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햇살이 되는 세상을 위해

[Books] 당산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서로에게 햇살이 되는 세상을 위해

‘상생’과 ‘공존’. 인간사에서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이 언제 중요하지 않을까마는 요즘 한국 사회만큼 절실할까 싶다. 최악의 경제 상황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고, 정치판 돌아 가는 모습은 그들의 내일에 아주 못질을 해 댄다. 과연 이곳이 조화로운 상생이 가능한 사회인가.

‘당신에게 좋은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는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 문명, 역사의 조화를 위한 상생의 가치를 밝힌 글의 모음이다. 안철수 최재천 이윤기 최열 김성동 강만길 서중석 정호승 등 각계 지성 16명이 나름의 목소리로 상생과 공존의 의미를 모색한 글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명과학자 최재천은 ‘어우르는 자들이 살아 남는다’는 글에서 상상 속 두 곳의 장례식을 다녀 온 경험을 들려준다. 한 곳은 개미의 장례식장이다. 그 동안 개미와 공생 관계를 맺고 있던 수 많은 동물들이 찾아와 개미가 없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끝없는 애도의 행렬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또 한 곳은 인간의 장례식장이다. 썰렁한 그곳에는 얼마간 인간 덕 좀 봤다는 바퀴벌레가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하며 잠깐 다녀가고, 간간이 이 벼룩 빈대들이 와서 봉투만 던져주고 사라졌다. 오히려 많은 생물들은 이제 인간의 지구 독재 시대가 끝났다며 평화를 기대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최재천은 이 이야기를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을 제안한다. 스스로 현명하다며 호모 사피엔스를 자처했던 인간에 대한 경고이다.

신화 연구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와 환경 운동가 최열은 대담을 나눴다. 경기도 양평에 거처를 마련한 이윤기는 “물길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건 물 스스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물은 석 자만 흘러도 스스로를 맑게 한다.”

숲 해설가 유영초는 작은 자연과 사물에게 좋은 것이 곧 사람과 우주의 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해월 최시형의 말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제비의 알을 깨뜨리지 아니한 뒤에라야 봉황이 와서 거동하고, 초목의 싹을 꺾지 아니한 뒤에라야 산림이 무성하리라”는 말이다.

역사학자 강만길은 우리의 공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장벽으로 분단을 꼽는다. 그는 해방 공간에서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가 공존의 지혜를 살리지 못하여 분단되었다고 말하면서 협상 통일, 공존 통일로 나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이슈인 과거사 문제. 이에 대해 역사학자 서중석은 진정한 상생의 미래를 위해서는 완벽한 과거 청산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슬람은 과연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일까. 이슬람 전문가 이희수는 그들의 역사와 현실에서 왜곡되어 온 이미지를 밝혀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라는 말은 서구가 이슬람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놓은 거의 완전한 허구라는 비판이다.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들이 무슬림과 유대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데서 알 수 있듯, 십자군 전쟁이야말로 기독교 유럽 세계의 반문명적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건축가, 젊은 CEO, 재일 문학연구가 등 필자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인 정호승은 시 ‘정동진’에서 그것을 이렇게 노래했다.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 온 까닭은 무엇인가/ 해가 떠오른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하종오 기자


입력시간 : 2004-10-07 13:56


하종오 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