혜> 등에서 덕혜옹주의 남편은 꼽추나 포악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소설 <덕혜옹주>에서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 백작은 '부인을 이해하려 했으나 좌절된 인물'로 등장한다.

두 번째로 인물 묘사에서도 평면적 기술에서 탈피해 친일파, 독립운동가 개인의 고민, 좌절,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문학의 임무는 누가 친일파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친일파로 지목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생각과 고민, 소망과 좌절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요."

<좌옹의 길> 출간 후 작가 조성기 씨가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가미가제 독고다이> 역시 비장한 역사적 현실에서 희극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사랑을 통해 변하는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전 일제시대를 다룬 여느 소설과 궤를 달리한다.

한일관계를 다루는 문학작품은 이제 감상적 애국주의를 넘어 역사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선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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