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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 <下> 춘정 아우른 피리 가락에 평양 명기 일지매 꺾이다
풍류의 향기 ⑨ 백호 임제 (下) - 정감어린 시어로 시속풍정 노래한 천재적 풍류가객



▲ 젊은 시절 백호 임제가 입산 수도하던 속리산 법주사.

남북을 오르내리며 방랑하던 백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29세 되던 선조 10년에 비로소 과거를 보아 문과에 급제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고산찰방으로 짧은 벼슬살이의 첫발을 내디뎠다.

양사언(楊士彦)·허봉·차천로(車天輅) 같은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듬해 봄에는 북도평사로 부임하여 묘향산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를 찾아가 만났는데, 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遊綠)>을 지은 것도 바로 그해였다.

백호는 풍류남아로서 시만 잘 읊은 것이 아니라 <원생몽유록>을 비롯하여 <수성지(愁城誌)>,<화사(花史)>등 세 편의 한문소설도 남겼다. 특히 <수성지>는 그의 후학으로서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이 '천지 간의 대작'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선조 16년(1583) 35세 때 평안도 도사를 지냈지만, 그의 벼슬살이는 순탄치 않아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고루한 선비들의 평판에 기죽을 백호가 아니었다.

예부터 남남북녀라고 했고, 그 가운데서도 평양은 색향으로 이름난 고장이 아니던가. 평양에서 백호는 감칠맛 나고 시정 넘치는 풍류 일화를 많이 남겼다.

특히 평양 명기 일지매(一枝梅)와 한우(寒雨)와의 로맨스가 대표적이다. 백호가 평안도 도사 직을 마치고 한우와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자 취흥에 시흥이 겹친 백호가 이렇게 시조 한 수를 읊었다.

-북창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


그러자 한우가 망설이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화답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


풍류장부와 풍류기생의 정염이 이와 같이 상통했으니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지매와의 사연은 평양 근무 시절이 아니라 백호가 서울로 돌아온 뒤의 일이다. 일지매는 재색을 겸비한 당시 평양 제일의 명기였다. 그러나 절개 굳고 자부심 강해 웬만한 사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속리산 문장대


벼슬이 종2품 당상관인 평안감사의 유혹과 위협에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서울의 백호에게 절친한 벗인 평안감사가 편지를 보냈는데 안부 끝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나도 일지매를 수청 들게 하는데 실패했으니 자네가 와서 한 번 꺾어보지 않겠는가?'

백호가 편지를 받고 며칠 뒤 남루를 걸친 초라한 행색의 생선장수로 변장하여 평양에 이르렀다. 드높은 명성과는 달리 일지매의 집은 검소한 초가였다.

백호가 싱싱한 숭어를 사라고 외치자 마침 사군자를 치고 있던 일지매가 생선장수치고는 낭랑한 목소리에 마음이 끌려 계집종을 시켜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싱싱한 생선이라는 것이 한 물간 숭어 다섯 마리였다.

"물이 간 숭어를 싱싱하다니, 어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일지매의 핀잔에 백호가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에야 물이 좋았지요. 그런데 저녁이 되니 한 물 갔구먼요. 아, 사람도 늙으면 쪼그라드는데 그러지 말고 말아주오."

그런 수작 끝에 떼를 쓰다시피 하여 그날 밤을 일지매네 문간방에서 보내게 되었다. 휘영청 달 밝은 5월. 춘정을 이기지 못한 일지매가 거문고를 뜯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간방 쪽에서 피리소리가 울려와 화음을 이루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깊은 밤중에 누가 저토록 절묘한 가락의 피리를 부는 것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일지매가 일어나 피리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찾아가 보니 거기에는 아까 그 생선장수만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일지매가 돌아서며 다시 한 수 읊었다.

-창가에는 복희씨 적처럼 달이 밝구나. -

그러자 문간방 쪽에서 이렇게 대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루에는 태고 적 바람이 맑도다. -

신기하게 생각한 일지매가 다시 한 구 읊었다.
-비단 이불을 그 누구와 더불어 덮을꼬. -

그러자 여전히 문간방에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 베갯머리 한 쪽이 비었네. -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일지매는 주저하지 않고 자는 척하는 백호에게 쫓아가 사정없이 잡아 일으켜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帝國도 아닌 나라에 태어났다 죽는데 무엇이 슬프냐?"

공리공론과 부귀공명을 백안시하고 솔직담백하게 짧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천재적 풍류가객 백호 임제, 그는 정감어린 시어로만 시속풍정을 노래했을 뿐 아니라 남다른 우국충정으로 비분강개하는 시도 많이 남겼다.



▲ 백호 임제 기념비, 나주시 다시면 화진리 염모정 아래에 세워져 있다.


백호는 별 볼일 없는 벼슬길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도 아니요, 흔해빠진 선비들처럼 음풍농월로 허송세월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나라와 겨레를 걱정한 고매한 인품의 우국지사였으며, 탁월한 문장가였는가 하면, 진정으로 풍류를 사랑한 멋쟁이였다. 평안도 도사에 이어 예조정랑에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온 백호는 얼마 뒤 사직하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 팔도강산을 주유천하하기 시작했다.

벼슬살이를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된 동서당쟁이 점점 심해가는 꼴을 보고 벼슬길에 완전히 정이 떨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일세의 기남자, 때로는 다정다감한 시인, 때로는 천군만마를 호령할 만한 기백의 지사, 헛된 명리를 멀리하고 저자와 산수 간을 넘나들던 백호 임제는 선조 20년(1587) 음력 8월21일에 39세 한창나이로 짧지만 굵직했던 한 삶을 마치고 저세상으로 갔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백호는 임종하기 전에 구슬피 우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꾸짖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황제를 칭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우리나라만 예부터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처럼 누추한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죽는다고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

일세의 풍류가객 백호 임제의 묘는 영산강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중턱에 있다.



입력시간 : 2006/04/05 16:39




황원갑 소설가 · 한국풍류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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