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귀의 恨에 등골 오싹 교실에선 또 무슨일이…단골납량시리즈…스크린 가득 공포의 기운 넘쳐나

[시네마 타운] <여고괴담:4 목소리>
원귀의 恨에 등골 오싹 교실에선 또 무슨일이…
단골납량시리즈…스크린 가득 공포의 기운 넘쳐나


<여고괴담> 시리즈는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장수 시리즈로 정평이 나 있다. 90년대 말부터 여름 공포 영화 시즌 단골손님이 된 이 시리즈는 여고생의 일상과 감성을 다양한 공포 코드와 결합시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최신 버전인 <여고괴담 4: 목소리>(이하 <목소리>)는 다시 한 번 귀기 서린 여고 교실의 공기를 잡아내려 한다.

<목소리>에서는 최근 몇 년 간 한국 공포영화에서 드러나는 기류가 감지된다. 정교한 드라마를 통해 공포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특정한 공포의 대상이나 자의식적인 스타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폰>의 핸드폰, <인형사>의 인형, <분홍신>의 분홍신, <가발>의 가발처럼 <목소리>의 공포는 '목소리'에서 나온다.

시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공포보다 은근히 압박해오는 청각의 공포에 승부를 건 실험 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갑자기 사람을 놀라키거나 무분별한 피칠갑으로 불쾌함을 주지 않는 '정직함'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드라마의 치밀함이 결여된, 대상이나 스타일 만을 통해 전달되는 공포의 힘은 크지 않다.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목소리>에서 학교를 휘감는 원한의 실체는 사자(死者)의 목소리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노래 잘 하는 영언(김옥빈)과 선민(서지혜)은 둘도 없는 단짝 동무다. 방과 후 음악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영언은 괴이한 목소리에 이끌려 학교를 헤매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살해된다.

영언의 죽음이 알려진 후 음악 선생 희연(김서형)은 뭔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선민은 영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던 중 희연이 자살한 변사체로 발견되고 선민은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염력 소녀 초아(차예련)의 도움으로 살인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목소리>에는 여고생 귀신과 비밀을 간직한 선생님 외에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 기원이 모호한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완전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영적인 기운이 깃든 목소리를 공포를 유발하는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모두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관념적인 전언을 뒷받침하는 드라마는 풍성하지 못하다. 영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잊혀졌거나 죽은 사람을 잊었기 때문이다. 망각은 저주를 부르고 죽음으로 이어진다. 영언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뒤를 잊는 희연의 자살, 그리고 계속되는 죽음의 위협이 모두 이렇게 벌어진다.

문제는 그들이 잔혹하게 처벌받을 만한 죄를 지은 죄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죽은 사람을 잊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고통받아야 할 이유에 대해 영화는 속시원한 해답을 보여주지 않는 셈이다.

물론 ‘목소리’라는 제목을 통해 유추한다면 이 모든 죽음과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유에 대한 후반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있다. 애초부터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초아의 비범한 능력이나 최후에 밝혀지는 영언의 비밀, 희연과 영언, 그리고 과거 여고생 목소리의 우연한 일치 등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드라마 전개를 위해 처음부터 접고 들어가는 이러한 설정들은 다소 억지스러운 인상을 준다.

창조성을 상실한 시리즈
<목소리>의 여러 가지 흠결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한국 공포영화의 전통적인 소재인 원한의 동기화가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산 자가 죽은 자, 또는 귀신에게 품는 감정은 증오나 원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이나 측은함에 가깝다. 원한을 갖게 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보다 생뚱맞아 보이고 그들을 통한 공포가 물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애매한 원한 관계와 더불어 공포 효과를 잠식하는 것은 신인 감독의 자의식적인 스타일이다. 목소리를 통한 공포를 주창한 이 영화는 시시때때로 노래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CD 재생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반복하면서 '소리의 공포'를 환기하려 한다.

영언의 입이나 CD 플레이어, 방송반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음악은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치밀한 드라마의 뒷받침을 통해 체화되지 못한 공포는 공감을 얻기 힘들다. 처음에는 아름답다가 나중에는 공포스러워야 할 음악의 지나친 반복으로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목소리>는 명백하게 성공한 전편인 <여고괴담> 1, 2편을 참조한 흔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교사와 여학생 사이의 과거 비밀이 공포의 기제로 작용하는 점이나 여학생들과 교사 사이의 동성애 관계 암시, 말초적인 공포 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공포의 코드, 원한 맺힌 귀신의 거대한 힘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학교를 보여주는 클라이맥스 장면까지 크고 작은 유사성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억지 공포를 만들기보다 여고생 특유의 유대감이나 공동체 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섬세한 여성의 감수성을 따라가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투박하고 공포 영화의 쾌락마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드라마의 재미와 스타일의 밀도 모두를 놓친 어정쩡한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관습적인 공포 장르의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패기는 좋지만 새로운 감수성과 공포 전략이 어울리지 못한 신인감독의 설 익은 치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7-22 10:47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