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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의 공연리뷰] 정동극장 '전통예술무대 2007'
시나위 합주·판소리·실내악·판굿·소고춤 등 7가지 장르 한자리에



징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첫 공연이 시작된다. 아쟁과 대금, 피리, 해금, 거문고, 가야금 등이 벌이는 시나위 합주다. 시나위는 순수한 우리 고유의 음악인 향악을 뜻하는, 한국 전통음악의 재즈와도 같다.

각각 이질적인 국악기가 섞이면서도 한 치 충돌함 없이 편안한 화음을 빚어내는 것이 새삼 놀랍다. 연주자들의 자리 안배나 시선 방향에서도 자유로움과 입체감을 구하려 애쓴 연출자의 고민이 느껴진다.

시나위에 빠져 있는 어느 순간 연주자들의 등 뒤로 소리없이 살풀이춤이 벌어진다. 무대를 한 겹 가르는 대형 발 너머로 한 무용수가 흰 수건을 들고 사뿐히 너울댄다. 엷은 차단막이 주는 효과일까? 살풀이는 마치 몽환처럼,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삽화가 되어 다가온다.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용도부터 분명히 하자. 정동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전통예술무대2007’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상품에 가까운 공연이다. 그 전제 하에 보자면 대단히 성공적인 무대다. 우리 고유의 예술세계를 장르별로 깔끔하게 정돈해 일종의 갈라(Gala) 쇼로 만들었다. 각 장르의 정수를 제대로 정제해 냈다.

시나위 합주와 판소리, 실내악, 판굿과 소고춤 등 총 7가지 장르가 60분짜리 ‘한 세트’로 망라되어 있다. 실내악이나 사물놀이 등은 그나마 감상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기타 장르는 사실상 평소에 보기 드문 대상이다. 이 공연은 자의든 타의로든 편식하는 관객들의 영양 불균형을 해소시켜준다.

2막에서는 판소리 무대가 준비된다. 이를테면 이것은 한국형 모노드라마다. 무대 위엔 소리꾼과 고수, 단 두 사람뿐이지만 수백 명의 관객들을 압도한다. 흥부가 놀부의 집에 양식을 꾸러 갔다가 퇴짜맞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목이 절절하다. 장단을 빼면 사실상 무반주 독창에 가깝지만 어색한 공백감을 느끼지 못한다.

갑자기 무대 뒤편이 환해진다. 대지의 소리를 재생하는 7명의 삼고무 무용수들이 대열을 드러낸다. 각자 좌, 우, 뒤로 걸린 3개의 북을 중심으로 춤판이 벌어진다.

군무는 확실히 아름답다. 무용수들의 탄탄한 호흡과 기교가 빛난다. 오고무보다도 더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삼고무의 진수, 그대로다. 의상이 수수하여 오히려 북춤 자체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조명도 잔재주를 부림 없이 대범하고 시원하다. 침묵할 때와 폭발할 때를 정확히 간파한 듯한 연출이다. 음악과 춤, 무대장치의 3박자가 잘 어우러진다.

무대와 출연진이 거듭 바뀌고 또 바뀐다. 다섯 번째 공연에서는 노천극장에서 궁중무대로 객석을 옮긴 기분이다. 화려한 의상의 여인네들이 또박또박 무대로 걸어나온다.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중요무형문화재인 태평무를 선보인다. 춤사위에 장엄한 무게감과 절도가 실린다. 특히 치마 끝으로 보일 듯 말 듯 비치는 발 디딤새가 매우 고혹적이다.

꽹과리와 장구, 북, 징잽이가 등장하면서 이젠 무대 위의 신명이 객석으로까지 쾌속 확장된다.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사물놀이다. 사물놀이는 천둥과 비, 구름과 바람 등 자연의 소리를 옮긴 것. 경쾌하면서, 시원하고, 허허로우면서도 꽉 찬 모든 자연의 기운이 놀이패의 연주와 몸짓을 통해 분출된다.

특히 관객들의 박수세례와 환호를 이끌어 낸 상모놀이는 ‘원조 비보이’라 할 상모놀이꾼들의 역동적인 춤 솜씨로 공연의 절정을 이끈다.

전반적으로, ‘양은 적지만, 최고급의 정찬을 대접받은’ 기분이다. 관람객 중 90% 이상이 외국인들이다. 아직도 우리의 전통문화는 고루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거나, 또는 한국의 소리와 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인 지인이 있다면 한번 찾아볼 만하다. 공연은 올해 12월까지 계속된다.



입력시간 : 2007/02/26 13:35




정영주 pinpl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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