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강홍구 개인전 <그 집-THE HOUSE>

그집-붉은 담쟁이, 2010
강홍구 작가는 사라져 가는 집들, 나무와 골목, 빨래가 널리고 개들이 오가고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다투었으나 포클레인에 밀려나기 직전인 삶의 터전을 찍어 왔다.

10년이 넘었다.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찍어도 찍어도 재개발과 뉴타운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원주민들은 집과 삶터를 잃고, 사람들은 죽어가고, 투기와 비리와 부패의 사슬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뚝심 있는 작가라도 악몽에 시달릴 만하다.

"가끔 집에 대한 꿈을 꾼다. 구조가 기이한 불편한 집들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세들어 살면서 겪었던 집들이 가진 나쁜 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집이다. 그런 꿈을 꾸다 깨었을 때는 꿈 속에 있는 그 집에서 이사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낡은 집, 이제 사라져 없어진 집들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업(業)인가. 이제 그 집들과 헤어지고 싶기도 하다."(작가노트 중)

그러나 뚝심만큼이나 의리 있는 작가가 저 위기의 집들을 단번에 내칠 리는 없다. 대신 작업 방법을 조금 바꿔 보았다. 사진을 흑백으로 프린트해 직접 색칠했다. 이것은 기록인 동시에 제의다. 어떤 공적인 주장이기 이전에 사적인 오마주다.

그 집을 짓기 위해 돌과 나무와 시멘트를 날랐던 어떤 손들에 대한, 작가 자신을 포함해 그 집에 몸을 누이고 지문을 남겼던 삶들에 대한, 이제는 무너진 집에 무참히 버려진 살림살이에 대한, 어떤 이론도 통하지 않는 원초적 건축 혹은 "생존의 건축"에 대한.

그집-살구,2010
지난 세대, 아니 단 몇 년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너무 빨리 쉽게 잊혀진다.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들뜬 욕망만 남는다. 인간이 무엇인지 돌아볼 기회는 없다. 다들 쉽고 빠르게 힘을 갖는 일에만 매달린다. 당장 집이 없어질 참이다. 밀려나고 떠돌아다니고 급급해 한다. 삶이란 어느새 당연히 그런 것이다.

강홍구 작가의 집들은 이런 현실을 비춘다. 향수나 쓸쓸함을 넘어서는 고통을 준다. 언제나 그랬으나, 이번에는 좀 더 그렇다. 사진마다 남은 작가의 손길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본격적인 애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술이란 게 원래 환상에서 시작해 환멸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작업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또 있을 것이다.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그 집-THE HOUSE>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원앤제이갤러리에서 10월3일까지 열린다. 02-745-1644


그집-황토, 2010
그집-푸른지붕, 2010
그집-암벽, 2010
그집-상추, 2010
그집-붉은지붕, 2010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