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의 어머니는 그렇게 살았더라한 여인네의 삶으로 반추한 한국전쟁의 비극적 역사

원작자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차라리 잠시 잊어버려도 좋다. 원작의 배경인 17세기 독일의 30년 전쟁이 20세기 한국전쟁사로 옮겨진 번안작품이라는 사실도 차라리 잊어버려라.

이윤택 번안, 연출의 손을 거쳐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의해 무대에 오른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개성을 내뿜는 작품이다. 마치 ‘연출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웅변하기까지 한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이윤택의 색깔이 묻으면서 연출의 영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이 공연은 장르부터가 당혹스럽다.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노래 부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뮤지컬로 보기에는 또 대사가 너무 많다.

우리식 노래극이라 부르기에는 서구문화의 냄새가 심심찮게 스며나오고, 외국의 원작을 단순히 각색한 작품이라 보기엔 우리 특유의 정서와 시대배경이 극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대사에서 느껴지는 판소리식 발성이나 노래, 오광대의 몸짓 등은 관객들에게 그리 익숙치 않은, 독특한 퓨전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국여인네의 끈질긴 생존본능을 다룬 작품이다. 이데올로기까지도 초월한 인간 내면의 속성을 증언하는, 이를테면 연극으로 쓴 서사시다. 주인공 억척어멈은 전쟁통에 자식들과 함께 마차를 끌고 다니며 잡화를 팔아 돈을 버는 억척 장사꾼이다. 빨치산이든, 토벌대든, 그에게는 단지 그의 생계를 유지해 줄 수 있게 하는 ‘고객’일 뿐이다.

군인들과 흥정을 하고,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생존과 부를 위해 오히려 평화보다 전쟁에 더 집착하는 독한 여인네다. 심지어 곁을 지키던 자식들이 이데올로기의 틈에 끼어 하나둘씩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어가도, 입술을 깨문 채 혈연관계까지 부인하며 자신의 생존을 사수한다.

이 공연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캐스팅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억척어멈 역을 맡은 김미숙은 공연이 시작된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가 아닌 억척어멈 그 자신이었다.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포와 독함을 태연자약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자식들의 처참한 주검 뒤에서 남몰래 터뜨리는 절규는 거의 동물의 울음소리에 가깝다. 이를 듣는 관객들을 전율케 할 만큼 사실적이고 강력하다.

매음녀 역을 맡은 김소희의 열연 외에도 사실상 억척어멈에게 기생하는 기회주의적 신앙인, 군목 배역의 이승헌과 상사, 미군 헌병 등으로 등장한 장재호의 호연 등 모든 배우들이 제 몫 이상을 해내고 있다.

무대미술에서부터 의상, 음악, 조명, 분장 등은 짜임새 있고 조화를 이룬다. 대극장이라는 작지 않은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그 어떤 공간의 낭비도 없이 입체적으로 세트를 채우고 동선을 설정해 현실적인 공간의 제약을 잘 극복해내고 있다. 무대 세트가 공연 내내 거의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상황마다 마치 무대와 배경이 바뀐 듯한 착각까지 드는 것은 무엇보다 적시적소에 효과적으로 구사된 음악과 조명의 덕인 듯하다. 특히 향수어린 아코디언 연주나 가면을 도입한 분장효과가 이채롭고 흥미롭다.

다만, 극적 전개가 빠른 후반부에 비해 전반부는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사전 도입, 전개부가 다소 길어 관객들을 미리 지치게 한다. 극의 전반부를 좀 더 압축한다면 어떠했을까?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대하드라마’로서의 스케일을 성공적으로 집약했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피날레다. 공연은 1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계속된다.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