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일본의 총력전 체제와 전후 민주주의 사상나카노 도시오 지음, 서민교·정애영 옮김삼인 발행 / 1만8,000원

[출판] 일본은 왜 '총력전'에 천착하는가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의 총력전 체제와 전후 민주주의 사상
나카노 도시오 지음, 서민교·정애영 옮김
삼인 발행 / 1만8,000원


한류 열풍을 타고 봄바람이 부는 듯 했던 한일 기류가 요즘 독도 문제를 둘러 싸고 다시 얼어 붙기 시작했다. 2004년 초 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을 놓고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며 한국은 잘 분별해서 대응하라’는 성명을 발표해 한반도를 발칵 뒤집어 놓더니, 얼마 전엔 주한 일본 대사가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독도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과거 식민 지배 시절 슬그머니 독도를 시네마 현에 편입시키더니 패전 후 미국과 강화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한국 영토에서 독도를 슬쩍 빼놓은 일본. 이후 시시때때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뻔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망언 시비는 최근 일본 민간 단체들의 독도 점거 시도까지 벌어지며 한일 양국민간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발전하고 있다.

독도 문제를 비롯해 아직까지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수 없이 많다. 내부적으로는 친일 청산이 주요 쟁점이고 외부적으로는 종군 위안부 등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이런 해묵은 갈등이 수면위로 불거져 나올 때마다 많은 한국인들은 왜 일본인들이 과거의 명백한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고 한편으로 분노한다.

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 정부가 나치 전범을 응징하고 피해국가에 속죄한 것과 달리 일본인들의 과거 인식은 애매하고 단절적이다. 심지어 최근엔 태평양전쟁의 전범 도조 히데키를 미화한 영화가 히트하고 기미가요(일본 국가)와 히노마루(일본 국기)가 합법적으로 사용되는 등 과거 군국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추세다.

이렇게 과거의 전시기와 심정적으로 맥을 끊고 전쟁의 책임을 질 주체조차 모호해 진 일본인의 근현대사 인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치열하게 파고 든 학자가 있다. 도쿄 외국어대 나카노 도시오 교수가 일본의 근대 계몽 사상을 발화시킨 두 사상가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의 궤적과 연구 저작물을 세심하게 추적하며 일본 전후 사상의 근원을 따져 물었다. 이는 전쟁과 식민 지배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본 내부에서 발화된 자발적·능동적 근대성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45년 8월 15일, 패전일을 기점으로 많은 일본인들은 역사적 단절을 당연하게 받아 들여 왔다. 군국주의 파시즘이 지배하던 ‘전전’과 민주주의 사회로 다시 태어난 ‘전후’ 일본은 완전히 다르다고 믿은 것이다. 이런 의식적 단절은 과거 전쟁에 대해 현재의 일본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속 편한 과거 청산 인식을 배출했다.

그러나 저자는 반세기 넘게 전후 일본을 지배해 온 이런 단절적 사고가 착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전전이나 전후나 일본은 여전히 ‘총력전 체제’를 계승해 왔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총력전 체제론은 1,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파시즘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시민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국가 체제의 통합을 모색했다는 이론이다. 즉 시민 사회를 국가에 종속시켜 모든 사회 자원을 국가 체제 유지에 동원한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총력전 체제론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다수 일본인들의 생각과 달리 민주주의 사회로 탈바꿈했다는 전후 일본 사회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신화의 중심에는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대학자 두 명의 이름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은 전후 일본 지식인의 양심이자 ‘전후 정신의 지주’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경제사학자인 오쓰카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베버의 사상을 받아 들여 일본 사회의 전근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근대적 인간형을 창출해 냈다. 허나 오쓰카가 전시기에 발표한 텍스트까지 치밀하게 연구한 저자에 의하면 그는 1930년대에는 전시 동원의 맥락에서 근로를 강조하고 전후에는 전후 부흥을 위한 생산력 동원을 강조했다. ‘근대적 인간 유형의 창출’ 또한 전시기에 태동한 ‘생산력’ 개념에서 가지 쳐 나온 사상인 것이다.

천황제와 파시즘을 비판하며 개인의 주체적 자유를 중시하고 ‘자립적인 근대적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로 구성되는 시민 사회’를 모색한 마루야마의 사상 또한 전시에 주장했던 ‘아래로부터의 동원’과 연결되는 국가중심주의에서 멀지 않다. 마루야마 사상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건 간에 사실상 전후 빠른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근대 계몽사상은 현대 일본의 활발한 자원봉사와 NGO 활동에까지 맞닿으며 일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계몽’이라는 구호 아래 타인에 대해서 지배적이고 자신에 대해서 강압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자기동일적 주체’ 관념을 체화해 온 일본인. 여전히 총력전 체제가 지속되고 식민주의가 진행 중인 일본. 일본의 시민 사회가 국가 동원 체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연속되고 있는 역사의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자기 동일적 주체 의식을 깨뜨려야만 할 것이다.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3-17 13:49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