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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문화읽기] 패러디의 문화적 가치


일반적으로 패러디는 익살이나 풍자의 효과를 내기 위해 원작의 표현이나 문체를 작품에 차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패러디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으니, 패러디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기법이며 예술과 나란히 발전해 온 하위문화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패러디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기법으로는 키치(Kitsch)가 있다. 패러디에 비할 때 키치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저속한 싸구려 모방작이라는 성격, 그러니까 일부러 조악하게 만들기라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경우에 있어서 패러디와 키치의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일상적인 어법에서는 유희성이 강조될 때 패러디를, 목적성이 강조될 때 키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종영을 앞두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은 수많은 패러디 작품을 산출했다. 극의 전개가 조금은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때도 없지 않았는데, 그럴 때면 팬들이 만든 패러디 작품이 등장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여성지의 표지를 패러디한 월간 궁녀와 월간 의녀가 화제였고, 그 이후에는 마우스로 끌기(dragging)를 하여 종이책 넘기듯이 보는 궁녀센스가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퓨전사극 드라마 ‘다모’의 팬들이 인터넷 신문 형태로 팬덤(fandom)을 표출했다면, ‘대장금’의 팬들은 인터넷 잡지를 통해서 패러디 양식의 진화를 가져온 셈이다. 패러디가 활용되면서 숭배의 팬덤이 아니라 놀이의 팬덤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은 문화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최근에는 두 편의 광고가 패러디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 남자가 클럽에서 메리 제이 블라이지의 Family Affair에 맞춰 춤을 추며 여자에게 다가가 이어폰의 한쪽을 건네주면서 ‘같이 들을래?’라고 말하는 휴대폰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동일한 설정과 분위기에 광고품목만 컵라면으로 바꾼 패러디 광고가 등장해서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았다. 원작 광고 제작자들이 소송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컵라면 광고가 휴대폰 광고에 대한 기억을 재생산하는 효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본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패러디가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패러디가 나타남으로써 원본 또는 진본의 가치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이후로 패러디는 너무나도 친숙한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배우 전지현이 등장하는 디지털 카메라 선전을 패러디한 광고가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김홍도의 ‘미인도’와 같은 유명 작품에 교수와 학생들의 얼굴을 그려 넣은 권여현의 패러디 회화가 전시된 바 있다. 패러디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활용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의 문화적 일상을 대변하는 가장 일상적인 기법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후에는 어려서부터 컴퓨터 관련 기기들과 함께 성장을 해왔고 사진 합성이나 이미지 변형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해 온 젊은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이 가로 놓여 있다. 이들에게 패러디는 놀이의 방식이면서 표현의 방법이다.

예술의 관점에서 보자면 패러디는 고급스럽지 못한 모방의 양식이다. 또한 패러디에는 상투적이고 소모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의 패러디 문화를 저급한 문화라는 관점에서만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일반 대중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패러디는 자신이 드라마나 영화 또는 정치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표현하는 방법이며, 소통의 즐거움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반항과 일탈 욕구, 상상력의 변주를 통한 풍자정신의 표현 등이 패러디와 함께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 문화는, 수용자의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며 공유의 문화적 표지라고 할 수 있다.

패러디는 여러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불합리한 기존 가치에 대한 항의일 수도 있고, 새로운 창조를 향한 가벼운 발걸음일 수도 있으며,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재미 삼아 하는 장난일 수도 있다. 그리고 패러디의 일반화 현상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위와 후위, 고상함과 저속함, 원본과 복사본의 구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포스트모던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어쩌면 패러디의 수준이 대중문화의 수준을 반영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 2004-03-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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