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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길을 바꾼 문화 게릴라들

[이태원의 재발견] 1월부터 내년 10월까지 꽉 찬 한남동 아트 스케줄표
올 한 해 한적하기 짝이 없던 한남동 길에는 숨가쁜 변화들이 일어났다. 다달이 거리를 메운 공간들, 그리고 앞으로 이 지역의 색을 칠해나갈 공간의 주인장들.

2010년 1월 몽스트르 갤러리

프랑스 작가협회 ‘몽스트르’가 이태원 도깨비 시장길을 찾았다. 델핀, 제레미, 명재범 등 3명의 작가와 큐레이터 마리로 구성된 몽스트르는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지난해 방한했다. 그들은 올해 1월 이슬람 사원 뒤편 무당집 근처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허름한 갤러리를 마련하고 개관전을 열었다.

테마는 . 한국의 부동산 투기 열풍을 풍자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거친 갤러리 벽에 걸렸다. 갤러리와 작은 구멍으로 연결된 카페에서는 큐레이터가 직접 구운 타르트와 에스프레소, 카페오레도 팔았다. 제도권 미술을 벗어난 젊은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계속해온 이들은 7월 전시를 끝으로 프랑스로 돌아갔다.

3월 류화랑

근 40년간 인사동에서 고미술 전문화랑으로 이름을 떨쳤던 류화랑이 한남동에 컨템포러리 아트갤러리를 열었다. 장소는 멕시코 대사관 근처.

4월 꿀, 비컨 갤러리

최정화 작가가 한남동에 전시공간 스페이스 꿀을 열었다. 최정화 작가를 아는 이라면 저 사실만으로도 한남동 문화예술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할 만하다. 꿀은 최 작가가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를 위해 연 공간으로, 카페, 바, 공연 장소 등을 겸한다.

완벽한 생활밀착형 공간을 원한 그는 기존의 간판과 건물 구석구석의 낡은 때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그러나 주민들이 편하게 들러 교류하기를 원하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꿀은 들어가자마자 구석에 놓인 염소 모형에 한 번 놀라고 거미줄처럼 통행을 가로막는 털실 작품에 또 한 번 난감해진다.

한국 산수화 사이사이에 가슴이 풍만한 일본 소녀들이 숨어 있는 그림을 훔쳐보다가 화장실 문을 열면 대형 크리스털 비즈가 이마를 때린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변기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도 작가의 퍼포먼스라는 설명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다.

  • <교토푸>
“서울에 있을 땐 성북동 개인 작업실보다 꿀에 자주 와 있어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장르에 상관 없이 서로 주고, 받고, 겪는 중이죠.”

5월 테이크아웃드로잉, 더 스파이스

에드워드 권의 레스토랑 오픈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5월, 다른 소식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테이크아웃드로잉의 한남동 입성 소식이다. ‘동네’를 주제로 성북동과 동숭동을 차례로 파헤쳐온 이 흥미로운 공간이 세 번째 목표로 한남동을 택한 이유는 뭘까?

“한남동에서는 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만날 수 있죠. 외국인 노동자, 미군 부대, 이슬람, 트랜스젠더, 재개발. 이 모든 것들이 동네의 풍경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공동대표 3명 중 한 명인 최서연 디렉터는 현대미술 작가 출신이다. 그는 ‘한국에서 재단이나 기업의 후원 없이 자생적 미술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공간을 시작했다.

  • <꼼데가르송>
“한국의 현대미술은 대부분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안에 갇혀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동네 안으로 들어가서 지역의 문화자원과 미술이 부딪혀 일으키는 화학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생각한 공간이 카페에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손님 옆에서 작가가 작업을 한다. 두 달간 작업 후 작품을 전시하며, 그 기간 동안 그가 즐겨 읽는 책이 매장에 비치되고 좋아하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그가 개발한 메뉴가 새로 들어가기도 한다. 현재 한남동 매장에는 근처에 사는 아티스트들인 에드워드 권의 조리사복, 최정화 작가의 배추 조형물, 홍성민 작가의 애독서가 놓여 있다.

“손님들에게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겠고요. 작가들에게는 저희가 ‘동네를 드린다’고 표현합니다.”

7월 킷 토스트

대로변이 급변하는 동안 그 뒤 골목길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토스트 집에서 더 이상 토스트를 팔지 않게 된 것이다.

  • 버진
“간판이요? 원래 있던 간판이 예뻐서 그냥 그대로 둔 거에요.”

도깨비 시장길 한 가운데, 원래 토스트 가게였던 터에 문을 연 킷 토스트는 5명 작가들의 공동 작업실 겸 작품을 판매하는 숍이다. 가방, 티셔츠, 조명, 책장, 소품 등등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낄낄거릴 수 있는 물건, 엄마가 싫어할 가방, 엄마가 좋아할 가구들이다. 옛날 금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촌스럽도록 큰 금속 시계로 만든 탁자가 있고, 선풍기 다리를 연장한 조명도 있다. 토스트 가게 주인이 버리고 간 선반으로는 서랍도 만들었다.

“리폼이 아니에요. 기능의 변화죠. 그냥 기능성이 추가된 설치작품이라고 보면 돼요.”

작품 판매의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가지 작업과 전시,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킷 토스트의 진짜 존재 이유다.

“여기서는 하고 싶은 걸 최대한 하려고 해요. 돈 벌려면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알지만 돈 벌 고민만 하면 생각이 막히거든요.”

앞집은 퀵 서비스, 옆집은 자장면 집. 그야말로 주민들의 생활터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작가들의 작업실은 거대한 예술 도시의 씨앗을 목격했을 때와 같은 설렘을 느끼게 한다.

8월 버진, 꼼데가르송

한국에서 람빅을 마실 수 있다? 맥주의 천국 벨기에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버진이 문을 열었다. 보라색 외벽에 어두운 유리로 창을 낸 버진은 문턱이 높아 보이는 외양과 달리, 내부는 따뜻하고 개방적이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 맥주 13종과 네덜란드 하드리쿼 20여종, 이 술들에서 영감을 얻은 10개의 요리,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이 준비돼 있다. 버진의 술들은 이제는 현지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전통 양조장들을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서 들여온 것들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자연발효 맥주 람빅과 아시아 쪽에서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쥬네브를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 전통주로 맥주 전에 마시는 베리올드쥬네브 20년 산은 샷 가격이 2만 2000원, 한 병에 40만 원이다.

  • 킷 토스트
“예술을 전시장이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바를 떠올렸어요.”

버진을 기획한 강여울 디렉터는 현대미술 큐레이터 출신이다. 그는 작품을 일상 속에 풀어 놓는 것, 작가의 성향을 유지하면서 작품에 기능을 더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이런 방식의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버진에는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작가들이 만든 조각, 재떨이, 컵 등이 곳곳에 놓여 있다.

“맥주 마니아들, 현대미술이 관심 있는 사람들, 그냥 좋은 분위기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 버진을 찾는 이유는 다 제각각이에요. 바라기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커뮤니티를 이루었으면 해요.”

27일에는 꼼데가르송의 론칭 파티로 조용했던 한남동 길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꼼데가르송은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대가 레이 가와쿠보의 브랜드로,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 실험적인 디자인을 매년 꾸준히 선보이면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근 해외 브랜드 수입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제일모직은 꼼데가르송의 대형 플래그십숍을 열며 그 안에 준야 와타나베, 플레이 등 브랜드의 13개 라인을 전부 선보였다. 재킷은 150만 원에서 200만 원대, 바지는 70만 원에서 150만 원대다.

9월 교토푸

에드워드 권의 레스토랑 바로 옆에 핫핑크 색의 작고 예쁜 가게가 문을 열었다. 뉴욕식 두부 디저트를 파는 교토푸로, 말랑말랑하고 고소한 두부(tofu) 푸딩을 판다. 3코스로 나누어 나오는 가이세키 디저트와 셰프 특선 디저트인 오마카세 등 디저트 문화가 덜 발달한 한국에서 뉴욕의 디저트 문화를 제대로 전파하고 있다. 밤에는 스파클링 사케와 일본식 칵테일을 파는 바로 변신한다. 시그니처 토푸의 가격이 1만 원.

10월 코코브루니

가로수길에서 시작한 수제 디저트 카페 코코 브루니가 한남동 대로변에 문을 열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교토푸가 소규모의 고가 디저트를 판다면 코코브루니는 널찍한 공간에 온갖 종류의 케이크와 초콜릿을 깨끗한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해 놓은 디저트 백화점이다. 마롱 타르트, 가토 쇼콜라, 카시스, 후람보아즈, 패슈아브리콧 등등 다양한 케이크들이 있으며 가격대는 5000~6000원으로, 이 지역의 유명한 디저트 전문 숍 패션 파이브와 정면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12월 부처스 컷

한남동 길의 오래된 한식당 청사초롱 옆 건물에는 나무로 만든 임시 외벽이 서 있다. 황소 그림과 ‘November’라는 단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는 스테이크 하우스 부처스 컷이 들어설 예정이다. 삼원가든이 여는 오리지널 스테이크 하우스로, 2층은 포멀한 레스토랑, 1층은 바와 다이닝을 결합시킨 캐주얼한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가격대는 점심 2만 원 대, 저녁은 3만~5만 원 사이.

2011년 10월 쇼파크

한강진역 근처에 뮤지컬 공연장 쇼파크가 들어선다. 옛 운전면허시험장 부지에 들어서게 될 쇼파크는 인터파크 공연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이 지역에 문화 소비 인구를 유입시키는 거대한 통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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