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변신] 교보문고 광화문점 리노베이션 재개점 '미래형 서점' 표방청소년 위한 인문학 서점 콘셉트 '인디고 서원' 눈에 띄네

책 읽는 사람들 모습 (교보문고)
최근 서점가에는 두 가지 큰 이슈가 있었다. 먼저 밝은 소식은 지난 8월 말, 대형서점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5개월 만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점했다는 소식이다. 리노베이션 결과 서점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재개점과 함께 여러 가지 큰 행사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평소의 몇 배 이상의 인파가 몰려 명불허전의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어두운 소식은 30년간 부산을 지켜오던 '동보서적'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1980년에 개점한 동보서적은 부산 최대의 번화가에서 2001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대형서점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의 무차별 가격할인과 부산으로 내려간 서울의 대형서점 개점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누적 적자를 끝내 피하지 못했다.

동보서적의 폐점은 지난 2003년 종로서적의 폐점과 비슷한 충격을 안겨준다. 당시 종로서적은 오랫동안 국내 최고의 서점으로 군림해왔지만 1980년대 교보문고, 1990년대 영풍문고의 등장으로 점차 입지를 잃었다. 종로서적보다 규모가 큰 두 대형서점은 각각 광화문역과 종각역이라는 접근 편이성까지 갖추며 기존 종로서적의 고객을 고스란히 흡수해갔다.

작은 서점의 부침은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종로서적과 같은 대형서점의 폐점은 이후 서점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서점이 더 이상 '책방'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그 변화의 단초가 됐다. 공익적인 성격이 강했던 서점도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사업장이기 때문에, 책이 놓여진 공간을 통해 여러 가지 수익을 이뤄내야 사업이 가능하다는 마인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서점 안에 패스트푸드 매장이나 커피숍 등 독서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종로서적의 침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서점은 그 시점부터 이미 책방 이상의 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객은 이제 서점에서 책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쇼핑몰에서처럼 여러 가지를 한 공간에서 보길 원했다. 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바뀌어가는 고객들의 욕구에도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서점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런 '시장'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곳은 현재 몇몇 대형서점밖에 없다는 것이 서점 환경의 현실이다. 서점 내 세련된 휴식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서점들은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또 오프라인 서점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한 온라인 서점의 약진은 상위 대형서점을 제외한 나머지 서점들의 입지마저 앗아가고 있다.

결국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상위 대형서점만 출판시장을 독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해외 서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서점 판매협회 집계를 보면 작년 한해만 총 102개의 소형 서점이 문을 닫았다. 영국 가디언 지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중소형 서점의 수는 27%나 감소해 그 위기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소형 서점 감소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한 가지 전문 분야를 다루는 서점이 집중적으로 많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디고 서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하는 세미나
'BORDERS' 같은 대형서점 체인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BORDERS가 영업을 중단한 주된 이유는 인터넷 서점의 대거 가격 할인과 전자책 이용 증가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도 '반스 앤 노블'의 인수처를 찾고 있고, 일본의 기노쿠냐 서점도 몇 년 전부터 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원인은 인터넷 서점의 성장에서 비롯된다.

오프라인 서점의 침체와 온라인 서점의 급성장은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정가제의 의미가 상실될 정도로 할인 폭이 너무나 크다는 점에 있다.

서점의 인터넷 진출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만, 인터넷 서점도 자본력이 있어야 할인율이나 편의 제공이 가능하다. 이런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 효과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성화된 서점에서 파는 것도 인터넷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중소 서점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 중소 서점 퇴출의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인디고 서원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콘셉트에 어울리는 북카페의 외형에 관련 콘텐츠를 알차게 채운 인디고 서원은 온라인 서점도 운영하지 않고 철저히 정가제로만 도서를 판매한다.

이곳은 여섯 가지 서가분류(문학, 역사/사회, 철학, 교육, 생태/환경, 예술)에 따라 매월 한 번씩 저자와 청소년들의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가 하면, 전 세계 6개 대륙에서 온 45명의 창조적 실천가들과 함께 '인디고 유스 북페어'를 통해 소통의 장을 만드는 등 다양한 인문학 행사들을 꾸준히 열며 작지만 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물건의 재구성>의 저자인 연정태 씨가 인디고 서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하지만 인디고 서원처럼 나름의 운영 철학을 견지하며 경영을 이어가는 중소 서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원래의 공공적이고 인문사회적 의미가 퇴색되고 대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가는 흐름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그 흔적은 바로 이번에 바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서점 본래의 의미마저 위태롭게 하는 바로 이런 변화 때문에 고객들은 오히려 다소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소통하는 미래형 서점'을 이번 리노베이션의 콘셉트로 설정했다. '미래형'이라는 전제로 인한 변화에는 반가운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먼저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와 성리학자 채지홍의 서재 이름을 본떠 만든 '구서재(九書齋)'와 '삼환재(三患齋)'는 양질의 인문사회서적을 출판사의 규모와 관계없이 추천을 통해 한 달간 전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영국서점에서 시도했던 주문형 출판도서 코너(POD·Publish On Demand)인 '책공방'과 저자 강연도 독자 중심의 서비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새로운 만큼 아직까지 고객들에게는 낯선 느낌이 앞선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방문기를 보면 백화점이나 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입구와 적지 않은 면적을 차지한 편의시설은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산만한 인상을 준다는 평이 많다. 한 블로거는 "예전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책을 읽는 데 집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트인 느낌이라 시선이 분산되는 느낌"이라는 글을 올렸다.

바뀐 외관에 낯선 인상을 받는 것은 출판계 관계자도 마찬가지다. 한 출판인은 "이번 '삼환재'나 '구서재'의 추천도서 코너는 의도는 좋지만 이름도 어렵고, 지식인 계층이나 고급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자리처럼 느껴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고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셉트는 아니라, 그 의도대로 좋은 방향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며 판단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혹자는 교보문고가 좋고 혹자는 영풍문고가 좋다. 어떤 이는 아직도 동네 서점을 그리워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이런 취향과 관계 없이 인터넷 서점을 즐겨 찾는다. 서점이 '책방'이던 시대가 지나고 서점의 정의도 이처럼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상업화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의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은 '좋은 서점'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