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된 사람들

얼마 전 프랑스 신문 '르 주르날 디망쉬(Le Journal Dimanche)’에서 프랑스 최고 유명인으로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을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지단은 월드컵 결승전에서 상대방 이탈리아 선수를 박치기해 퇴장당하면서 불명예스럽게 은퇴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은퇴 후 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지지와 사랑은 극성스러울 만큼 과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사르코지 내무부장관까지 나서서 그를 지지했을 정도니 말이다.

많이 알려진 바지만 지단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그의 부모는 알제리가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시절 프랑스를 위해 일했던 알제리 출신 군인 아르키(Harki)로 알려져 있다.

아르키들은 알제리의 독립 후 알제리에서는 조국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학살당하고, 프랑스 내에서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골칫덩이로 취급당해 양쪽에서 버림받은 식민지 시대의 희생양들이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극우파들은 이들의 후손에 대해 혐오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프랑스 내에서 알제리 출신들이 살아가기는 녹록치 않다. 지네딘 지단이 프랑스의 영웅이라 할지라도 일반 이민자 출신들은 여전히 편견과 차별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집시 어머니와 아랍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토리 갓리프 감독이 자신의 영화 '추방된 사람들(Exiles)'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도 바로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민 3세대들의 방황과 고민이었다.

영화 '추방된 사람들'은 알제리 출신 이민 3세대인 자노와 나이마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느 날 문득 연인 나이마에게 알제리 여행을 제안한 자노. 부유한 집에서 자랐지만 이민자 출신의 한계를 느끼고 산 그는 늘상 할아버지의 땅 알제리에 대한 원인 모를 그리움을 갖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프랑스 식민시절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옥사한 인물로 이 때문에 독립 투사의 후손인 자노 집안 역시 프랑스에서의 삶이 편치만은 않았다.

나이마 역시 아랍계 출신이지만 아랍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른바 경계인이다. 이 둘은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걷거나 차를 빌려 타며 지중해를 건너 알제리까지 갈 계획을 세운다. 유일한 친구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테크노 음악뿐.

파리를 떠나 스페인의 세빌리아에 도착한 이들은 스페인의 정열이 담긴 플라멩코의 춤과 음악에 흠뻑 빠져든다. 이제부터 이들은 이제 생물학적 뿌리가 아닌, 자신의 피에 흐르는 음악의 뿌리를 찾아 순례를 떠나게 된다. 이들 귀를 사로잡는 것은 더이상 기계적인 테크노가 아니다. 아랍인과 집시의 정서가 녹아든 민속음악이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결국 알제리에 당도한 자노와 나이마. 그런데 이들을 맞이하는 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로 밀입국을 꿈꾸는 알제리인들이다. 알제리인들의 집단 엑소더스(Exodus)가 바로 알제리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인들조차 버리고 간 그 땅에는 여전히 알제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노와 나이마는 신비주의 교단인 수피즘의 영적체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의식을 치른다.

자노와 나이마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알제리를 떠나왔을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하지만 트럭 밑에 매달려서까지 프랑스로 밀입국하려던 알제리인들에게는 이제부터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 '

국가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이민자 출신이 설쳐 나라 꼴이 이렇다'라고 난리를 친 극우파 정치인이 프랑스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 '추방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