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다리 마비 반복 땐 '위험신호'l

중년 이후의 나이로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을 가진 사람이라면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진 환절기에는 뇌졸중을 조심해야 한다.

차가운 바깥 공기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이 작동하면서 혈관이 수축하여 혈압을 끌어올리게 되면 뇌혈관 기능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발병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지혈증 심장병 등 질환자도 뇌졸중 고위험군이다. 아직도 활동 여력이 충분해 한창 일할 나이인 중ㆍ노년기에 어느날 갑자기 덮쳐오는 뇌졸중은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병은 아니다.

30~40대 때부터 수년간 또는 수십년간 서서히 진행된 결과다. 혈기왕성한 젊은이 중에도 뇌혈관을 자기공명 영상촬영(MRI)으로 찍어보면 혈관이 울퉁불퉁 망가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뇌졸중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면 된다.

한방에서 ‘중풍’이라고도 하는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것이 원인이다. 뇌혈관이 다친 부위에 혈액과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뇌가 손상을 받아 반신마비, 언어장애 등 심각한 신경학적 장애를 동반하기 일쑤다. 뇌혈관이 막힌 탓이면 뇌경색, 터졌으면 뇌출혈이라고 부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뇌졸중이라고 하면 80% 정도가 뇌출혈 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식습관이 급속하게 서구화하면서 요즘은 뇌경색과 뇌출혈의 비율이 엇비슷해졌습니다.”

식생활 서구화로 발병률 급증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인 명지성모병원 허춘웅(63) 원장에 따르면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비율이 최근 10여년 새 부쩍 늘어났다.

지방질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비만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에 걸리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뇌경색 발병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젊은층 환자 수도 덩달아 많아졌다고 허 원장은 말한다.

뇌경색과 달리 뇌출혈은 주로 뇌동정맥기형 등 혈관 자체의 기형에 따라 주로 발생한다. 뇌졸중을 발병 유형에 따라 뇌경색과 뇌출혈로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발병원인과 증상이 사뭇 다르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정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뇌경색인지 뇌출혈인지는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 영상촬영(MRI)을 이용하면 1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지만 증상만으로도 얼추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와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마구 토한다면 뇌출혈일 확률이 높다. 반면 뇌경색은 혈관이 막혀있기 때문에 두통 증상은 거의 없다.

환자의 의식도 비교적 또렷하다. 하지만 팔ㆍ다리를 잘 못 쓰거나, 말을 잘 못하거나, 숫자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등 신경학적 마비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명지성모병원 허춘웅 병원장. 환자가 밀려드는 통에 육순의 나이도 잊고 일주일에 나흘을 진료를 보는 그는 1972년부터 뇌혈관 질환자 치료에 매달려온 이 분야 권위자다.

뇌는 한번 망가지면 복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뇌졸중 치료는 초기 처치가 아주 중요하다. 향후 치료성적은 물론 생사까지 좌우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 중 환자가 발생하면 지체없이 병원 응급실로 급송해야 한다. “혈관이 막힌 뇌경색의 경우 3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한다면 혈전용해제로 막힌 혈관을 뚫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병 6시간 이후라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허 원장의 설명처럼, 뇌경색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경우에는 약물치료만으로도 쉽게 좋아질 수 있다. 증상에 따라 가느다란 그물망처럼 생긴 기구를 넣어 혈관의 막힌 부위를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을 하기도 한다.

전조증상 느낄 땐 정밀진단 필요

뇌혈관이 터진 뇌출혈은 뇌경색보다 상대적으로 위급한 경우가 많다. 출혈량이 아주 적고 환자의 의식이 비교적 괜찮을 때는 수술을 안 해도 치료가 되는 수가 있다.

반면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뇌동맥류란 것이 그 중 하나다. 동맥의 한 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져 있는 상태로 신경외과에서 가장 위험한 병으로 손꼽는데, 이 때는 응급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

“만일 갑자기 어지럽거가 눈이 잘 안 보이거나, 팔ㆍ다리의 마비 증상이 자꾸 반복된다면 머잖아 뇌졸중이 온다는 경고 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뇌졸중 환자의 20~40% 정도는 일과성 허혈발작이라고 하는 전조증상을 거친다는 허 원장은 자신의 건강을 너무 자신만 하지 말고 주기적인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요즘은 MRI, MRA(자기공명 뇌혈관촬영), CT, 유전자검사 등 사전 진단기술이 워낙 좋아져 뇌졸중 여부를 80~90%까지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됐다고 허 원장은 힘주어 말했다.

사진설명 : 서울 대림동에 있는 뇌혈관 전문병원인 명지성모병원에서 뇌졸중 의심 환자에게 뇌파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사진설명 : 명지성모병원 허춘웅 병원장. 환자가 밀려드는 통에 육순의 나이도 잊고 일주일에 나흘을 진료를 보는 그는 1972년부터 뇌혈관 질환자 치료에 매달려온 이 분야 권위자다.

노령에다가 성인병 있다면 ‘뇌졸중 예비환자

뇌졸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많다. 인구 100명 당 발병률이 남자 3.94, 여자 2.52명으로 세계 최고다.

뇌졸중을 말하면서 성인병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뇌졸중은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잘 걸리는데 성인병이 있을 경우에는 발병 확률이 고혈압4~5배, 심장병 2~4배, 당뇨병 2~3배, 고콜레스테롤증 1~2배씩 올라간다.

이 중에서도 고혈압은 뇌경색과 뇌출혈 모두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허춘웅 명지성모병원장은 “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이 있으면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자그마치 60~70%나 된다”고 경고한다.

만일 50~60대 노령에다가 만성질환이 겹친 경우라면 ‘뇌졸중 예비환자’ 진단을 내려도 무방하다. 70대 발병률은 40대의 40배나 된다. 흡연과 폭음도 뇌졸중 증세를 악화시키는 촉진 인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뇌졸중에 쉽게 걸리기도 하거니와 일단 걸렸다 하면 아주 치명적이다. 미국 유럽 등 서양인들은 뇌혈관 손상의 주된 발생부위가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두개강 밖인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쪽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 지는 아직까지도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민족적 차이라고 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