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태란-박해진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 사진과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참을 수 없는 결혼의 가벼움.’

드라마에서 결혼이 극단적으로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불리며 인간 생활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여겨지는 결혼이지만 최근 드라마에서는 ‘불면 날아갈’ 듯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때로는 아예 무가치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이혼이 다반사로 펼쳐지는 가운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가 하면, 부부 관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오직 복수를 위해 결혼을 하기도 한다. 결혼이 중요한 가치가 아닌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심지어 사촌 남매가 불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부모 자식 간에 사랑 경쟁을 하는 극단적인 양상까지도 펼쳐지고 있다.

최근 방영중인 20편 남짓의 드라마 중 12편의 드라마가 이혼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현대 가족의 모습을 다루지 않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사극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이혼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4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 행진을 벌이고 있는 KBS 2TV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에선 이혼 커플이 둘이나 된다. 고주원과 최정원은 극중에서 결혼 몇 개월 만에 이혼했지만 이내 재결합할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 마치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다뤄지고 있는 셈이다. 역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KBS 1TV 일일극 ‘열아홉 순정’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등장하는 신구와 강석우가 이혜숙을 놓고 사랑 대결을 벌였다. 신구와 강석우는 사랑 라이벌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신구와 이혜숙이 결혼에 골인, 아버지가 승리를 차지하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근친 간의 금지된 사랑도 곧잘 안방극장에 등장한다. 올해 초 최고 인기를 구가한 SBS 주말극 ‘하늘이시여’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가 결혼하는 과정을 다뤄 충격을 안겨준 바 있는데 최근엔 더욱 점입가경을 치닫는 분위기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90일, 사랑할 시간’에서는 사촌 남매인 강지환과 김하늘이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위해 미국 이민을 추진하기까지 한다. 결국 각자 다른 배우자와 결혼하지만 다시금 불륜에 빠져든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강지환이 남은 3개월 동안 이루지 못한 사촌 여동생과의 사랑을 한다는 설정이다. KBS 1TV 아침 드라마 ‘순옥이’에선 태어나자마자 헤어져서 자란 탓에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이란성 쌍둥이인 최자혜와 강도한이 사랑 줄다리기를 하기도 한다. 두 작품 모두 근친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뻔뻔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사랑을 묘사한다. 마치 사랑이라는 가치가 인륜보다 우위에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듯하다.

물론 최근 드라마들이 이처럼 결혼과 사랑, 그리고 가족에 대해 왜곡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의 시선을 잡기 위함이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와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잡으려는 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에 치우치며 극단적인 선정성에 이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물론 재미있는 설정이긴 하고 시청자의 관심을 모으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양상이긴 하지만 비난을 피해가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소문난 칠공주’의 배경수 PD는 “가족애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드라마가 현실을 그리긴 하지만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다소 극단적인 고난과 역경의 배경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도달하는 해피엔딩은 더욱 감동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90일, 사랑할 시간’의 오종록 PD는 “드라마는 실제 생활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을 다루는 판타지 요소가 분명히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작품 속에 그려지는 사촌 남매의 사랑은 드라마이기에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비장한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대다수 방송 관계자들은 “드라마는 보편적인 정서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소재 빈곤에 빠진 국내 드라마 현실에서 지나친 새로움의 추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나 설정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긴 하다. 그래도 지나친 극단은 곤란하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는 극단을 향해 가는 양상이다. 재미도 좋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공감대가 이뤄진 상황에서 추구해야 한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