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에 마음 빼앗기고 외나무다리 지나 마음 연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으로 나와서 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타고 가다 상왕산(307.2m)과 수정봉(453m) 사이로 들어서면 용현계곡이다. 마을 입구의 돌무지 위에 자리잡은 석상과 눈 마주치면 제법 고운 끝물의 늦단풍이 반긴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은 용현계곡의 인암(印岩)이라 불리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흔히 마애불은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이 마애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탓에 1,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용히 숨어 있다가 1959년에야 발견되었다.

‘원하는 것을 다 이룰 것이니 두려워 말라’

이 부처는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마애불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뭐니뭐니 해도 빼어난 조각솜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불인 여래입상의 미소는 부드럽고 푸근하다.

어찌 보면 장난스레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오른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요, 왼손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여원인(與願印)이다.

용현계곡 위쪽의 보원사터 5층석탑.

이 불상을 제작할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에 밀리면서 국가적 위기에 빠져있었다. 허나 여래입상의 넉넉한 미소에서 백제의 재부흥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던 옛 백제인들의 희망이 엿볼 수 있다.

‘백제의 미소’를 뒤로하고 방선암(訪仙岩)을 지나 상류로 1.5㎞ 오르면 계곡이 한껏 넓어지며 펑퍼짐한 들녘이 나온다. 보원사(普願寺)터다.

폐사된 절터만큼 쓸쓸한 게 또 있을까. 잡초 우거진 황량한 터에 덩그마니 서있는 석탑과 당간지주는 사람의 심사를 쓸쓸하게 만든다. 이런 감정은 늦가을에 더욱 고조되게 마련이다.

최대 전성기인 고려 초기엔 이 빈터에도 으리으리한 전각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넘쳐 나는 샘물로 1,000명이나 되는 승려와 지나는 길손의 목젖을 적셔주었다는 석조는 깨어진 채 한쪽에 뒹굴고 있을 뿐이다.

천년 세월 동안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 너머로는 5층석탑이 보인다. 이 석탑은 고려 때 작품이면서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곳이 옛 백제의 땅임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

기단에 새긴 팔부중상 다듬는 솜씨를 봐서 보원사는 제법 알려진 사찰이었을 것인데, 기이하게도 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운산으로 되돌아 나와 647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해미방면으로 달리면 이국적인 정취 물씬한 삼화목장을 지난다. 상왕산 기슭의 개심사(開心寺)는 언제나 조용하다.

일주문을 지나면 숲길 입구에 자그마한 표석 두 개가 반긴다. 왼쪽엔 세심동(洗心洞), 오른쪽엔 개심사 입구(開心寺 入口)라고 새겨져 있다.

‘마음 씻는 골짜기’ 세심동의 돌계단은 적당히 낮다. 굽잇길에선 절묘하게 태극 문양으로 계단을 휘어 쌓았다. 비록 짧지만 이처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이 걷기에도 편한 길도 흔치 않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반쯤 열리게 된다.

길 끝에 연못이 있다. 경지(鏡池)다. 풍수상 뒷산인 금북정맥의 상왕산(象王山․307.2m) 코끼리가 목이 말라하니 물이 떨어지지 말라고 일부러 파놓은 비보(裨補) 연못이다.

기(氣)를 모으는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치를 끌어들이는 인경(引景)이 돋보인다. 하늘의 구름과 앞산의 숲과 꽃을 수면으로 가깝게 하는 것이다.

붉게 물든 나뭇잎 비치는 연못 정취가 제법이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좁다란 해탈문을 지날 때면 어느새 마음의 문이 거의 열린다.

자연스런 미학이 돋보이는 절집

자연스런 맛이 돋보이는 개심사 심검당.

개심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절집으로 1941년 수리 당시에 1484년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바로 그 해에 지어진 대웅전(보물 제143호)은 규모가 크진 않아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데, 다포계와 주심포계 양식을 함께 갖춘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한편, 그 동안 제작연대가 정확치 않아 막연히 조선시대 불상으로만 알려져 왔던 아미타삼존불상이 올 초에 있었던 X-레이 촬영을 통한 조사 중에 고려 후기 목조불상임이 밝혀졌다. 고려 충렬왕 6년(1280) 별립승(別立僧)인 재색(齋色)이라는 승려에 의해 보수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심검당(尋劍堂)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기둥이 자연스런 파격미를 드러낸다. 마음껏 휜 나무의 곡선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게 살린 솜씨에서 대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느낀다.

굽은 나무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돋보인다. 심검당에서 찾을 지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렇듯 개심사는 전망이 빼어나진 않아도 금북정맥의 험하지 않은 산세와 내포의 넉넉한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절집이다. 이쯤에서 부처의 손길인양 늦가을 낙엽 하나 툭, 하고 떨어진다면 마음이 모두 열릴 것만 같다.

여행정보

숙식

운산면에 운산장(041-663-3868), 명보장(041-663-485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덕산온천 지구엔 숙식할 곳이 많다. 서산마애삼존불 입구의 물가에 자리한 용현집(041-663-4090)은 어죽(1인분 5,000원)이 잘 알려져 있는 식당이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로 연결할 수 있는 수도권과 충청ㆍ호남권은 당일로도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서산 나들목→1㎞→운산면 소재지(덕산ㆍ해미 방면 우회전)→1.5㎞→삼거리. 여기서 좌회전해 618번 지방도를 타고 5~6㎞ 들어가면 서산마애삼존불을 볼 수 있는 용현계곡이 나온다.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를 둘러본 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647번 지방도를 타고 해미 방면으로 6㎞ 정도 직진하면 왼쪽으로 개심사 입구가 나온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