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따라 호불호 갈려, 연재소설 출판하며 제목 바뀌는 경우 많아

소설가 박민규 씨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마감 시간, 이 광고를 들으면 '어쩜 내 심정이랑 이렇게 똑같을까'란 생각이 든다. 다 쓴 기사에 중간 제목을 못 달아서 원고를 붙잡고 있을 때면 '어떻게 표현할 방?이 없네'만 후렴구처럼 반복하고 있다. 공들여 쓴 기사도 제목으로 관심 끌지 못하면 그만이니까. (언론사에 편집 가 따로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잘 지은 제목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와 편집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표현해낸 방법

총론에서 소개한 하루키 얘기를 이어가 보자. 같은 인터뷰에서 작가는 "소설 <1Q84>는 원래 '1985'라는 제목으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조지 오웰의 <1984>, 그 이듬해의 이야기를 조지 오웰과 전혀 다르게 쓰고 싶었다고. 그런데 영화 <1984>를 만든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일본에 왔을 때 하루키의 이런 계획을 듣고 "그건 좀 별로네. 앤서니 버지스가 이미 썼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제목은 1984와 일본어 발음이 똑같은 '1Q84'로 바뀌었다.

"제목부터 시작하는 소설과 나중에 제목을 붙이느라 고생하는 소설이 있다"는 하루키의 말처럼, 문학작품에서 제목은 두 가지 시점에서 정해진다.

첫째, 집필 단계부터 제목을 짓고 시작하는 경우. 작가 공지영 씨가 대표적이다. 지난 해 장편 <도가니> 출간 후 가진 간담회에서 작가는 "집필 습관 중 하나가 제목을 먼저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쓰든 제목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필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장편소설 집필의 경우 공 씨 이외에도 제목을 미리 정해두고 시작하는 작가가 많다. 박신규 창비 문학팀장은 "단편소설의 경우 제목 없이 시작하는 작품도 있지만, 보통 장편은 작가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정해둔 상태에서 집필한다"고 말했다.

제목을 먼저 짓고 집필을 시작할 경우, 제목이 작품을 관통하며 일종의 방향타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극작가 최창근 씨는 희곡 제목에 맞춰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하기도 했다.

"희곡 <서산에 해지면 달떠 온단다>는 제목을 먼저 짓고 집필한 작품이에요. 작품 제목을 정하고 나서, 등장인물 이름을 천체와 관계되는 걸로 짓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 중 하나인 새우젓장수 이름을 별 성의 별 진, 성진으로 지었습니다."

시인 김민정 씨는 "시를 쓰기 전 제목이 먼저 입에 돈다"고 말한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편집자로 일하는 그는 예전, 문예중앙의 시선집 44권의 편집을 담당했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등이 그가 편집하며 붙인 제목들. 김민정 시인은 "그때 제목 갖고 노는 재미를 느껴서 시로 등단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단편소설집이나 시집의 경우 저자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대표작을 표제로 삼을 때가 많다. 작품을 쓰고 제목을 짓거나, 연재소설 제목이 출판하며 바뀌는 경우도 많다.

출판사 편집인들에게 집필 후 단행본으로 묶으며 제목이 바뀐 책에 대해 물었다.

은희경의 소설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본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을 표제로 삼으려고 했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해 제목을 바꾼 케이스다. 출판사 아우라의 김성은 대표는 "창비에서 이 책이 출간됐을 무렵이 1999년 4월, 외환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때였다.

제목에 들어간 '부도덕한 사람'이 당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독자의 눈길을 끌 수 있지만 책을 사기에는 멈칫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꾼 사례"라고 말했다.

박완서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의 경우 단행본으로 묶을 당시 제목 후보로 '대범한 밥상', '거저나 마찬가지', '그 남자네 집' 등이 거론됐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과장은 "친절한 복희씨는 박찬욱 감독 영화<친절한 금자씨>의 그늘이 두터워서 처음부터 슬쩍 배제되었던 제목이었는데, 편집회의 결과 결국 다수의 의견이 기울어 표제작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당문학상을 받은 김언의 시집은 <소설을 쓰자>. 시집 제목으로 파격적이라서 출간 후 곧바로 화제가 됐지만, 편집 당시 출판사가 내민 제목은 '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시집 제목에 '소설'이 들어가는 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 출판사가 '소설을 쓰자'를 제목으로 쓰는 데 반대했지만, 저자가 강력하게 주장해 시집 제목으로 낙점된 케이스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는 반대의 경우. 저자는 처음 '검은 바지의 밤'을 제목으로 제시했지만, 편집자가 '여장남자 시코쿠'로 설득해 후자의 제목으로 출판한 경우다.

연재소설은 단행본을 출간하며 제목이 바뀌기도 한다. 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는 연재 당시 제목이 '살인당나귀'였지만, 단행본으로 묶으며 바뀌었다. 한강의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의 연재 제목은 '먹과 피'. 원제가 재일작가 양석일의 소설 <피와 뼈>를 연상하게 해서 바꾼 경우다.

정이현의 소설 <너는 모른다>는 계간 <문학동네>에 첫 회를 연재하다 중단하고, 다시 인터넷에 일일연재 한 후 단행본으로 묶은 책이다. 계간지 연재 때 제목은 'H.O.U.S.E'였지만 인터넷 연재를 하며 '너는 모른다'로 바꾸었다.

제목은 표지와 함께 이미지로 각인되기 때문에 편집자들은 글자 크기, 쉼표 하나까지 신경 쓴다. 김인숙의 소설집 <칼날과 사랑>은 원래 '칼과 사랑'으로 출간하려 했지만, 작품집을 검토한 백낙청 평론가가 "어감 상 '칼과 사랑'보다 '칼날과 사랑'으로 불리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놓아 바뀐 케이스다.

프랑스의 대문호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국내 출간본은 원제 'vie secrete'를 '비밀스런 삶'으로 번역했다가 "언어의 풍부한 어감을 살리자"는 의도로 출판사 측이 바꾼 사례다.

좋은 제목의 기준

'제목 짓기 달인'들에게 물었다.

"좋은 제목이란 뭔가요? 이왕이면 사례로 알려주시죠."

박신규 창비 문학팀장은 "일단은 개성적이어야 한다. 내용과 주제를 포괄하는 제목, 타깃 독자층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제목 잘 짓는 작가는 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제목은 독특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도 내용과 잘 일치하는 제목들입니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단편소설 제목도 마찬가지에요."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과장은 "소재보다는 주제, 대상 독자층을 많이 고려한다. 제목의 임팩트가 책 내용을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를 헤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손이 가고 돈을 지불하고 가방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 잘 짓는 문인으로 소설가 윤대녕 씨, 시인 최승자 씨, 시인 마종기 씨를 꼽았다.

세 작가 모두 자신의 책이 갖고 있는 내용과 정조를 제목으로 잘 그려내기 때문. 이근혜 과장은 "김연수 작가 역시 자신의 장점과 낭만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제목으로 캐치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