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에 젖고 달빛에 빛나는 단양팔경의 얼굴을 보라남한강 가운데 떠있는 세 개의 바위봉우리

[주말이 즐겁다] 단양 도담삼봉
저녁놀에 젖고 달빛에 빛나는 단양팔경의 얼굴을 보라
남한강 가운데 떠있는 세 개의 바위봉우리


단양은 남한강과 석회암이 어우러져 빚어낸 절경으로 널리 알려진 고을이다. 단양이 자랑하는 여덟 가지의 빼어난 경관인 단양팔경은 영동지방의 대표 절경인 관동팔경과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그 으뜸은 단연 맑고 푸른 남한강 가운데 떠있는 세 개의 바위 봉우리, 바로 도담삼봉(嶋潭三峰)이다.

정도전이 사랑했던 도담삼봉
강물 한가운데 높이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북쪽 봉우리를 처봉이라 하고 남쪽 봉우리를 첩봉이라 한다.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해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이다. 단양군수로도 있었던 퇴계 이황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어우러지더라” 라고 노래했다. 또한 암봉 사이로 솟는 아침 일출의 경관도 매우 빼어나 사진작가 들의 단골 촬영 장소로 사랑 받고 있다.

단양팔경의 얼굴답게 얽힌 얘기도 많다.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37~1398)은 단양 매포읍 출신으로 어린 시절 도담삼봉을 자주 찾았다. 그는 이곳을 너무 사랑해 자신의 호도 삼봉으로 했다. 이 암봉은 원래 강원 정선에 있던 삼봉산인데 아주 오랜 옛날 장마 때 이곳까지 떠내려왔고, 이에 단양에서는 정선에 매년 세금을 냈다.

그런데 정도전 소년이 정선의 관리에게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있고,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전한다. 물위에 떠있는 듯한 도담삼봉을 보면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도담삼봉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봄이 긴 고을’이란 지명을 지닌 강마을 영춘(永春)이다. 남한강이 크게 굽이 돌아가는 영춘 남쪽 산봉우리에 있는 은 단양 기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산성 오르는 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중턱의 정자에서 시원한 강바람과 산바람에 땀방울을 식히고 능선을 계속 따라 오르면 (사적 제264호)이 반긴다. 성벽의 길이는 683m. 성으로서는 작은 편이지만 전망은 최고다. 북으론 산자락을 휘돌아 가는 남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고, 남으론 반공(半空)에 걸린 백두대간의 소백산 줄기가 장하다. 여기에 성안 골짜기의 지형을 따른 견고한 성벽도 휘감기는 강줄기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물처럼 흐른다.

삼국의 산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는 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로 잘 알려진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590)이 쌓은 산성이라고 전한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590년(영양왕 원년)에 천리 길을 달려왔다. 온달은 ‘계립령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안타깝게도 아단성(영춘의 옛 이름. 서울 광나루의 아차산성이라는 견해도 있다)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온달산성

남한강 조망이 빼어난
영춘 일대엔 불운한 영웅이었던 온달에 얽힌 전설이 많이 전한다. 상류의 상리나루는 온달을 장사 지낸 곳이라 한다. 온달을 장사 지낼 때 아무리 힘을 써도 관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한을 풀라”고 하니 관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부근의 ‘쉬는 돌’은 온달이 후퇴하다가 윷을 놀던 곳이요, 하류의 군간(軍看)나루는 온달의 군사들이 파수를 보던 곳이다. 군간나루 북쪽의 선돌은 온달의 성쌓기를 돕던 마고할미가 온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팽개친 것이라고도 하고, 온달을 도우려 달려오던 누이동생이 隙紈努커?그 자리에서 굳어 돌이 된 것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장군목, 대진목, 방터, 성재고개 같은 지명들에서 삼국시대 당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되짚어 볼 수 있다.

남문은 조선의 풍수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말한 소백산을 조망하기 좋은 명당이다. 백두대간 산줄기를 병풍 삼아 불쑥 솟은 봉우리들은 이름하여 구봉팔문(九峰八門). 신비한 기운이 흐르는 계곡 안쪽엔 우리나라 태고종의 본산인 구인사(救仁寺)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산에 터를 잡은 사찰인 구인사는 천태종의 중흥조인 상월원각(上月圓覺) 대조사가 광복 직후인 1946년 구봉팔문의 연화지를 찾아 터전을 닦기 시작하면서 이룩된 도량이다. 소백산의 정기가 응축된 명당 중의 명당에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도를 닦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수행기풍 덕분인지 반세기도 안돼 1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법당까지 갖춘 대가람으로 성장했다.

* 교통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북단양 나들목→5번 국도→5km→도담삼봉→3km→단양→59번 국도→13km→522번 지방도→4km→→구인사. 동서울터미널→단양→구인사 수시(06:35~18:10) 운행. 요금 11,700원, 2시간10분 소요.

* 숙식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매운탕집이 눈에 많이 띈다. 구인사 입구의 금강식당(043-423-2594)은 ‘산채도토리 쟁반냉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토리와 감자가루로 만든 면과 더덕, 참나물 등 인근에서 나는 17가지 나물에 시원한 육수를 섞어서 먹는 냉면이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기본 2인분에 1만6000원.


**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4-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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