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공감' 이어 베스트셀러 1위 행진경쟁 부추기던 책들 방향 바꿔 '자신의 현재 돌아보라' 권유

도시에서의 일상을 여행자의 눈길로 바라본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고향 떠나기 / 사진=문서빈
요즘의 자기계발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성공과 스펙을 강조하고 사회와 조직에서의 '승승장구'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던 이들도 다소 잠잠해졌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익명의 다수를 가르치는 충고나 조언도 21세기를 사는 한국 사람들을 더 이상 설득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시켜주며 내 존재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엄마친구 아들, 딸'과 '종결자'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달릴 만큼 달렸지만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만다. 옆에서 함께 달리는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사실은 나의 '페이스 메이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고독감과 소외감은 마음 속 깊이 홈을 판다.

앞서 달려나가는 그들은 더 이상 인생의 자극제도 되지 못한다.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을 듯한 상실감과 마주했을 때 찾게 되는 것이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책이다.

김혜남 정신분석의가 88만원 세대와 X세대 사이에 끼어 자칫 잊혀질 뻔한 서른 살을 기억했던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와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는 위로와 공감 트렌드의 시작이었다.

만화가 박광수가 그리고 쓴 <참 서툰 사람들>
이 책들은 삼십대 초반에도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어른 아이'의 공감을 얻었다. 지금까지 70만 부 가량 판매된 이 두 권의 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며 지금도 중국과 대만의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보통 사람의 삶에 공감하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책은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미국의 카운슬러 잭 캔필드가 엮어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나 '강렬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던 <시크릿>과 <마시멜로 이야기> 등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이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출판되는 위로와 공감 트렌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우화나 타인의 경험을 전해 듣고 쓰여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주술까지 동원해 성공을 위한 방법론을 알려주던 책들은 이제 경쟁에서 한 템포 쉬면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라'고 권유한다.

우리에겐 멘토가 필요해요

'서른 공감'에 이어 뜨겁게 그 바통을 이어받은 책이 5주 이상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이 제목이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있는 이유는 수직적 지시가 아닌 수평적 공감의 태도다.

5주 이상 베스트셀러로 자리하고 있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제까지 '20대가 해야 할 몇 가지'나 '30대에는 이런 것을 해라'라는 식의 인생지침서들은 과정이 생략된 정답만을 외우게 하는 우리네 교육 방식과 닮았었다. 책 속의 '교훈'들이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16년간의 의무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지친 이들이 또 다른 지침을 받고 수행해야 하는 부담은 우리를 더욱 지치게 했다.

하지만 최근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지침서들은 강단 위에서 내려와 '만년 학생'들의 옆에 와 앉는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한 채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일상의 소소한 불편함이나 마음 속에 자리한 두려움,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삶을 향한 질문은 끊이지 않음을 자신의 경험을 밑천 삼아 담담히 이야기한다. 새로운 유형의 멘토가 출현한 셈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최근 젊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이유도 비슷하다. 이 책을 출판한 쌤앤파커스의 권정희 팀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으면서도 계속 경쟁하고 탈락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사회에서도 20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끝나는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한다.

즉 '내가 사회의 루저가 아닌가' 하고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는 따뜻한 조언을 주는 멘토가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권 팀장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인기는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조급해하지 마라. 지금부터 시작하라'는 따뜻한 격려에 대해 독자들이 반응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독자 리뷰들을 보면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진심이 담긴 조언에 감동받았다'는 감상이 빠지지 않고 있다."

이는 최근 전문가적인 실력과 함께 인간적인 매력을 겸비한 박칼린(KBS <남자의 자격>)이나 김태원(MBC <위대한 탄생>)이 '진정한 멘토'로 주목받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경쟁사회의 심화와 함께 진정한 스승 대신 출세를 위한 인맥 관리나 처세술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멘토'들 역시 의사나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로서 비교적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멘토들은 그동안 '주류 멘토계'의 공식 대신 자신의 인생 곡절을 차분히 들려주고, 인생을 조금 더 오래 산 선배로서 여전히 인생의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며, 함께 이겨나가자고 어깨를 다독인다. 현재의 자신도 좌충우돌하는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이들은 조금 더 멋진 인생을 위해 같이 노력해보자고 독려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보통의 나를 인정하기

모던록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이석원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에 이어 <보통의 존재>를 펴냈다. 서른 여덟, 마흔을 앞두고 무너진 건강 덕에 유한한 생을 깨닫고 삶에 애착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루저가 되는 것이 곧 '보통의 존재'와 동의어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중략)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략)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어느 보통의 존재' 中)

어쩌면 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위로와 치유는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저자들 역시 평범한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40년을 살아도 <참 서툰 사람들>(박광수 저)임을 드러냈고, 일간지 편집기자인 유인창 씨는 <마흔 살의 책 읽기>를 통해 여전히 불안정한 자신의 삶을 독서로 다독이고 있다고 자신의 삶 한 켠을 들췄다.

<마흔 살의 책 읽기>를 기획한 정일옹 편집자는 "저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40대들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으로 불안해한다. 이제는 인생을 본격적으로 돌아보고 다른 방식으로의 삶을 제안할 시기"라며 평범한 삶이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의 두 권의 책을 기획한 갤리온의 강수진 대표는 후속작으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정희재)와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김선경) 등을 기획했다.

대도시에서 살면서 행복을 잃고 사는 이유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희재 씨와 잡지사 기자생활을 접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김선경 씨는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역시 그 점이 독자들과의 거리감을 좁힌다. 이를 위해 출판사 기획 단계부터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 짓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과거에도 무명의 저자들의 책은 많이 나왔다. 작가들은 누구나 무명의 시절을 겪으니까. 그러나 이들이 독자들에게 관심을 얻을 수 있던 것은 제목부터 '공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 작가가 쓴 책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강세형 저, 김영사)가 호응을 얻은 것은 그만큼 제목에서부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강수진 대표)

위로와 공감, 그 이후

독자를 위로하고 공감하는 책들은 이제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바짝 쫓고있는 <생각 버리기 연습>(21세기 북스)은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게 해준다. 위로에서 한 단계 나아가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21세기 북스의 이주희 에디터는 "독자들도 이제 이 책처럼 공감과 치유를 넘어서 문제 자체를 털고 밝은 면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제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양상을 감안해 21세기 북스는 현재 네트워킹 과잉 시대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을 7명의 철학자가 알려주는 <속도에서 깊이로>라는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30대 여성들을 위로하는 <인생에 대한 예의>나 중년남성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20대 청춘의 멘토 역할을 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연이어 펴낸 쌤앤파커스는 다른 계층의 독자를 타깃으로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계획이다.

<마흔 살의 책읽기>를 펴낸 바다 출판사 역시 마흔의 책읽기에 이은 나이대별 책읽기 시리즈를 통해 또 한번의 공감을 모색 중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기존의 서적이 '노년을 즐기자'라는 메시지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하나씩 비워가기를 권유하는 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이별로 상처받은 친구가 당신에게 전화를 해 술을 같이하게 됐다. 이 친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화성 남자'들은 여전히 '냉정한 조언과 충고'라고 얼른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위로와 공감이라는 마음의 연고다.

따뜻한 멘토들의 연고로 충분히 위로받은 독자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출판사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흐름을 포착해 최근 자아성찰을 콘셉트로 하는 서적을 준비 중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