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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50)] 한-중 문화 차… '교자만두'를 빚다

■ 명동의 맛집
'취천루' 중화만두 원조
中 교자-韓 만두 명칭 달라 합쳐진 이름 메뉴 올려
'중앙회관' 전주비빔밥 현지 공수한 곱돌에 담겨 온기 유지·누룽지 일품
'명동(明洞)'의 출발은 조선 초기의 명례방(明禮坊)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왕조는 수도 한성부를 5부 49방으로 나누었고 그중 남부에 속했던 명례방이 오늘날의 명동이다. 흔히 명례방골 또는 종현(鍾峴)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본인들이 '명치정(明治町)'으로 바꾸었고, 1955년부터 '명동'이 되었다. 명동성당 부근의 언덕이 구릿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이 일대를 '구리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명동에는 현대사의 각종 유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다. 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성당이 자리한 곳이고 중앙우체국이 있던 곳이다. 국립극장도 있었고 지금도 중국대사관이 있으며 차이나타운이 있었던 곳이다.

한반도 중식(中食)의 시작을 임오군란과 청일전쟁 시기로 간주한다. 군인들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온 가난한 중국 화교들은 인천부둣가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거나 영등포, 여의도 등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자본을 모은 화교들은 점차 '경성(京城)'으로 진출한다.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다. 화교들 중에는 '비단 장사' 같은 무역업자도 있고 금융업자들도 있었다. 여러 계층의 화교들이 명동 차이나타운에 모여들었다. 학교와 영사관이 있고 동포들끼리 어울려 살 수 있었던 곳이다. 명동은 여전히 청계천 너머의 아직은 '외진' 곳이었고, 외국인들이 발을 붙이기 비교적 편한 곳이었다. 1930년대를 지나면서 중국 전역이 전쟁터로 변한다. 만주사변이 시작되고 중국 본토 여기저기 전쟁의 기미가 보인다. 숱한 중국인들이 한반도로 건너왔고 그중 상당수는 호구지책으로 식당을 열었다.

명동 '개화'를 시작으로 을지로통의 '안동장' '오구반점' '동화반점' 등이 줄 지어 자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지역이 갓 유입된 외국인들이 발을 붙이기 비교적 편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짜장면의 맛'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1950년대 후반 '중국 첨면장甛麵醬'이 한반도에서 '춘장'으로 바뀌면서 '한국 짜장면'은 '중국 자장미엔(炸醬麵)'과 전혀 다른 음식이 되었다. 명동 '개화' 역시 한국식 짜장면을 내놓는 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은 삐걱거렸다. 어두운 2층 홀에서 짜장면과 더불어 오향장육과 '빼갈'을 마셨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서울토박이'들도 많다. 인천 '공화춘'이 중식의 시작이라면 '개화'는 '안동장' 등과 더불어 서울 그중에서도 명동 차이나타운 중국 음식의 시작이다. '공화춘'은 주인과 위치, 음식도 바뀌었지만 '개화'는 그나마 예전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 개화
'취천루'는 한반도 중국 만두의 시작이다. 늘 만두와 교자, 포자의 차이를 이야기하지만, '취천루'는 그 많지 않은 메뉴에 '한중합작'인 '교자만두'를 포함했다. 10 종류가 채 되지 않는 메뉴판에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갈랐고 더불어 교자와 포자를 내놓는다. 중국인들이 '교자'라고 부르고 한국인들은 굳이 '만두'라고 부르니 결국 한중이 합작하여 '교자만두'라는 유래가 없는 이름을 만들었다. 늘 메뉴판을 보면 웃음이 난다.

'하동관'은 처음 시작이 명동이 아니라 을지로 건너 수하동이다. 수하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명동으로 건너왔다. 이제 70년의 역사를 넘긴 집이다. 설렁탕과는 달리 조선시대 각종 기록에도 곰탕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직 대통령들의 맛집이었고 고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까지 '하동관 곰탕'을 '배달'해서 먹기도 했다. 전남 나주 곰탕과 더불어 이제 하동관의 곰탕만 남았다. 뜨겁지 않은 국물과 아무래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늘 불만이지만 그나마 곰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물론 업력이 이 정도 되는 곳도 드물다.

전주비빔밥의 역사는 엉뚱하게도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과 연관이 깊다. "1960년대, 이병철 회장이 출장지 전주에서 전주비빔밥을 즐겨 먹었다. 이 회장이 서울로 가져오길 권했고 전주의 '중앙회관'이 서울 명동에 전주비빔밥집을 차렸다"는 이야기다. 당시 삼성에 속해 있었던 신세계백화점과 명동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다. 그리고 전주에는 '전주제지'가 있었다. 결국 "전주제지에 자주 들렀던 이병철 회장이 신세계백화점과 가까운 명동에 비빔밥집을 낼 것을 권유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콩나물국, 육회와 황포묵, 고사리, 도라지 등 숙채 고명, 유기 사용 등이 전주비빔밥의 핵심이다. 더하여 '전주중앙회관'은 돌그릇을 사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전북 장수에서 나온 곱돌로 만든 돌그릇은 온기도 오래 전하지만 그릇 아래 부분에 남은 누룽지의 맛도 아주 좋다.

'고궁'은 전주비빔밥으로서 후발주자이면서 세련된 전주비빔밥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업그레이드 된 음식 맛과 고급스런 분위기, 세련된 서비스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관광객을 대상으로 비빔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정작 전주 현지에서는 '가족회관'이나 '성미당' '중앙회관' '한국관' 등 '비빔밥 강자들' 중의 하나이지만 서울 명동에서는 '고궁'이 단연 돋보인다.

  • 영양센터
가난한 1960년대, 닭고기를 마음껏 먹는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사치였다. 조금씩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이들은 어린 시절 명동 '영양센터'에서 고소하게 튀긴 닭을 먹었던 기억들이 있다. 튀김옷을 입힌 것이 아니라 전기통닭구이라는 생경한 이름으로 다가온 통닭튀김은 노릇노릇하면서 겉은 파삭하고 속은 촉촉한 별미였다. 서초구 방배동 등에 분점을 내고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역시 어린 시절 명동에서 먹었던 바로 그 통닭의 맛은 아닐 터이다.

  • 중앙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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