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인생의 절절한 기록들"

한대수, 37년 음악인생 정리한 세트음반 발표
"내 노래인생의 절절한 기록들"

한국 모던 포크의 산 증인 한대수가 최근 37년 간의 음악 활동을 정리하는 세트음반 ‘THE BOX'를 발표해 화제다.

한대수 이전에 국내에서 박스형태로 음반을 발표한 뮤지션은 작년 김민기를 비롯해 일부 있긴 했다. 하지만 대중음악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연륜 만큼이나 이 음반은 이전의 그 어떤 박스음반보다 의미심장하다. 실로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컨셉은 커버 사진부터 연대기적이다. 앞 커버 사진은 1969년 첫 콘서트인 ‘드라마센터 리사이틀’ 때의 젊은 한대수의 역동적인 기타연주 모습을 담고 있고, 뒷면은 사진작가 김중만이 찍은 최근 모습이다.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보면 엄청나다. 1974년 1집 ‘멀고 먼 길’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13장의 정규 비정규 음반이 망라되어있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뮤직비디오 8편과 제작 장면이 담긴 DVD도 있다. 또한 한대수의 어린 시절부터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을 거쳐 최근에 이르는 미공개 사진자료와 가사가 수록된 184페이지의 부클릿, 대형포스터까지 이 박스엔 뮤지션 한대수의 방대한 개인음악사가 녹아있다. 더욱이 500장 한정본 발매라 수집가들의 군침 넘기는 소리가 진동할 듯 싶다.

500장 한정본, 13장의 음반 망라

한대수는 1968년 장발을 휘말리며 귀국한 때부터 지금까지 136개의 창작곡을 꾸준하게 발표했다. 그래서 미발표 곡은 거의 없지만 처음으로 공식음반으로 만들어진 귀한 음반 한 장이 있다.

3인조 록그룹 징기스칸 시절의 음악이 그것. ‘부채탕감’, ‘박노해 시인’, ‘영화 반칙왕’ 등 여러 프로젝트 음반에 분산 수록된 곡들을 함께 모아 제작한 CD가 그것이다.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18살부터 25살 사이에 작곡한 곡들이 30%를 넘는다.

신촌의 7평 남짓한 소박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 한대수를 만났다. 그는 박스에 대한 3가지 의미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네모난 상자란 이야기고, 두 번째는 내가 태어난 장소 즉 미국의 속어로 여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마지막은 돌아갈 무덤으로 쓰이는 관이다.”

결국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모든 음악과 인생의 기록이 상징적으로 다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는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기획은 4년 전부터 했다. 실 음악을 박스로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2년 전에 한국에 정착했다. 근데 6개 음반사와의 음원정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각 음반사의 회장님을 수 차례 만나고 어떤 때는 변호사까지 동원했다. 어릴 땐 음악 외적인 것은 전혀 몰랐기에 계약이 정말 엉망이었다. 조용필, 신중현씨도 나와 똑같다.”

금년 8월에야 음원문제가 해결되었다. 서울음반 함용일사장과 김경진 프로듀서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놀랍게도 음원은 잘 보관되어 있었다.

발표 당시 금지처분이 되어 마스터 테이프가 소각된 2집 고무신만은 LP복각을 했다. 신세기 윤상호 사장은 “처음 한대수의 노래를 녹음을 했을 때도 돈 보다는 음악이 좋아서, 이 나라에 싱어송라이터시대의 씨를 뿌리는 선구자적인 의도로 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현 음반시장이 뻔할뻔자라 대부분 현실을 이해하고 좋은 합의가 가능했다. 한대수는 “육신은 늙어가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기에 음악만큼 후대에 제대로 남겨줄 의무가 있다고 모든 분이 좋은 뜻으로 합의해 주었다”고 전한다.

옛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혼란스런 유년기를 거쳤다. 그때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은 음악. 그래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귀국했을 때 ‘한국 최초의 히피 등장’으로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그에겐 숨겨진 사연이 참 많다. 그 중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TBC의 신인 탤런트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는 특별히 들려주었다.

“귀국 당시 어머님 집 별채에서 살았다. 하루는 애인을 별채에 데리고 와서 지내다가 엄마에게 들켜서 ?겨났다. 괴상한 아들이 되서 돌아오자 창피해서 같이 다니려 하지도 않았다. 그때 내 나이 겨우 20세였는데 연상의 여인이라 이루어지질 못했다. 그 여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노래가 데뷔음반에 수록된 ‘사랑인지?’다. 그 시절 버스에서 ㈖剋壎湧?수다 떠는 소리에서 멜로디를 찾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생활의 경험 속에서 멜로디를 얻어냈다. 화제의 인물이었지만 공식음반 데뷔는 쉽질 않았다.

내심 공연을 하면서 누가 와주길 바랬지만 아무도 음반을 내자고 오지도 않았고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가수가 아닌 작곡가로 정식 데뷔를 했다.

김민기 양희은이 그의 곡을 취입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곤 군입대로 3년간의 공백을 가진 후 잊혀졌었다.

1974년 CBS의 김진성PD는 신세기에서 데뷔음반의 발표를 주선해준 음악적 은인. 군에 갈 당시 1,2집 노래들은 다 작곡을 해 둔 상태였다.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에 동시녹음으로 발표한 데뷔음반은 나오자마자 반응이 있었다. 반주 없이 시작되는 노래 ‘물좀주소’가 그의 첫 히트 곡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반은 1991년 5집 ‘천사들의 담화’. 뉴욕 우드사이드 그의 방에서 모두 홈 레코딩을 한 음반이다.

“음악은 해야겠고 돈은 없고 음반사는 오지 않던 배고픈 시절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자사운드가 열풍이었다. 그래서 반대로 인간미가 넘치고 거친 아날로그 사운드로 갔다. 음악을 표현하는 것은 어떤 악 환경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네 음악가들이 응접실에 모여 즉흥적으로 맞춰본 음반이라 기억에 가장 남는다.”

박스 앨범은 음악자체가 일기이기 때문에 음악인생을 정리하고 미발표 사진들을 찾아내 살아온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거창하게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디스플레이하기 쉽게 하자는 의미로 일반 CD크기로 사이즈를 정했고 무엇보다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튼튼하게 만들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모던 포크사에 중요한 모멘트였던 1969년 드라마센터 공연 실황 음원은 끝내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한대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뭘까. 대중이 좋아하는 ‘행복의 나라로’도 아니고 ‘물좀 주소’도 아니다.

그는 4집 ‘기억상실’에 수록된 ‘HEADLESS MAN' 즉 ’머리 없는 사람‘과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에 수록된 ’DIGITAL WORLD'를 꼽았다.

상징적인 소외감을 말하는 ‘헤드리스 맨’은 내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디지털 월드’ 는 현대의 디지털 사회를 통해 테크놀로지화 되어버린 인간사회의 서글픔을 표현한 곡이다.

그는 오래된 곡보다 최근 곡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최근 앨범인 10집의 타이틀 곡 ‘상처’도 베스트 곡으로 꼽는다. “‘상처’는 지금도 상처를 받고 있으니까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라 상처 받고, 왜 내 가정은 화목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노후의 대문에 서있기에 사실상 재미없는 시간들에 대한 상처도 있다. 평생 해 놓은 게 없다.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결혼도 평탄치 않았고…"

새로운 음악의 출발점에서 선 기분

‘4년간이나 고생했지만 큰 돈을 버는 일도 아닌 박스세트 작업을 왜 시작했냐’는 우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돈을 떠나 박스가 나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첫 번째 이유가 신촌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기타를 메고 다니던 젊은 학생들이 나의 옛날 음반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그런 질문을 했다. 그래서 이제 환갑을 바라보니까 현재까지의 음악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깨달았다. 지금은 과거의 음악으로부터 벗어난 홀가분한 기분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느낌이랄까. 앞으론 10대시절 같은 새로운 창의력이 나오진 않겠지만 노년기의 새로운 분위기의 음악을 새로 시작할 생각이다.“

그는 ‘행복의 나라’와 ‘물 좀 주소’로만 기억되는 추억의 가수로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THE BOX'는 히트곡 하나로 기억되는 추억의 가수가 되기 싫어 선언한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임에 분명하다.

큰 프로젝트성 음반이나 공연은 데뷔 30년 등과 같은 숫자적인 의미가 있는 해를 선택하는 게 상식이다. 한대수는 그런 것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미있는 대형무대에서 초청을 해온다. 지난 10월7일 한국 대중음악 뮤지션의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광명음악밸리축제’ 오프닝공연의 피날레 가수로 초청된 것도 그렇고, 12일 방송된 음악성 있는 뮤지션들만이 초청받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기획한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의 첫 주자도 한대수였다.

이달 24일 일본에서 열리는 '팝아시아 2005' 무대에도 선다. 그는 37년?음악인생을 정리한 ‘THE BOX'음반 속으로 과거의 한대수를 사망 선언 시키고 새로운 한대수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글.사진=최규성차장


입력시간 : 2005-10-25 13:40


글.사진=최규성차장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