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게 되면 은근히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교통사고를 내거나 혹은 당할 때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다. 영어가 서툰 초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땅 넓은 나라에서 자동차 없이 살 수는 없고….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아저씨가 얼마 전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앞차가 속도를 줄이자 아저씨도 속도를 줄였는데, 뒤따라오던 차가 미처 감속하지 못해 추돌했고 그 바람에 아저씨의 차가 밀리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일단 경찰의 현장조사가 시작됐다. 아저씨는 나홀로 운전하였고 영어도 능숙하지 못해 경찰 조사는 대부분 가해자의 진술에 의존해 작성되었다. 그런데 가해자는 경찰과 웃고 농담까지 하면서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것 같아 아저씨는 무척 불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뒷차가 앞차를 추돌할 경우 거의 99%가 뒷차의 잘못이다. 그래서 경찰은 아저씨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도 제대로 된 사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에게 들으니 경찰은 사고 차가 서 있는 위치만 보고도 현장 상황과 책임 소재를 대강 짐작한다고 했다.

경찰이 작성한 사고 보고서를 받아보려면 사고 후 3-5일 안에 경찰이 지정해준 법원으로 가면 된다. 이때 사건번호가 필요한데 이는 사고 장소와 시간, 차량 등록번호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이 경찰 보고서는 모든 사고 해결의 열쇠가 되기 때문에 복사해서 병원과 보험회사 등에 제출해야 한다.

사고 후 아저씨는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이때 사고 난 시간과, 장소, 구체적 상황 등을 말하면 청구 번호(Claim number)를 받는다.

이 보험사 청구번호가 나중에 아주 유용하다.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나 차를 렌트할 때 이 번호를 사용하면 보험사에서 뒷처리를 모두 해준다. 자신이 부담해야 할 돈은 없으며 다만 약정된 보험 급여액의 범위를 벗어나는 대형 사고일 경우엔 추후 정산하면 된다.

사고 차 처리에 대해서는 잘 아는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차가 견인된 된 곳을 알려주면 정비소에서 알아서 갖고 간다. 이후 보험회사에 정비소를 알려주면 보험회사 직원이 견적을 뽑고 차를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한다. 아저씨 차의 경우 중고차 값보다 수리 비용이 더 들어 폐차하기로 하고 보험사에서 보상 받기로 했다.

병원치료는 본인이 원하는 어떤 병원이라도 괜찮다. 다만 비용을 생각하지 말고 가능하다면 아픈 만큼 충분히 치료해야 나중에 사고처리에 도움이 된다. 아저씨는 사고 당시 너무 놀라서 엠브란스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다.

여기서 교통사고 처리와 관련해 명심할 점 하나는 사고가 나서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무조건 엠블란스를 부르는 게 좋다는 것이다. 병원으로 가면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만일에 생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가 있고 나중에 보험회사와 일처리할 때도 훨씬 용이하다.

아저씨의 경우, 전적으로 뒷차의 잘못이기 때문에 뒷차의 보험회사에서 사고 후유증에 대해 보상을 한다고 했다. 이 경우 엠브란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간 점, 그 후 치료를 위해 병원에 꾸준히 다닌 점은 많은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모든 일을 법으로 처리하는 ‘소송 공화국’이 아닌가.

보통 교통사고가 나면 보상금이나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법정싸움을 하는 경우가 잦은데, 상대방의 과실이 50%이상 된다는 것을 입증하게 되면 보상과 사고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상대방 보험사가 더 많이 부담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의 보험수가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변호사를 선임할 때 비용은 안 내도 된다고 한다. 변호사들은 이길 확률이 있는 경우에만 사건을 맡으며 승소하면 보상금의 33%를 수임료로 가져간다. 결국 변호사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변호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법정 시비에서 질 경우 변호사는 보수를 받지 않겠는다는 항목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간혹 돌팔이 변호사를 만나 그를 믿었다가 서류 미비 등으로 재판에 불리한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자동차 사고가 났다 하면 챙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귀찮은 것은 둘째 문제이고 우리 같은 외국인은 여차하면 불리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조심운전으로 사고를 내지 않고, 방어운전으로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


윤인원 통신원 (미국 뉴욕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