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기적T,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위즈덤하우스 발행·8,800원

[출판] 세상을 비춘 행동하는 사랑
소박한 기적
T,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
위즈덤하우스 발행·8,800원


한 남자가 한 여인의 앞에 엎드려 발을 어루만진 다음 그 손을 자기 머리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말했다. “오늘 제 앞에 나타난 어머니를 경배할 수 있는 것은 제 특권입니다.”

남자는 힌두교의 칼리 여신을 삼십년 넘게 섬겨 온 칼리가트 사원의 사제였고, 여인은 마더 테레사였다. 그 사제는 칼리가트 사원에 딸린 힌두 신도용 숙소에 빈민과 병자들을 위한 피난처 니르말 흐리다이를 만든 가톨릭 수녀들을 쫓아 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인물이었다. 허나 그가 전염병인 콜레라에 걸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을 때, 두 손 벌려 그를 맞아 주고 정성껏 치료해준 것은 바로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었다.

자신들을 미워하던 다른 종교의 사제까지 사랑으로 끌어안는 마더 테레사의 모습에서 사제는 자신이 모시던 칼리 여신의 현신을 보았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증오와 적대심마저 녹여버리는 마더 테레사의 행동하는 사랑, 사랑은 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고귀한 마음이 불러온 작은 기적이었다.

13세기 이탈리아 아씨시라는 곳에 ‘바보 성자’ 혹은 ‘미치광이 성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방탕하게 젊음을 낭비하던 한량이었다. 그러나 27세 무렵, 홀연히 마태복음의 말씀 한 구절에 머리와 가슴이 깨었다. 부귀 영화를 모두 버리고 단 한 벌의 옷만을 소유한 채 그는 평생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했고 전장을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말년에 눈이 멀고 손발의 수종으로 지극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았던 천진한 성자, 바로 성 프란체스코다. 그는 오늘날 예수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성자로 일컬어진다.

그 성 프란체스코의 마음을 일깨웠던 마태의 복음은 “너희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이 한마디는 마케도니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가슴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소녀에게는 ‘누군가에게 좋을 일을 할 때는 말없이 하여라. 바닷물에 돌을 던지듯 말이다’라며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하던 어머니가 있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했던가. 18세가 되던 해 아녜스 브약스히야라는 이름의 소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며 영영 고향을 떠나 인도로 향한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위해서.

마더 테레사라는 새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 가녀린 수녀는 인도 콜카타에서 자신의 전부를 바쳐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보낸다. 미천한 사람들과 똑같이 입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살며 봉사하던 마더 테레사의 모습은 마치 성 프란체스코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심장질환 등 고통스런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행동하는 사랑을 멈추지 않던 것마저 성 프란체스코와 겹친다.

계급 구분이 뚜렷한 인도에서 빈민들의 삶이란 지독한 것이었다. 쥐에게 물린 상처에서 구더기가 끓는 병자가 굶주림에 지쳐 거리에서 쓰러져도 누구 한사람 돌아보지 않는 빈민 지역. 그들을 데려다가 깨끗하게 씻기고 상처를 싸매주고 음식을 먹여주면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삶이 있었다. 모든 사람의 안에 예수가 있다고 믿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보여준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그 숭고한 사랑의 정신은 조금씩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1949년, 단 한명의 수녀로 시작한 사랑의 선교회는 이제 서울의 수련원을 비롯해 26개국 82개 지부를 둔 거대한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했다. 사랑의 선교회의 목적은 단순하다. 종교,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봉사하는 것.

오랫동안 마더 테레사의 옆에서 함께 봉사활 동을 했던 인도인의 눈을 통해 마더 테레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담담한 필체로 가감 없이 써 내려간 이 전기문은 출생부터 199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더 테레사의 숭고한 일생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수중에 단돈 오루피를 가지고 콜카타의 빈민구역에 뛰어들면서 모든 것은 주님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었던 마더 테레사. 정말로 그 앞에는 장애가 생길 때마다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는 작은 기적들이 이어졌다. 그가 지상에 심어 둔 사랑의 정신이 지금도 불꽃처럼 타오르며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있는 것은 그가 인류에게 선사한 소박한 기적이 아닐런지.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21 10:07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