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초월한 그리움 잠시 '만화방 키드'가 된다국내 최초 만화전문박물관, 한국만화 100년사 한눈에작가 133인의 원화 소장, 신세대 대상 기획전도

[박물관 문화기행] 한국만화박물관
세대를 초월한 그리움 잠시 '만화방 키드'가 된다
국내 최초 만화전문박물관, 한국만화 100년사 한눈에
작가 133인의 원화 소장, 신세대 대상 기획전도


자료관 입구에서 박수동의 고인돌 부부를 비롯해 각종 만화 캐릭터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요즘은 도서대여점과 PC방에 밀려 거의 사라졌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만화방은 초ㆍ중ㆍ고등학교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른들은 늘 만화방에 가는 학생들을 꾸짖었지만,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주황색 표지의 만화책이 내뿜는 마력에 이끌려 수업이 끝나면 만화방으로 달음질치는 아이들은 늘 있었다. 짜릿한 연애물,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물, 심지어 프랑스 혁명을 다룬 역사물부터 공상과학물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에 없는 흥미진진한 삶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만화책 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 관심 있게 읽던 만화를 뒤늦게 찾아보려 하면 그 종적을 찾기 어렵다. 그때 그 만화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아쉬움이 몰려온다면 한국만화박물관(www.comicsmuseum.org)을 찾아가 보자. 오래 전 절판되거나 폐지 취급을 당해 버려졌던 소중한 만화책들이 살아 남아 또 다른 ‘만화방 키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2001년 10월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 1층에 개관한 한국만화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본격적인 만화 전문 박물관을 표방한다. 만화박물관은 현재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운영하고 있어 방대한 양의 원화와 만화 관련 사료를 접할 수 있다. 국내 만화작가 113명의 만화원화 359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수로 따지면 1만 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박광현의 《최후의 밀사》(1950)를 비롯해 1950~1970년대의 희귀 만화 1,208점이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소년잡지에 연재되어 인기를 모은 김원빈의 ‘주먹대장’, 시사만화 하면 떠오르는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한국 공상과학 만화 1세대로 꼽히는 김산호의 ‘라이파이’ 등 추억 속 만화 캐릭터가 낡고 빛 바랜 책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신세대 만화 캐릭터에 익숙한 10대나 20대에게는 생경할 수밖에 없지만 ‘그 시절의 만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만화박물관에서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전시공간을 자료관, 전시관, 체험관으로 나눠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동굴 모양의 입구를 지나 자료관 안으로 들어서면, 박수동의 고인돌 부부를 비롯해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이 입체 모형으로 제작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만화박물관의 핵심 장소라 할 만한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우리 만화 연대기’는 한국 만화 100년사의 흐름을 10년 단위로 나눠 설명했는데, 단절된 우리 만화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유용하다. 이밖에도 ‘희귀만화’ 진열대에서는 희귀만화 원본을 그 출간연도, 작품 설명과 더불어 감상할 수 있으며, ‘만화의 종류’를 설명한 방에서는 캐리커처를 비롯해 카툰, 애니메이션, 시사만화 등으로 세분화되는 만화의 다채로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세대 입맛 충족시키는 만화 기획전

체험관에 재연된 옛날 만화방 풍경. 삐걱대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주인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할듯하다.
앞서 본 자료관이 나이 지긋한 만화 매니아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박물관 내 갤러리인 전시관에서는 수시로 만화 관련 기획전이 개최되어 젊은 세대들의 입맛을 충족시킨다. 주로 20~30대 관람객들도 공㉶?수 있는 친숙한 현대 작가를 선택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도모한 ? 지난 4월 21일부터 6월 19일까지 열린 ‘만화 온라인 모험기’전은 인터넷 문화의 보편화와 더불어 등장한 온라인 만화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전시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격월로 운영되는 ‘이달의 만화’전시코너에서는 지난 5월 선정작인 장수진의 <학교 가는 길>을 7월 4일까지 전시한다. 만화와 소설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으며 ‘여학교의 왕따 문제’ 현상을 형상화한 신세대 작가의 세밀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한편 3D 입체 애니메이션 상영관, 만화열람실 등을 갖춘 체험관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기획되었다. 먼저 상영관에서는 현재 ‘둘리의 나무 속 환상여행’을 30분 간격으로 상영 중인데, 상영시간이 12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라 유아들이 보기에 적합하다. 친근감 넘치는 아기공룡 둘리가 희동이, 도우너, 또치와 함께 파리마왕과 거대한 쓰레기 로봇에게 맞서 싸우며 환경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

추억의 만화 캐릭터와 함께 기념사진도
조금 시간 여유가 있다면 만화열람실에서 다양한 만화들을 넘겨보며 추억에 빠져 보자. 앞서 보았던 희귀만화 원본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된 탓에 직접 넘겨볼 수 없어 아쉬웠다면, 그 서운함을 이곳에서 풀 수 있다. 표지와 내지까지 실물과 똑같이 복제한 옛날 만화와 더불어, 각종 만화잡지의 전성기였던 1980~90년대 만화잡지도 읽을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취재 당일도 어른과 아이가 나란히 앉아 만화 읽는 풍경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박물관 내에서 사진촬영이 가능하므로,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만화 캐릭터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보며 추억을 남겨 보자. 만화열람실 한쪽 끝에 마련된 옛날 만화방 모형을 비롯해, 조그만 프로펠러로 하늘을 나는 로봇 찌빠 캐릭터, 부천 명예시민이기도 한 둘리의 대형 주민등록증 모형 등 이색적인 전시물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만화박물관 인근에 유럽자기박물관도 있으니, 가는 김에 겸사겸사 들러보면 좋을 듯하다.

* 관람시간-오전 10시~오후 6시(동절기 5시까지, 월요일 휴관)
* 관람요금-성인 3,000원, 중고생 2,000원, 초등학생 이하 1,500원, 4세 미만 무료
* 할인사항-가족할인권 6,000원(어른 2명, 어린이 2명)
* 문의전화-032-320-3745


고경원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6-08 14:30


고경원 객원기자 aponi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