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 개인전 표갤러리사우스 26일까지

"펑" 한강대교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척, 척, 척 사람들이 나타난다. 양 어깨에 물동이를 진 지게꾼, 다듬이 방망이로 빨래감을 두드리는 아낙들, 소를 앞세운 행인이 한강을 메운다. 그동안 하늘에는 노을이 번지고 다리마다 차들이 내달리는 중이다.

어느새 수놓인 서울의 불빛들 위로 턱, '청소년 빙상 노리터' 간판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년 소녀가 스케이트와 썰매를 탄다. 풍물로 가득한 창밖 풍경이 아련하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새는 없다. 한 남자가 가차 없이 창에서 사람들을 떼어낸다. 막 닦인 칠판처럼 말끔해진 강변에 척, 척, 척 고층빌딩이 나타난다. 스카이라인이 치솟는다. 겨우 1분 남짓한 사이 일어난 천지개벽이다.

이재욱 작가의 영상작품 '대서울'의 속도감은 낯설지 않다. 반 세기 동안의 한국판 '모던 타임즈'를 요약한 것 같다. 50년 전의 일상을 까맣게 잊은 한강 풍경 위로 시구절이 떠오른다.

"큰 물체만이 모인 나라/ 큰 것은 쉬이 낡고/ 물체는 결국 없어지는 것/ 자갈과 시멘트와 벽돌만이 남을/ 그때 필 꽃시를 심는가(중략)/ 서울은 사람과 물체가 우글거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김광섭 시인이 40년 전 겪은 충격과 혼란이 현대 서울의 유일한 풍물이다.

이재욱 작가는 한강이 멀리 내다보이는 창에 50년 전의 모습이 담긴 필름을 붙인 후 스틸사진과 영상에 담아냈다. 저렇게 가볍고 허망한 서울의 기억이 저렇게 투명하고 얇은 필름 위에서 팔락거리고 있다. 유령 같다. 우리가 발 딛은 도시의 기원이다. 지켜보자니 문득 무릎이 휘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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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작가의 개인전 <대서울>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표갤러리사우스에서 26일까지 열린다. 02-511-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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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