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바다, 그리고 봄의 환상곡한반도 육지 최남단, 군단위 중 가장 너른 땅 지닌 볼거리·먹거리 천국
[주말이 즐겁다] 해남 땅끝마을 산, 바다, 그리고 봄의 환상곡 한반도 육지 최남단, 군단위 중 가장 너른 땅 지닌 볼거리·먹거리 천국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시인의 노래처럼 ‘산 너머 남촌’일까, 아니면 옅은 해무 피어 오르는 남쪽 바다 건너에 떠있는 전설의 섬일까? 코끝에 걸려드는 한 줄기 훈풍에서 겨울이 물러 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즈음, 봄이 애타게 그리운 사람들은 한반도 육지의 남단인 해남 땅끝마을로 떠난다.
조망이 빼어난 땅끝 전망대 갈두봉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갯바위엔 땅끝기념비가 있다. 땅끝전망대에서 조금 가파른 산길로 내려갔다 올라올 수도 있지만, 만약 일행 중에 노약자가 있다면 땅끝마을 갈두리 선착장에서 땅끝기념탑까지 이어진 해안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해안 경비병들이 순찰 다니면서 생긴 오솔길을 조금 넓혔는데,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라 노인은 물론 아이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땅끝마을에서 하룻밤 묵었을 경우, 아침에 산책 삼아 땅끝기념탑까지 다녀 오면 정말 좋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최고다. 땅끝마을서 땅끝기념탑까지 왕복 30~40분쯤 걸린다.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4km쯤 달리면 땅끝해양사박물관(061-535-2110)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폐교된 송호초등학교 통호분교 자리에 건립한 이 박물관은 각종 어패류, 박제된 바닷고기와 화석, 그리고 곤충류, 파충류, 척추동물 등 모두 2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시간이 허락한다면 바다 건너의 보길도를 다녀오지 않을 수 없다. 땅끝마을 갈두선착장에서 파도를 헤치고 1시간쯤 가면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ㆍ1587-1671)가 말년을 보낸 보길도가 나온다. 고산은 이 섬에서 자연과 한 몸이 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묘사한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고산이 풍류를 즐겼던 세연정 앞 연못에서 ‘어부사시사’ 시상을 다듬었던 부용동까지 이어지는 3km쯤의 동백길도 좋다.
바위 병풍에 안긴 천년 고찰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온 검은 소가 점지한 절집인 천년고찰 미황사는 한때 도솔암, 문수암 등 열두 암자를 거느렸던 큰 사찰이었다.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연꽃모양의 주춧돌엔 게, 거북이, 물고기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바닷길을 통해 달마산에 불법이 도착했다는 창건설화의 암시로 풀이된다.
요즘도 청산도 사람들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이 빠져 죽은 바다에서 궁고 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또 사하촌 사람들은 비바람 몰아치는 날을 빗대는 말로 “미황사 스님들 궁고치듯 한다”는 표현도 쓴다. 미황사는 몇 년 전부터 중창 불사를 시작해 다시 대사찰의 면모를 되찾고 있다. 부도밭 가는 동백 오솔길도 놓치기 아깝다. 동백 꽃내음에 파묻혀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호흡 맞춰 걷는 맛이 좋다. 비와 바람에 마모되어 옛 향기 그윽한 부도들은 미황사의 위상을 짚어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곳 부도 기단 하부에도 용, 학, 연꽃 등과 더불어 역시 거북이, 물고기, 게 같은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다. 신비로운 형상을 한 바위 병풍엔 달마산 미황사의 빛깔에 어울리는 샘이 있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면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빛난다는 금샘이다. 경내를 에돌아 문바위재 쪽으로 40~50분쯤 오르면 고갯마루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커다란 암벽에서 금샘이 솟는다. 가슴쯤 높이의 바위굴에 있는 금샘은 수평으로 1m쯤 파 들어간 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가 표주박으로 뜨기 좋을 정도로 고여 있다가 이끼 낀 돌 틈새로 넘쳐 흐른다. 비록 금빛을 보긴 쉽지 않아도 물맛 만큼은 깔끔하다. 미황사에서 금샘까지 왕복 1시간20분 소요.
입력시간 : 2005-03-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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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