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미지 제고, 고객 감성 자극, 다양한 문화예술지원

현대차 - KT룩 마케팅(아래좌), 삼성의 쇠부른 궁전 아트마케팅(아래우)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19세기 산업시대와 20세기 지식정보 시대를 거쳐 오늘날 문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국가의 경쟁력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의 화두가 된 까닭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여서 '생산과 소비'의 양태,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소비를 하는 동기와 중시하는 가치다.

과거 먹고 사는 데 만족하던 시대에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당연시됐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삶의 질을 중시하면서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하고, 이를 만족시키는 제품, 서비스를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소비자들이 가격이나 기능 위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심미적,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우선하는 것이다.

넘쳐나는 제품과 정보들 속에서 소비자가 그러한 선택을 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문화'다. 문화가 체화된 제품, 문화기업의 생산품이라는 인식, 국가 브랜드를 높여 자긍심을 갖게 하는 기업이라는 인상 등, 소비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문화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소비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기업들도 문화를 앞세운 감성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른바 '문화마케팅'이다. 기업이 문화를 매개로 고객의 감성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도 제고시켜 기업을 브랜딩하는 경영 활동을 하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츠 창단 연주회
문화마케팅은 크게 문화산업(영화, 음악, 공연, 전시 등)의 마케팅 활동을 뜻하는 '문화를 위한 마케팅'과 기업이 마케팅 활동에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는 '마케팅을 위한 문화'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과 문화가 상호호혜적 관계를 통해 이 두 가지 측면이 상호 공존하는 개념의 문화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마케팅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전통(행사) 마케팅, 장소(명소) 마케팅, 필랜트로피(독지활동) 마케팅, 공익 마케팅, 예술공연 마케팅, 스포츠 마케팅 등등.

국내 기업의 문화마케팅은 다양한 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메세나 형태의 문화마케팅으로, 조건 없는 예술지원이나 기부로 이뤄진다. 이러한 문화ㆍ예술 지원은 소비자들에게 '문화기업'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각인시켜 이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하는 후광효과를 가져다 준다.

대표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장기적인 문화예술 지원으로 대중의 문화예술 향유 확대에 기여하고 예술 영재를 배출해 '아름다운 문화기업'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LG의 'LG 사랑의 음악학교', 신한은행의 '신한음악상'등도 음악영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측면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SK텔레콤의 'SK해피뮤지컬스쿨', KB국민은행의 '청소년 공연예술제' 등은 일반 청소년이 주대상이고, 한화그룹의 '한화 예술더하기', 대림산업의 '꿈나무 예술여행', GS홈쇼핑의 '무지개 상자' 프로젝트 등은 문화소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

한화의 '찾아가는 음악회', LG화학의 '뮤지컬 홀리데이', CJ의 '나눔의 영화관' 등은 지방의 문화 소외지역을 찾아가고, 코오롱그룹은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에서 매년 '코오롱여름문화축제'를 열어 문화기업 이미지를 알리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대기업은 메세나형 문화마케팅을 활발하게 전개해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La Scala), 러시아 에르미타슈 박물관 등 세계적인 명소에 삼성 모니터, LED TV를 설치하는 '명소 마케팅'을 펼치는가 하면, 러시아의 톨스토이문학상, 인도의 타고르문학상을 제정, 후원해 현지인들에게 고급한 기업 이미지를 심었다. ,LG는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LG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장학퀴즈나 친선음악회, 한국 영화제 등을 열어 러시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한진그룹(대한항공)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대영,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해 국가 브랜드 상승과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 주고 있다.

또 다른 문화마케팅은 문화∙예술 활동이나 단체를 지원하는 스폰서십이나 기업과 문화예술 간 상호 이익을 위한 파트너십을 갖는 형태다.

기업의 문화마케팅을 브랜드로 특화한 현대차의 'H-art'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2007년부터 예술의전당과 제휴,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후원하면서 고객을 초청하고, 신차를 전시하는 문화마케팅을 행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매 주말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2010 예술의전당 H-art 야외공연'을 행사하면서 쏘나타 2011년 형 모델을 함께 전시해 고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데서 나아가 문화를 광고에 활용하거나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화 이미지를 입혀 기업의 이미지나 브랜드를 제고하는 문화마케팅도 있다.

포스코는 철과 문화예술의 만남이라는 문화마케팅으로 '철'의 딱딱함을 벗고 부드럽고 온화한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포항과 광양에 아트홀을 개관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 서울 포스코센터 음악회, 미술관 운영 등을 전개한 결과다.

신세계백화점은 센텀시티 문화홀, 갤러리에서 프리미엄 고객을 향한 문화마케팅으로, 롯데백화점은 세종문화회관, 국립발레단 등과 연계한 '대관문화마케팅'으로, 현대백화점은 전국 규모의 문화홀과 '갤러리 H'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펼쳐 '문화백화점' 이미지를 주고 있다.

LG전자가 인피니아 홈시어터, 디오스(DIOS) 제품에 예술을 접목하고, 현대카드가 세계적인 팝스타와 최정상급 클래식 아티스트들로 '슈퍼콘서트'를 여는 것도 문화를 매개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활동이다.

경영전략상의 문화마케팅도 있다. 구성원들의 문화복지, 직무교육 등에 예술을 활용함으로써 경영자원으로서의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쇄업체인 성도GL은 임직원과 고객을 대상으로 연극, 음악회, 전시 등 문화로 소통하는 문화경영으로 이직률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매출액도 지난해 300억 원대에서 500억 원대로 늘었다.

산업화와 정보화를 넘어 기업의 무한경쟁이 펼쳐지면서 문화예술이 마케팅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현대 문화의 세기에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경쟁력이 물질과 기술의 힘에서 감성과 문화의 힘으로 전이된 결과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저서에서 "정보화사회는 지났으며, 이제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주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소사이어티 시대가 온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그가 말한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란 '문화를 파는 사회'로 해석될 수 있다. 문화마케팅을 잘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의 문화마케팅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