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희화화, 인격·인권 문제 비화 조짐

[배국남의 방송가] 왜곡된 동남아이즘… 이게 뭡니까
KBS <폭소클럽>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희화화, 인격·인권 문제 비화 조짐

우리 텔레비전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변종인 ‘동남아이즘’의 유포장인가? 근래 들어 한국으로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찾아오는 스리랑카,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근로자들이 늘어나면서 텔레비전에서 동남아인들을 출연시키거나 그들을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각 방송사 프로그램의 종류와 성격은 달라도 동남아인들을 묘사하거나 규정하는 모습이나 성격은 비슷하다. 동남아인들은 불쌍하고 동정 받아야 할 대상, 그리고 게으르고 불법 체류하는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동양의 문화를 이국적이거나 신비한, 때로는 야만적으로 조명하는 연장선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서구 대중매체에서 드라마를 포함한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재현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조작한 것으로 정의하며 서구와 다른 동양이라는 이미지, 사상, 개성과 경험 등 비교적 부정적인 것들을 부각시켜 서구가 정상적이고 세계의 중심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갈파했다.

오리엔탈리즘이 기승을 부릴수록 동양과 동양인의 이미지는 왜곡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의 대중매체들이 아랍인의 모습을 성난 테러리스트로만 스테레오타입화 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인 예라고 적시한다.

- 주한 스리랑카 대사 KBS에 시정 요구

“KBS ‘폭소클럽’의 한 코너 ‘이게 뭡니까’ 프로그램이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의 취업에 장애가 되고 있어 코너 내용을 바꾸거나 없애달라”는 스리랑카의 대사관의 공문이 KBS 정연주 사장 앞으로 보내졌다. 이 건으로 보아 방송사가 얼마나 우리를 정상적이고 중심에 놓는 반면 동남아인들은 이상하고 변방에 위치 지우는 ‘동남아이즘’ 에 젖어 있나를 보여주는 사례다.

위자야시리(G Wijavasiri) 스리랑카 대사는 최근 가진 영자 일간지 코리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 ‘폭소클럽’에서는 스리랑카인들이 사장에게 불평만 늘어놓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스리랑카 근로자들을 꺼리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폭소 클럽’의 ‘뭡니까 이게’는 개그맨 정철규가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블랑카로 나와 외국인 눈에 비친 국내 근로현장과 사회적 문제점을 나열한 뒤 “뭡니까 이게, …나빠요”라고 문제점을 풍자하는 코너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장, 왜곡된 성문화, 잘못된 언어습관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웃음을 자아낸다.

KBS측은 이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라며 대사관의 폐지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은 KBS의 주장대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방송사들이 다루는 동남아인들 그리고 이들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는 동남아인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그리고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며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폭소 클럽’의 ‘이게 뭡니까’는 개그 프로그램이다. 주인공인 블랑카는 스리랑카인을 희화화한 상징적인 인물로 이것만으로도 스리랑카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여기에 내용 또한 적지 않은 부분이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게으른 면 등이 드러내고 있어 대사관의 요구는 일면 일리가 있다.

알게 모르게 동남아인들을 비하하고 상대적으로 우리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동남아이즘’을 유포시키는 프로그램은 이뿐 만이 아니다. MBC에서 방송했던 ‘느낌표-아시아, 아시아’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인권적 접근이나 근로 조건의 문제를 파헤치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동남아 근로자들은 가난하고 힘들며 불쌍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리는 문제점을 노출시킨 바 있다.

- 미국방송, 한국여성 비하와 같은 맥락

여행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에서 동남아를 등장시키는 방송사 프로그램 역시 이러한 ‘동남아이즘’의 부정적인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오프라 윈프리 쇼’가 세계 여성들의 이미지와 유행 문화 등을 다루는 방송을 하면서 한국 여성에 대해 “성형에만 관심 있다”는 등 한국 여성의 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내보냈다.

적지 않은 대중매체와 사람들이 이 방송에 대해 공분을 표시했다. 또한 일부 대중매체는 “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을 통해 여성들의 성형장면을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성형수술 유행의 심각성을 집중 부각시켰다”며 이 프로그램의 한국 여성 폄하와 왜곡을 성토하기도 했다.

분명 ‘오프라 윈프리쇼’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대중매체가 동남아 국가와 동남아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을 먼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은 모른 체 잘못만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프랑스 영화 ‘택시’에서 한국인을 트렁크 안에서 자고 다시 일어나 일하는 일 벌레로 희화화한 것에 분노하면서, 정작 블랑카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스리랑카인을 희화화하는 것에 눈감는 것은 문제다. 특히 방송사가 은연중에 유포시키는 잘못된 ‘동남아이즘’은 조속히 시정돼야 한다.

이런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서울을 정상으로 지방을 비정상으로 그리는 ‘지방이즘’이 그리고 서울 강남을 정상으로, 강북을 이상하게 묘사하는 ‘강북이즘’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블랑카 문제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다른 길을 찾도록 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20 17:45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