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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문신 조각전] 조국애, 위대한 예술로 승화
박정희-시라크 '문신 국적 전쟁'…, 1980년 영구귀국해, 조각으로 한국알려



▲ 독일 바덴바덴 문신 조각전 개막 테이프 절단식.

1992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 3대 거장의 조각전이 동시에 열렸다. 영국의 헨리무어 조각전이 파리 사또 바가텔 정원에서,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전은 라 데팡스 광장, 그리고 한국을 대표한 문신 조각전(7월 30일~10월 3일)은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국 작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럽 언론은 문신 조각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고 관람객들 역시 문신 조각전에 몰렸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조각가인 한국인 문신이 프랑스에 영광을 안겨 주었다”면서 ‘프랑스 예술문학 영주장’이란 훈장을 한국인에게는 처음으로 문신에게 수여하였다. 문신이 세계 최고의 조각가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세계적 평론가 자크 도판느(국제예술편론가협회 정회원)는 “문신의 작품은 결코 어느 누구의 것도 닮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인간들이 오랜 세월 전부터 한결같이 갈망하는 샤머니즘적이며 범신론적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영감의 세계로 진중함을 가지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평했다.

당시 3대 조각전을 개최한 시라크 파리 시장(현 대통령)은 문신을 귀화시키려다 이를 막으려는 박정희 대통령과 충돌했다. 이른바‘국적 전쟁’이 벌어진 것.

문신 예술에 매료된 시라크는 79년 세계적 조각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문신이 결혼(최성숙 마산시립문신미술관 명예회장)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해 프랑스로의 귀화를 추진했다.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의 국적을 취득한는 것은 명예와 부(富)를 보장받는 것으로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인 칸딘스키(러시아), 표현주의 대가 샤갈(러시아) 등이 프랑스로 귀화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문신과 동향인 박종규 전 경호실장을 극비리에 프랑스로 보내 문신과 접촉케 했다. 그리고“위대한 예술가가 조국으로 돌아와 줄 것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74년부터 문신과 서신을 교환해 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문신은 74년 5월 육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서“우리 국가가 힘이 돼주면 더 크게 뛰어나가 작품으로 세계 만방에 한국을 알리는 역군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신은 조국을 택했고 79년 말 박종규와 함께 귀국했다.

부인 최성숙 관장은 문신과 결혼하는 데 그의 애국심이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최 관장은 79년 1월 문신의 프랑스 아틀리에서 친필 원고를 정리하던 중 원고 더미 속에서 빛바랜 태극기를 발견하고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문신이 6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성(古城)을 수리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터까지 자전거에 태극기를 꽂고 다닐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것도 알았다.

문신은 61년 프랑스로 간 이후 30년 가까이 파리에 체류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150회에 걸친 전시회를 통해 한국 예술의 위상을 높였다. 유럽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문신 조각의 경이로움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상기시킨다”고 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 높이 25미터의 ‘올림픽의 조화’라는 불후의 명작을 창작, 세계 미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데 이어 90~92년의 3년간에 걸친 동서유럽 순회전을 통해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특히 헝가리, 유고 등 동유럽에 첫선을 보인 문신 조각전은 전 세계에 위성중계되고 3개월씩이나 연장 전시되는 등 그곳 미술관ㆍ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려 한국 현대예술의 지평은 물론 문화 국력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켰다.

97년에는 프랑스 루부르 박물관내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만 전시하는 샤를레5세 홀(일명‘존엄한 방’)에 동양인 최초로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문신 예술은 국정홍보처의 요청으로 2001년 7월 중국 베이징 소재 한국문화원에서 전시회를 가져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독창적인 예술성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04년 9월에는 유엔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유엔한국대표부에 출품해 이곳을 찾는 세계 각국 외교사절 등에게 한국 예술을 알리는 전령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전시는 1년 기간을 넘어 현재까지 연장 전시되고 있다.

작년 9월, 스페인 발렌시아 비엔날레에는 특별 초대되어 개막 15일 만에 관람인원 40만 명이란 기록과 함께 전시 종료까지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들어 문신 예술에 세계인의 관심을 실감케 했다.

문신 조각품은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의 바덴바덴시에서 6월부터 9월까지 전시되는데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50만~60만 명이 돼 홍보 효과가 상당할 것이 예상된다.

내년에는 문신 예술의 세계성의 발원지인 프랑스 포르 발카레스시를 비롯해 파리 등에서의 전시가 예정돼 다시 한번 한국 예술의 우수성이 유럽에 널리 알려질 전망이다.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세계적 작가로 서 있는 문 신은 사후에도 세계를 향해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문신 예술의 정수 '석고원형전' '불빛조각전' 국내서 열려




▲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서 열리고 있는 석고원형전.


최근 국내에서 문신 예술의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석고원형조작전'과 '불빛조각전'이 그것이다.

문신은 석고원형조각을 창작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노력과 창의적 정신을 쏟아 부어 문신의 예술혼이 원초적으로 응결돼 있고 그의 예술적 신념과 의지가 총체적으로 집합돼 있다.

문신은 석고원형 조각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고 전 생애를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1972년 세계최초 지하철전인 '살롱 드 마르스 국제 조각전, 메트로 생 오기스텐'에 대형 석고조각을 출품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새로운 형태의 조각 개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문신은 임종직전 병상에 누워서까지 '석고원형조각전'을 당부했고 석고원형조각 전시관을 건립해 자기 예술의 뿌리며 혼이라 할 수 있는 석고원형 조각이 영원히 보전되기를 유언했다.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9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석고원형조각전'에서는 문신 예술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부상지로 떠오르고 있는 경기도 장흥아트센터 조각공원에서는 5월 23일부터 문신의'불빛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문신은 생의 마지막단계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거의 초인적으로 수십미터의 철선을 수백회에 걸쳐 휘게 하거나 자르고 용접하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작은 전구를 부착해 전구를 켜면 환상적인 불빛조각이 된다.

불빛조각은 불꽃처럼 치열했던 문신 예술의 마지막 영혼의 결정체로서 한국 조각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영혼과 눈물의 '불빛조각전'은 문신 예술의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 틀림없다.


문신의 사람들

황철곤 마산시장
문신 예술 세게화에 앞장서는 '문화시장'




▲ 황철곤 마산시장 / 김지곤 기자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에서 문신 조각전을 통해 한국 예술을 세계에 알리게 된 데는 황철곤(52) 마산시장의 역할이 컸다. 황 시장은 지난해에도 마산시립문신미술관의 조각품을 스페인 발렌시아 비엔날레에 출품, 3개월 동안 무려 100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개가를 이뤘다.

황 시장은 행정고시(제18회) 출신으로 함안ㆍ창원ㆍ사천 군수를 거쳐 민선 제2,3기와 올해 5·31지방선거에서도 당선돼 마산시장을 3연임하는 정통 행정가로 최근에는 문신 예술의'원형 전시관'건립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문화 시장'으로서 국제 교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문신 전시전을 통해 마산시는 물론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황 시장을 27일 서울에서 열린 '마산물산전'행사 직후 만나봤다.

- 바덴바덴 조각전을 다녀왔는데 감회를 말한다면.

작년엔 문신 조각품이 발렌시아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세계 유수작가들 중에서도 특별한 환대를 받은 걸로 보고를 받았는데, 이번 바덴바덴시 조각전에는 직접 참석해 작품과 작가의 위대한 명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국내외 보도진과 시민, 관광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문신 예술의 세계성을 실감했고 귀국길에 시가 운영하고 있는 '문신미술상'의 국제화를 지시했다.

- 문신미술상의 국제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문신미술상은 현재 마산시 조례로써 대한민국 국민으로 수상자를 제한하고 있으나 문신 선생의 국제적 인지도에 걸맞는 위상의 상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조례 개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또 문신미술상의 국제화를 위해 내실을 기하는 한편 국제적인 상에 필요한 예산확보 등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문신 예술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국제교류도 중요한데.

그렇다. 문신 예술의 세계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우선 마산과 자매도시인 일본 히메지시, 중국 서란시, 미국 잭슨빌시, 멕시코 사뽀빤시,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베트남 다낭시와 선생의 주요 활동지였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예술교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에서 프러포즈를 받았고 내년엔 문신을 조각가로 세계에 알린 '태양의 인간'이 서있는 프랑스 바카레스를 비롯해 파리 등에서 조각전을 열 예정이다.

- 21세기는'문화의 시대'다. 문신 예술의 세계성과 넓은 인맥을 활용해 국제전을 유치할 수 있는 전시관(원형 전시관)을 건립하면 피카소, 마티스 작품 등과 교환 전시도 가능해 문신을 알리고 시 재정수입에도 도움이 될 텐데.

문신미술관의 전체적인 완성은 마산 시장에게 맡겨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현재 원형전시관의 기초는 닦아 놓았고 총 예산의 일부도 확보해놨다. 다양한 접근과 면밀한 검토로 문신 선생의 생전 구상을 최대한 살려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자료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세계 유수 미술관과의 교류는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며, 전시관 건립은 마산시만이 아닌 국가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로 국민적 관심이 병행되었으면 한다.

문신 부인 최성숙 마산시립문신미술관 명예관장
문신 마지막 염원인 '원형관 건립'에 전력




▲ 문신 부인 최성숙 마산시립문신미술관 명예관장.


문신의 부인 최성숙 마산시립문신미술관 명예관장은 1978년 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문신을 처음 만났다. 독일 괴팅겐 대학 어학연수 중 자신의 동양화 스승인 운보 김기창 화백이 프랑스를 방문하자 예의를 갖추기 위해 찾아간 자리였다. 이후 79년 5월 결혼, 최 관장은 문신 예술의 평생 반려자가 됐다. 문신이 프랑스의 귀화 요청을 뿌리치고 80년 영구 귀국한 데는 문신의 조국애와 최 관장의 역할이 컸다.

최 관장은 촉망 받던 동양화가의 발걸음을 줄이고 문신과 함께 문신미술관 건립 대장정에 나서는 한편, 세계적 작가로 우뚝선 문신의 전시회를 국내외에서 수백 회 여는 데 함께 했다. 95년 문신이 타계한 후에는 유지를 받들어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을 준공(2003년)하고 마산시립문신미술관을 개관(2004년)했다. 아울러 국내외에서 추모전과 초대전 등을 열어 문신 작품의 독창성과 세계성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최 관장은 바덴바덴 조각전과 관련"문신 선생과 독일과의 인연은 70년 함부르크에서 '포럼과 조각전', 75년 함부르크에서 '조각의 데생 개인전'등이 있었지만 이렇게 큰 전시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독일의 하늘 아래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앙상블 축하 음악회와 더불어 개최되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앞으로 문신 선생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원형관 건립'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면서 "내년엔 문신 예술의 세계성의 발원지인 남프랑스 뽀르 발카레스시와 파리 등에서 약 4~6개월간에 걸쳐 프랑스전을 개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정견 마산 MBC 부국장
문신과 27년 친분




▲ 정견 마산 MBC 부국장.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어요. 25년 넘게 문 신 선생의 작품을 봐왔는데 바덴바덴에서의 경험은 전혀 새로왔습니다."

마산MBC 정견 부국장(53)은 문신 조각전이 열리고 있는 바덴바덴시에서의 행사를 취재하고 온 뒤 뜻밖의 소감을 전했다. 정 부국장은 27년째 문신을 카메라에 담아온 자타가 인정하는 '문 신 전문가'다. 작년에는 26년간 문 신의 예술과 삶을 기록한 '거장 문신'이라는 작품으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제19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 대상'을 받았다.

정씨는 바덴바덴에서의 '오싹함'에 대해 "문 신 선생 작품의 핵심 중 하나가 우주(자연)와 생명인데 바덴바덴은 어디서나 2분이면 발길이 닿는 녹지대여서 조각이 마치 자연속에서 살아 숨쉬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가 문 신과의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문 신이 프랑스의 귀화 요청을 물리치고 귀국하면서다. 처음 두 사람은 카메라 기자와 작가라는 무덤덤한 거리를 두고 만났지만 정씨가 5~6년 간 문신의 예술에 심취, 소통하면서 거리는 사라졌다. 이후 정씨의 카메라는 국내외를 오가며 문 신의 조각과 동고동락했다.

"해외에서 문 신 선생과 작품이 융숭한 대접을 받을 때는 자부심도 생기고 덩달아 신이 났죠. 그런데 국내는 너무 소홀히 대하는 것 같아요."정씨는 작년 9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문신 조각전을 다녀오면서 마음속으로 두 번 울었다고 한다. 문신 작품에 대해 보인 세계의 뜨거운 관심(11월30일까지 100만명 이상이 관람)에 감격해서, 그리고 국내의 무관심에 대한 울분이었다.

"문 신 선생은 6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자전거에 태극기를 꽂고 다닐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했어요."그러나 국내 미술계는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배타주의로 문 신을 제대로 평가하는데 인색했다고 한다.

정씨는 "무엇이 카메라를 문신에 묶어 두었느냐"는 질문에 "작품의 독창성이 카메라의 생명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는 문 신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정 부국장의 카메라에서 부활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7/05 15:43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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