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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도시의 속살을 저미다

[예술, 도시를 말하다]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도시의 화려함 이면 환부에 메스
  • 이창원 '도시유감'
이 땅에서 '도시'는 표준어가 된 지 오래다. 농촌, 또는 촌락과는 어의상 대척점에 있을 뿐 현실에서 이들은 도시에 철저하게 밀려나 있다. 우리네 삶은 도시라는 공간에 옹이처럼 고착돼 있는 양상이다. 통계는 이 엄혹한 현실을 강요하듯 확인시킨다.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사람의 비중은 82% 가까이 된다. 1990년 74% 수준이었던 도시 인구 비율이 20여 년 만에 8% 나 급증했다. 도시에 인구가 몰리는 추세는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이래저래 우리의 삶은 도시와 엮여 있고, 점점 빠르게 진행중이다. 도시는 더욱 삶(인간)을 말하고,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어느새 도시는 인간의, 사회의 가장 깊숙한 층위를 지닌 자화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예술이 도시를 소재로, 모티프로 삼는 주요한 배경이다.

오늘날 도시라는 개념은 근대 산업혁명 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물질주의와 기계문명으로 상징되는 도시는 이전의 삶과 사회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바꿔놓았고, 그 속성은 시대를 타고 더 강고해졌다. 도시는 더 이상 삶의 안식처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인간을 압박하거나 무기력하게 하고, 심지어 떠나줄 것을 요구한다. 도시는 물신(物神)을 향한 욕망으로 꿈틀대고 적자생존의 장으로 변해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국내 도시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은 그러한 도시의 함의를 줄곧 담아 왔다. 도시의 치부를, 추악함을 경고하고, 때론 메스를 들이대 건강성을 회복하면서. 예술은 도시와 긴장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 임민욱 작가의 'SOS-채택된 불화'
국내 예술에 비친 도시는 대게 양면적이다. 정확히는 도시의 화려한 이면에 은폐된 우리 사회의 환부를 향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적 욕망에 길들여지거나 병리학적 징후를 지닌 도시인을 드러내는 형태다. 김애란의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물질적 재화에 대한 필요와 소비욕구의 총체로 상징되는 편의점을 통해 과거의 정치적 지배보다 한층 정교해진 '자본의 지배'를 보여준다.

'도시'를 대표하는 서울을 모티프로 8명의 여성작가가 쓴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는 화폐 가치와 대상의 물상화에 기반한 서울을 사회적 고립상황이나 현대인의 비인격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차용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그린 연극 <서울소움>(조 펜홀 작, 박재완 연출)은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도시인의 비정상적인 단면을 성찰한다.

물신을 쫓은 도시 재개발이 가져온 뿌리 뽑힌 삶, 정체성 상실, 도시 불균형을 고발하는 작품도 한 주류를 이룬다. 도시 재개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담은 윤고은의 단편 <Q>, 대도시 재개발 건물을 배경으로 쓴 황정은의 장편 <백의 그림자>는 폭력적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 애잔한 삶을 그리고 있다.

강남 형성사를 토대로 쓴 황석영의 <강남몽>, 용산 참사를 모티프로 한 주원규의 <망루>는 재개발에 감춰진 물욕과 폭력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들의 창립전과 이듬해 <도시와 시각전>을 통해 미술가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이래 최근에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도시 내부를 들여다본다.

  • 홍상수 영화 <하하하>
강홍구 작가는 10년 넘게 재개발에 밀려나는 오래된 집과 동네를 찍어 온 사진을 통해 "한국의 현대화는 고유의 개인적 삶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고발한다. 임민욱 작가 는 미디어시티서울2010에서 '손의 무게' 비디오 작업을 통해 한국 개발주의의 상징적 장소를 포착, 도시의 모순과 균열을 보여준다.

도시인들의 대화 단절과, 고독, 불신은 여전히 현대 도시인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김영하의 <사진관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부부관계, <오빠가 돌아왔다>의 가족관계가 그러하다. 연극 <잠 못드는 밤은 없다>(히라타 오리자 작, 박근형 연출)는 일본의 '히키고모리', '이지메' 같은 소외 문제를 다뤄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의 문제점을 시사했다.

도시의 일상이 늘 어둡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 중심부의 공간들과 주류의 삶에 주목하여 이 시대의 징후를 드러내온 정이현 소설가는 <달콤한 나의 도시>, <낭만적 사랑과 사회> 등을 통해 도시 여성의 감수성과 도시의 다면성을 보여준다.

도시 속 현대인의 모습을 꾸준하게 비춰온 홍상수 감독은 대도시의 화려한 일상이나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대담론 대신 <강원도의 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등 중소도시나 서울 주변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 관객에게 '생활의 발견'을 체험하게 한다.

오늘날 도시는 가뿐 숨을 내쉬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 스스로가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인간의 삶이 설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물신을 향한 현대인의 욕망이 넘실대는 까닭도 있다.

예술이 도시와 새롭게 대화를 나눌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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