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감독… 공식없는 사랑방정식임신을 위해 만난 백인 여성과 불법체류 한국 남성의 욕망과 사랑

멜로드라마의 소재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잠깐만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있는 문제다. 정답은 ‘불륜’. 실상 흔하다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멜로드라마에는 불륜 코드가 숨어있다.

평범한 사랑보다 극적인 로맨스를 바라는 ‘통속적 이야기’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문제는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을 맺게 되는지, 불륜이 그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김진아의 비디오 다이어리>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화로 데뷔한 김진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두 번째 사랑>은 일단 상류층 백인 여성과 불법체류자인 아시아 남성의 불륜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계급적, 성적 간극을 분명히 하는 영화다.

■ 계약 남녀, 사랑에 눈뜨다

이 지적인 멜로드라마는 하버드대학 영상학부 초빙교수로 재임 중인 김진아 감독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두 번째 사랑>은 <인어공주>를 제작한 나우필름과 <세크리터리>를 제작한 미국영화사 박스3가 공동 제작한 첫 번째 한·미합작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일찍이 관심을 모았다.

적은 제작비로 독립영화 방식을 고수하며 악전고투한 감독의 노력은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주목받는 여배우 베라 파미가를 주연으로, 불세출의 영화음악 작곡가 마이클 니만을 음악감독으로 끌어들이는 믿기 힘든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백인 여성 소피(베라 파미가)는 성공한 한인 변호사(데이비드 맥기니스)와 결혼한 부유한 여성이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남편의 절망으로 인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주위의 눈총으로 인해 불행한 여자다.

소피는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불법체류자 김지하(하정우)의 뒤를 쫓아 그에게 임신을 대가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신분과 환경에 놓인 남녀는 이런 기구한 사연으로 인해 만나게 된다.

김진아 감독은 계약으로 맺어진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욕망하게 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포착한다.

처음에 의무적 섹스 이외에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인간적으로 교류하게 된다. 계약 관계가 이루어지는 여관이나 다름없는 무미건조한 방이었던 지하의 좁은 아파트는 지하가 그녀를 위해 낡은 시트를 새 것으로 갈고 꽃을 사오면서 조금씩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소피가 머물고 있는 적막하지만 호화로운 집과 지하가 신분 상승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초라한 일터는 두 사람 모두에게 일종의 지옥이지만, 지하의 좁은 방은 서서히 두 사람의 천국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랑>은 불륜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만을 다루지 않고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깊이 있게 포착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시댁에 맞춰 교회에 나오는 소피는 교회를 가득 매운 한국인 이민자들의 엄숙한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남자주인공 지하보다는 여자주인공 소피의 삶에 시선이 맞추어진 탓에 영화는 소피의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소피에게 있어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곧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다른 이들의 삶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지하와의 사랑은 그러한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이제껏 그녀가 당연시 여겨왔던 희생을 일종의 위선으로 둔갑시킨다. 남편에게든 시댁 식구에게든 결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던 그녀가 변해가는 과정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그녀의 짧은 판타지로 인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족 친지들과의 엄숙한 식사자리에서 그녀의 의식 속에 잠깐 등장하는 지하와의 비밀스러운 애무의 환상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려는 소피의 마음의 행로에 다름 아니다.

■ 미래가 기대되는 감독

김진아 감독의 능란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은 영화 곳곳에 있다. 전체적으로 매끈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의 감정의 추이를 내밀하게 따라가는 섬세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두 번째 사랑>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다만 주인공 소피의 시선에 무게중심을 둔 탓에 하정우가 연기하고 있는 지하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형상화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김진아 감독은 “미국에서 마치 무성(無性)화 된 것처럼 취급 받고 있는 아시아 남성의 성을 다뤄보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을 피력한 바 있지만, 소피의 시선 아래 대상화된 지하는 주인공의 심적 변화를 추동하는 매력적인 이국인 남성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는 영화 전체에 흐르는 감정적 기류의 일관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주류가 비주류를 바라보는 무의식적 시선의 한계로 보이기도 한다. 남성보다 여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두 번째 사랑>은 독립영화 최대 축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여 호평을 받았고 김진아 감독 또한 할리우드의 대형제작사인 파라마운트와 계약을 맺고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한국 시장에서 흥행의 성패를 떠나 <두 번째 사랑>은 첫 번째 한·미합작 프로젝트로서, 한 동양인 여성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로서도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통속적인 드라마 속에 정교하게 감정을 조율해내는 범상치 않은 재능을 지닌 김진아 감독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예술영화의 영역보다 상업적 측면에서 더욱 평가를 받았다.

어찌 보면 평범한 멜로드라마에 지나지 않는 <두 번째 사랑>이 주목받는 것은 앞으로 계속될 그녀의 행보에 대한 기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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