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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潛龍(잠룡)

주역 '潛龍勿用' 기원… 세자 지칭
용은 왕의 상징… '잠룡'은 임금 즉위 전 상태
공자 "용의 덕을 가졌지만 은둔하는 사람"
박근혜 대통령은 '비룡(飛龍)'… 훌륭한 인재 만나야
  • 여야 잠룡들.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김무성 당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안철수 의원.
최근 정치권에서는 '개헌(改憲)'이 단연 화두이다. 향후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되든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개헌되든, 대권주자들은 직접적인 개헌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화두에 무심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여야의 대권주자들을 '잠룡(潛龍)'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은 세자를 지칭하던 조선시대의 언어적 관습에서 비롯됐다.

潛龍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효사(爻詞) "초구는 潛龍이니 행동(실행)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初九潛龍勿用)"에 이른다. 그런데 이 건괘 潛龍에서의 龍은 당나라 때 이정조(李鼎祚)가 해설한 것처럼 본래는 '하늘의 양기(陽氣)'를 비유한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용은 왕의 상징'이라는 관념이 투사되어, 잠룡은 '임금으로 즉위하기 이전의 상태'를 뜻하게 되었다.

주역의 乾卦는 '乾(하늘 건)'자를 쓰기 때문에 쉬운 말로 '하늘괘'이다. 그리고 옛날 동양에선 왕중의 왕을 '天(하늘 천)'자를 써서 天子(천자)라 불렀다. 천자는 하늘의 법칙, 곧 '天道(천도)'로서 세상 天下(천하)를 다스렸으니, 천도를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이처럼 건괘에는 왕 또는 천하의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필수적으로 인지해야 할 천도와 또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할 바른 처신과 마음가짐이 적시되어 있어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周나라의 周易은 변화무쌍한 세상일의 앞날을 예측하기 위한 점복서, 곧 점을 칠 때 필요한 공구서로서의 기능이 주된 목적이다. 점의 종류에는 갑골점, 별점, 시초점(蓍草占)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역은 시초라는 풀나무(나중엔 댓가지로 대체)를 가지고 치는 시초점과 결부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제신(帝辛)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거머쥔 후, 점의 재료는 전반적으로 동물에서 얻는 갑골에서 식물인 시초로 바뀌었는데, 그 결과 많은 거북과 소 등의 짐승들이 점으로부터 구제되었음은 물론이다.

주역 총 64개의 괘 중, 첫 번째 괘가 바로 잠룡이 등장하는 건괘로, 제1번괘인 건괘가 주역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세 개의 긴 횡선들이 합쳐진 三이 위아래 두 단(6선)으로 중복된 모양이 주역의 건괘인데, 건괘의 횡선은 모두 여섯으로 '6층' 구조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건괘 전체에 대해서는 주나라 문왕(文王)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고 개략적 설명을 해놓았고, 6층 구조의 여섯 개 선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단(周公旦)이 효사(爻辭)의 설명을 달아놓았다. 그리고 후에 공자와 주자 등이 그 설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해 놓았다.

元亨利貞은 하늘의 네 가지 도(법칙, 근본원리)나 덕을 말하는 것으로, 글자 하나하나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어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선 '元→亨→利→貞…' 식으로 화살표를 넣어 바라보아야 한다. 즉, 元(시초: 만물이 최초로 生함, 봄)→亨(형통: 만물이 잘 자람, 여름)→利(이익: 수확함, 가을)→貞(솥: 저장, 겨울)의 순서대로 끊임없는 순환을 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점을 칠 때 건괘는 다시 여섯 개의 경우로 나뉜다. 즉, 건괘가 나오되 여섯 개의 가로획(六爻) 중 하나의 효가 변하면(또는 동하면) 그 변한 효사(爻詞)로써 점을 본다. 재미있는 것은 '건괘=하늘괘=천자(龍)괘'인 고로 6층 구조를 층별로 설명함에 있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육룡이 날으샤"처럼 여섯 마리의 용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장 아래층부터 ①잠룡(潛龍), ②현룡(見龍), ③건건룡(乾乾龍), ④약룡(躍龍), ⑤비룡(飛龍), ⑥항룡(亢龍)이 바로 그것이다.

용은 왕의 덕을 상징하는 것이자 또한 탈 것이다. 위 6룡은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타고 다니는 투르크막토 같은 왕의 탈 것이다. 주역에 따르면 왕은 여섯 가지의 다른 상황, 곧 때의 변화에 따라 각각 다른 용을 타면서 처신해야 이롭다고 한다.

본인이 점을 쳐 건괘 잠룡의 수가 나올 때의 점사(占辭)는 "아직 물속에 잠겨 있는 용이므로 세상에 쓰이려 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이롭고 함부로 나서면 불길하다"이다. 다른 이의 점을 쳐 이 괘가 나왔으면 그를 쓰지 말아야 길하다. 공자는 "용의 덕을 가졌지만 은둔하는 사람으로, 세상 따라 변하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 하지도 않으며, 은둔하면서도 근심이 없고 인정을 받지 못해도 번민하지 않으며, 뜻을 펼 수 있는 좋은 세상이면 도를 행하고 걱정스런 난세이면 행하지 않으며, 의지가 확고하여 그 뜻을 앗아갈 수 없는 이가 潛龍이다"라고 해석하였다.

건괘의 두 번째 見龍의 見은 '볼 견'이 아니라 '나타날 현'으로, 밭(지상)에 나타난 용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군자의 덕을 널리 베풀고 현인들을 만나는 것이 길하다. 세 번째는, 용이 지상에도 있지 않고 하늘에도 있지 않은 어정쩡한 상황으로, 이때는 종일토록 힘쓰되 두려워할 줄 알면 위태롭더라도 허물이 없다. 네 번째는, 때에 맞춰 뛰어오르기도 하거나 연못에 있기도 하는 도를 닦는 용의 상태로 이때는 별 허물이 없을 것이다. 다섯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대권을 성취해 하늘을 나는 용의 상태로 훌륭한 인재를 만나는 것이 이롭다. 여섯 번째는, 너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하늘 끝까지 올라가 후회하는 항룡(亢龍)으로, 이때는 과욕을 삼가는 것이 이롭다.

이처럼 현대의 잠룡인 대권주자들은 앞으로 여러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세간에 회자되고 있으면 잠룡에서 나아가 드러난 현룡의 상태이니 초심의 변함없이 널리 덕을 베풀고, 나서야 할 때는 과감히 나서고 물러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물러설 줄 알며, 세상의 훌륭한 인재들을 두루 살펴 교류하고 지나친 욕심을 삼간다면 분명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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