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속 양극화 심화, 연애ㆍ결혼ㆍ출산 포기한 젊은 층 증가

결혼 후, 일과 양육의 이중부담을 안고 가는 워킹 맘
30대 중반의 전문직 여성 정 모씨는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평생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던 여자 선배들이 35~37세를 기점으로 반쪽을 만나 서둘러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너도 얼른 결혼해서 애들 같이 키우며 재밌게 지내자"는 말로 그녀의 결혼을 부추겼다. 몇몇은 상대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대략의 프로필만 들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만남조차 내키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데,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전문직일 경우 40대 초중반 아니면, 불안정한 직장에 다니는 또래가 많아요. 대체로 남자들의 결혼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제 주변에는 여자들이 집 사는데 돈을 보태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결혼 후에도 맞벌이하게 될 텐데 육아와 살림까지 해야 한다면 차라리 연애하며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을까도 싶어요. 주변에 이혼한 선후배도 적지 않고 남녀를 불문하고 남자의 경제력을 보라는 말도 신경이 쓰여 마음이 쉽게 정해지질 않네요."

그녀는 결혼의 가능성은 늘 열어 두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는 여느 미혼 남녀들과 마찬가지로 절박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결혼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그들이 결혼에서 멀어지는 이유

역사적으로 결혼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반쪽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여성에게는 남은 인생을 위한 일종의 투자이자 부모에게는 신분상승을 위한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남성 역시 부인의 지참금을 통해 한번에 많은 자금을 얻을 수도 있었다. 당사자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가족의 이익을 모두 계산해 도출한 '계약'에 가까웠다. 그러던 결혼이 서서히 낭만적인 결혼의 형태로 바뀌어 왔으나, 그 기반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붕괴되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역사와 가족학을 가르치는 스테파니 쿤츠는 <진화하는 결혼>에서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결혼 모델이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 지배적인 모델로 자리를 잡는 데는 150년 이상이 걸렸지만 그 모델이 무너지는 데는 2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남자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가 여유로운 환경에서 육아와 가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다.

워킹맘
가족 내 역할에 있어서 여성의 이중부담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장점은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측면은 결혼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하거나 결혼을 기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혼에 있어 '계약'의 측면에 '낭만'이 지그시 눌려가는 형국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할 정도로 계층구조가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책임은 상당하다. 사회학자들은 중산층 부모가 자녀를 똑같은 중산층으로 편입시키는데도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수억 원에 이른다. 샐러리맨들이 거대 자본과 소수의 기득권층이 장악한 부동산시장 구조에서 살 집 하나 마련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악화된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 등 전반적인 고용 불안은 사람들을 임시적인 생존에 전력투구하도록 내몰고 있다. 이는 곧 미래의 삶을 준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계층 구조 속에서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투자와 자원이 집중된다.

그로 인해 가난은 대물림되고, 중산층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신 자유주의를 채택한 사회와 국가에서는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추세이다.

싱글 맘이 등장한 TvN의 드라마 <매니>의 한 장면
특히 한국은 심화되는 고용불안, 등락을 거듭하는 주택 가격 불안,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불안 등의 여러 가지 위협 요소가 엉키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적응하고자 스스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경제력에 따른 극단의 생활과 양육 방식을 간접 경험해온 젊은 세대들이 섣불리 결혼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결혼과 가족을 다시 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 시장에서 취업자 수로 20대 여성이 20대 남성을 추월한 지는 벌써 10년이 지났다. 고용률에서도 2008년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는데, 1980년에 20대 남성의 고용률이 80%에 가깝고 20대 여성은 그 절반 정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여성에게 있어 최적의 가임기로 여겨지는 25살에서 29살의 나이는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기와 맞물려 있어 결혼 선택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혼 후 일과 가정이라는 이중부담을 짊어진 쪽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비록 사회학자 제시 버나드는 "어떤 형태로든 결혼은 지속된다"고 예견했지만 결혼의 헤게모니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테파니 쿤츠는 "수천 년 동안 결혼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면에서 워낙 많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중략)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이런 긍정적인 부수 효과가 가끔 나타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혼의 목적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사돈을 얻고, 정치적 이점이나 경제적 이점을 얻는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결혼은 점점 민주화되어 왔고 부부 상호 간의 존중과 협상을 통해 만족감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방적인 누군가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결혼방식에 남녀 어느 누구도 수긍하지 않는다. 동시에 결혼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면서 깨지기 쉬운 상태로 변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충남대에서 <사랑과 결혼의 경제학>을 강의하는 김윤희 교수는 "2세대 구성인 핵가족에서 수직적 관계는 가정을 운영하고 지속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자신을 지켜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나만의 지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역시 이 같은 수평적인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며 안정적인 결혼의 요건을 설명한다.

미국의 영장류학자 사라 블래퍼 하디는 기념비적인 저서 <어머니의 탄생>에서 "가부장제 문화가 여성들을 사회화하려 했던 것, 즉 겸손하고 순종적이며 비경쟁적이고 성적으로 삼가는 경향이, 여성에게 '자연스럽다'고 가정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과일박쥐 한 종의 예외를 제외하고 전적으로 암컷의 몫인 수유를 제외한 다른 형태의 보살핌은 그다지 성-특정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설파한다. 우리가 흔히 상식으로 여기는 어머니의 헌신이 본능적이라는 생각은 유전적 지침이 전개되는 방식을 살펴본 사라 블래퍼 하디에 의해 논박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무한히 보호하며 무한히 감싼다. 모성애는 통제되거나 획득될 수 없다"는 1956년에 발표했던 에리히 프롬의 생각은 이제 바뀔 때가 된 것 같다. 부성에 관한 연구 초기 단계를 종합한 <아버지의 탄생>을 공동 집필한 피터 그레이와 커미트 앤더슨에 의해서도 이런 특성은 재발견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진화론과 비교생물학 등을 이용해 어머니에 초점이 맞추어진 자식 양육에 대한 지나친 편중의 교정을 시도한다. 그들은 "어머니가 자식을 성공적으로 길러 내기 위해서 제3자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중략) 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다"라고 주장한다.

그 편차는 사회마다, 문화마다 상이하지만 아버지의 보살핌은 자식의 어머니 혹은 자식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결혼은 지속된다"고 예견했던 사회학자 제시 버나드와 같은 입장의 전문가들이 많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 있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질수록 자신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대상은 더욱 열렬히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와 함께 남녀의 관계는 이미 서서히 변화되고 있지만 더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변화순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가 좋아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하고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해서 보니 공감 능력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가 심한데, 이는 가족이 역할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대화보다는 일 중심으로 가정이 꾸려졌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

앞으로는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개발도 많이 이뤄져야 한다"며 변화하는 상황에 걸맞은 유연한 적응을 당부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