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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혁의 건강백세] 열 받으셨다면…


“감사합니다. 원장님 덕분에 사시에 합격했습니다.” 10여개월 만에 다시 한의원을 찾은 고시생은 이젠 합격증을 받고 연수원 공부 준비중이라고 했다. 같이 온 부인도 “친정 아버지가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셨다”며 밝은 얼굴이었다.

이 환자가 한의원을 찾은 것은 지난 해 봄. 어는 때부터인지 공부를 하려고만 하면 얼굴로 열이 달아 오르고,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정수리가 너무 뜨겁게 느껴져 계란 후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 증상과 동반해 집중력도 급격히 저하되어 공부의 효율이 급격히 저하된 것도 또 다른 문제였다. 차분히 진단을 해 보니 열로 인한 증상. 그리 어려운 병은 아니었다.

처방한 약을 복용한 뒤 쉽게 증세가 호전되었고 집중력도 되살아 났다. 그 뒤로 두 번째 처방은 하루 분량을 2~3일에 나누어 복용하다가 잠시 증세가 되살아난 일도 있었지만 “아니, 시간을 아껴야지 약값을 아끼다 일 년 공부를 더 할 셈이냐”는 질책을 받고 곧바로 복용량을 늘려 정상으로 돌아 갔다. 6개월 동안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4차례 처방을 썼고 무사히 사법 고시를 치른 것.

한방에서의 열이란 양방에서 말하는 열과는 조금 다르다. 열이 있다고 말하면 체온계로 재 보고 체온이 정상인데 무슨 열이 있다고 말을 하느냐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생기는 이유도 열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방에서 말하는 열은 실제로 체온이 오르는 열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체온이 정상이라도 증세가 열로 인한 것이라면 열이라고 한다. 위의 환자처럼 체온은 극히 정상이지만 머리가 뜨겁다고 하는 것은 열 때문이라고 본다.

열도 감기와 같이 체표에 열이 많은 것을 표열(表熱)이라고 하고 소화기에 열이 많은 것을 이열(裡熱)이라고 구별한다. 또 체표와 소화기 중간에 있는 열을 반표반리의 열이라고 구분, 각 부위의 열에 따라 치료법도 각각 달리한다.

양방에서 말하는 열과 동일한 체표의 열은 대개 차가운 기운에 상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찬 기운에 몸이 경직되고 피부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모공의 발한 작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엔 가장 강력한 발한 작용을 하는 마황 등의 약재로 발한을 시킨다. 피부의 발산 작용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열이 있는 경우엔 계지 등의 약재를 쓰기도 한다. 이외에도 감기 증상 하나에만도 그 진행 상태와 증세에 따라서 수십 가지의 처방이 존재할 정도로 체표의 열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대부분 땀을 내는 발한법이지만 증세에 따라 강도를 달리해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의 묘미다.

소화기에 존재하는 열을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난 번에 말한 설사를 통한 열 배출 방법도 있지만 차가운 약재를 복용하도록 해 열을 확 식혀 버리는 방법도 있다. 이열을 식히는 대표적인 약물은 광물성인 석고여서 불을 끌 때에 모래로 끄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하는 한의사도 있다. 소화기의 열은 뱃속에 체온계를 넣어서 확인할 필요는 없다. 소화기에 열이 많으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뱃속이 뜨거우면 물을 먹는 양이 엄청나게 많아 진다. 1.8리터 물병을 하루 두 개 이상 마시는 사람은 틀림없이 뱃속에 열이 많다고 보아도 된다. 이렇게 심한 갈증과 함께 땀이 줄줄 흐른다. 속에서 열이 나니 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환자들의 눈은 충혈되어 있고, 혀가 말라있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열기 때문에 배는 팽팽하게 팽창되어 있고 가슴은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이런 증상이 오래 지속된 환자의 몸은 마르게 마련이다. 석고가 주요 약물인 백호탕이나 백호가인삼탕 등으로 치료하면 쉽게 증상이 잡힌다.

열을 치료하는 한의학의 묘미는 반표반리의 열을 잡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은 대개 피부나 소화기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대개 체강내의 미열로 존재한다. 양방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염증인데, 급성 염증이 아니라서 고열은 나타나지 않지만 몸이 어딘가 찌뿌드드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런 증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안검과 인후다. 감기 증상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검 충혈이 심하고 인후도 충혈되어 있다면 반표반리의 열일 가능성이 높다. 복진을 통해 우측 갈비뼈 밑의 통증을 확인할 수 있다면 몸에 열이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런 열을 간열(肝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열은 설사를 시키는 공하법(攻下法)이나 땀을 내는 발한법으로 치료하긴 힘들다. 한의학에선 화법(和法)이라는 방법으로 처리한다. 땀을 약간 내고 염증을 잡는 시호, 형개, 방풍, 강활, 독활 등의 약으로 다스린다.

요즘엔 반표반리의 열로 인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뒷목덜미가 뻐근하고 오후가 되면 눈이 뻑뻑해지며, 입이 마르고 밥맛이 떨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이다. 심해지면 편두통이 나타나고 머리로 열이 몰리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반표반리의 열과 함께 체표의 열이나 이열로 인한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증상에 알맞은 치료를 한다면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



황&리한의원 원장 sunspapa@hanmail.net


입력시간 : 2005-02-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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