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연예인 기념우표 전무, '백남준 우표' 발행 계기로 문호개방 목소리 높아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담은 ‘백남준의 예술세계 특별우표’가 그의 1주기를 맞아 발행되었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특별우표는 백남준의 주요 작품인 메가트론·메트릭스, 다다익선, TV부처, 엄마를 표현한 4종으로 총 180만 장이 발행되었다.

자유로운 영혼이 꿈틀거렸던 그의 작품세계가 우표로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 국가의 공식기록물인 우표가 그동안 대중예술인들에게는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애틋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 위해 편지 봉투 위에 침을 바른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학생이었다면 누구나 한번쯤 우표수집을 해보았을 것이다. 기념 우표가 나오던 날 우체국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사기도 했다. 이메일이 활성화된 요즘에도 우표는 여전히 수집의 대상이자, 국가의 중요 대사를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기록물이다.

백남준의 특별우표는 그래서 의미가 각별하다. 그가 순수예술가인가 대중예술가인가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예술가로서의 그의 도전정신이 현대 미술에 남긴 업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념우표로 발행될 자격이 충분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행된 예술 및 문화 관련 우표 중에 아티스트의 예술업적을 기념하는 우표는 없었다. 고작 발행된 것이라곤 일반적인 테마 우표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대중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중가수와 영화배우를 담은 기념우표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정치인, 역사 위인, 스포츠 선수 관련 우표는 넘쳐난다. 특히 국내외 대통령의 순방과 방한과 관련된 기념우표의 수는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대중문화는 국가의 기록물인 우표에 담기에는 함량미달의 영역으로 본 것일까.

테마시리즈 우표에서도 대중문화는 푸대접받았다. 테마우표는 역사가 길다. 1960-70년대에도 경제개발, 올림픽, 전국체전, 동물, 민속, 관광, 동화, 교통수단, 명화, 국립공원, 유엔기구, 민속의상, 민속예능, 과실, 조류, 화초, 나비, 도자기, 석탑, 자연보호 시리즈 등이 있었고 80년대에도 만화, 선박, 민족기록화, 국산자동차, 근대미술, 어류 시리즈 우표가 이어졌다.

대중문화인물 냉대 지나쳐

음악시리즈 우표가 처음 등장한 것은 85년. 93년까지 모두 18종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동요와 가곡, 민요가 전부다.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버섯, 야생화, 문학, 만화, 세계유산등록, 전통생활문화 등 다양한 테마시리즈 우표가 줄을 이었지만 영화와 대중가요 시리즈우표는 전무했다.

기념우표 목록을 살펴보니 영화 및 대중음악과 관련된 것은 62년 제9회 아시아 영화제, 97년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악보가 수록된 목포개항 100주년 기념우표, 98년 부산국제영화제 기념우표가 전부였다.

백남준 이전에는 우표에 담을 만한 대상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문화훈장을 받은 국민가수만 해도 여럿이고 국제가요제에서 상을 받아 국위를 떨친 가수도 많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주연배우상을 받은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넘친다. 그런데도 정부가 대중문화 인물 우표를 공식 발행하지 않은 건 지나친 냉대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은 우리와는 반대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의 경우,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참으로 다양하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가수와 영화배우 관련 우표가 너무 다양해 대중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아예 한국과 다르게 느껴진다.

우표수출로 외화벌이에 나선 지 오래된 북한조차도 96년 2월 1일 <첨밀밀>로 유명한 중국가수 등리쥔의 추모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최근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드라마 우표와 더불어 배용준, 지진희의 우표가 발행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보수적인 중국도 최근 연예인우표를 발행했다. 여성 신인가수 선발대회인 ‘차오지뉘성(超級女聲ㆍ슈퍼걸)’을 통해 중국 내 최고 스타로 발돋움한 리위춘이 주인공이다.

국가마다 기념우표 발행에는 나름의 기준과 잣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를 대하는 시각이 너무 편협한 것 같다. 이름마저 우리에게는 생소한 가이아나, 챠드 국가에서 HOT와 핑클의 우표를 지난 2000년에 발행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소속 기획사의 상업적 홍보전략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2001년 4월부터 시행한 ‘나만의 우표’는 개인의 사진, 기업의 로고 등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우표에 담는 신 개념의 우표서비스. 배호 등 몇몇 가수의 팬클럽이 개별적으로 우표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기념우표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단순히 우표라는 한정된 개념을 넘어 당대 역사의 기록으로 인정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남준의 특별우표 발행이 대중문화계에 뜻이 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올해 1월 영국은 비틀즈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전 세계의 비틀즈 팬들이 그 우표를 구하려고 난리였다. 이제 우표는 그 나라의 문화 아이콘이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가고 있다. 훈장을 받은 국민가수들, 국민배우들,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영화감독과 배우, 가수들의 기념우표는 충분히 발행될 만하다.

이메일 문화가 정착되면서 우표 사용이 급격히 줄자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표수집가들의 관심을 끄는 수집용 테마 및 시리즈 우표의 양산 등이다. 백남준의 우표를 시작으로 한국대중문화인들의 기념우표도 줄을 잇기를 기대한다.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칼럼니스트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