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도 없었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 알고보니 자식들에 약한 모습 감추려$

아들 속의 아버지.

타협이 사라진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는 경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더이상 자식의 지혜가 되지 못하는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주간한국>은 따듯한 감성의 기족 이야기를 애정 어린 필체로 풀어놓으면서 온가족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민호 작가의 글을 이번주부터 격주로 소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필자의 작품들을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로 재각색한 주옥 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 삶의 영원한 디딤돌인 가족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미래 자동차 서비스 앞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기름이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육중한 도어가 둔탁하게 닫히며 검은 양복의 신사 한분이 내렸다.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서기영 사장님이신가요?” 신사가 굵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렇습니다만$” “미래 자동차 국내 총괄본부장입니다.” 깜짝 놀랐다. 국내 총괄본부장이라면 대리점 사장으로서는 최고 사령관급의 상관이다. 서기영은 얼른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전무님께서 찾아뵈라고 해서 왔습니다.” 정중한 것은 본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커피를 나누면서 얘기도 나누기 시작했다. “전무님께서 서 사장님을 이번에 개설되는 미국 미래자동차 서비스 지사장으로 모시고 오라는 지시가 계셨습니다.” 서기영은 멍했다. 자다가 홍두깨 맞는다더니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저를요? 미국 지사장? 영어 한마디 못하는 제가?$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닌가요?”

서기영은 정색을 하고 본부장에게 물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전무님께서 서 사장님의 아버지 말씀을 하시면서 꼭 모셔오라 했습니다.” 본부장은 의외로 진지했다. 더욱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 말씀이라니$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5년이 넘었는데$ “저$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습니다. 뭔가$” “서대선씨 아니신가요? 아버님 존함이?$” “맞습니다만.” “그리고 막내 아드님 되시고요.” 맞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미래자동차 전무와 알만한 분이 아니었다. 사업했던 분도 아니었고 돈도 학벌도 전무님의 레벨이 아닌 분이었다. 본부장은 서기영에게 대략의 설명을 했다. 미국에 서비스 신규 지사를 낸다는 것. 미국시장에서 판매경쟁을 하는데, 미래 자동차가 기술력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서비스 측면에서는 요원하다는 것. 그래서 고객감동을 할 수 있는 혁신적인 지사장을 찾고 있다가 전무가 서 사장을 찍었다는 것. 서기영의 아버지 말씀을 하였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조건은 아주 좋았다. 현지 통역이 있으니 영어 걱정은 없고 아이들 학비, 주거비 등도 다 보조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고객감동$? 귀신에 홀린 듯했다. 서기영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 서대선씨$

아버지를 추억해 보았다. 감동이란 것이 없었다. 자식들에게 별 말씀도 없으셨고, 늘 늦으시거나 술을 드시다가 집에 안 들어 오신 날도 많았던 기억이 났다. 무섭기만 했던 분. 어머니는 아버지를 시아버지같이 어렵게 여기셨다. ‘엄부자친’. 올바른 가정교육이란 모름지기 아버지는 엄해야 하고 어머니는 자상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철학을 머릿속의 큰 짐으로 이고 계신 분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농민은행에 다니셨는데, 당시 선망의 직장이라고는 했지만 월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농민 상대에 늘 살림이 어려웠다. 형들은 어쨌든 대학이라도 나왔지만, 형편이 어려워져 기영은 공고를 졸업하여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다. 흙수저$서기영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기영은 때때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었다. 돈도 빽도 없이, 오로지 나 홀로 일어서야 했던 고달픔. 오로지 열심히 일했다. 말단직원으로 취직하여 대리점의 사장이 되었으니 나름 성공은 한 셈이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스러울 것도 없는데 별안간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 고심 끝에 마음을 정했다. 어쨌든 가자. 미국으로.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랴. 모처럼 아버지 노릇 한번 해보자. 서기영은 오랜만에 이발소를 찾았다. 미국이라는 세련된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머리 정도는 깎아야 할 것 같았다. 평생 기름복만 입었지 양복도 없었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모처럼 거울 앞에서 보는 40대 말의 자신이 부쩍 늙어 보였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 벗어지는 이마, 늘어나는 주름살$ 면도를 하기 위해 무심코 거울을 보던 기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울 속에$거울속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막내가 가장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했었다. 그런 아버지가 거울 속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후 기영은 미국으로 떠났다. 샌디에이고였다. 멕시코와 접경지역에 있는 샌디에이고는 기막힌 절경을 자랑하는 태평양 1번 해안도로를 따라 종주하는 자동차 여행객들이 많았다. 책에서나 보았던 전 세계의 자동차들을 즐비하게 볼 수 있었다. 나날이 진화하는 자동차 기술경쟁에서 한국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도전도 많았다. 인터넷과 SNS상으로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서비스 경쟁은 혈투 그 자체였다. 미래 자동차가 그만큼 세계적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들기도 했지만 하루하루가 바빴다.

어느 날, 급작스럽게 1번 하이웨이에서 연락이 왔다. 미래 자동차가 도로상에 정차해 있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레커차를 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렌터카였다. 운전자는 황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키 큰 백인. 독일인이라 했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전형적인 게르만인의 모습이었다. 정신을 몰입하여 수리에 열중하는 서기영을 독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기영은 베테랑이었다. 어려운 정비였지만 최선을 다해 끝냈다. 온몸이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리가 끝나자, 기영은 독일인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완벽하게 고쳤으니, 걱정마시고 여행을 즐기십시오.” 그는 독일인 드라이버에게 두 번, 세 번 인사를 하고 현장을 떠났다. 수리비는 받지 않았다. 미래자동차였기 때문이다. 기록에도 남기지 않았다. 사흘 후였다. LA본사로부터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해외 총괄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전무가 있는 곳이다. 뜻밖에도 서기영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사흘 전 1번 하이웨이에서 보았던 독일인 운전자였다. 가슴이 덜컥했다.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이 불길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독일인이 서기영을 보자 전무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맞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제 차를 고쳤지요.”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벤츠자동차 바이에른 주 사업 이사. 어마어마한 직함이었다.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독일인이 말했다. “이 사람입니다. 본부장님. 저는 그렇게 자동차를 단시간 내에 능숙하게 수리하는 기술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자사 자동차 고장에 대해 예의바르게 사과하는 직원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아들이 잘못한 것을 사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벤츠도 고장은 납니다. 그러나 고객의 감동은 얼마나 정성껏 치유해 주느냐에서 우러나오지요. 저는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벤츠 자동차의 고장을 상호 수리하는 협약을 제안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전무의 안면에 함박웃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오, 감사합니다. 샌디에이고 지사장이지요. 미래 자동차 임직원들은 모두 저렇게 성실합니다. 벤츠와 업무협약을 맺는다면야 정말 대단한 영광이지요.” 그러면서 자부심과 애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서기영에게 말했다. “수고했네요. 서 사장. 벤츠 회사의 이사님이 이렇게 감동을 하셨다니$ 그래 어디가 고장이 났었나요?“ 서기영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서기영이 입을 열었다. “저$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미래 자동차가 고장이 났었다고요? 저는 이 분 차를 수리해 준 적이 없습니다. 벤츠 자동차도 고장이 난다고 하시는데 미래 자동차는 그런 고장은 없습니다. 무슨 착각이 계셨나 봅니다.” 독일인의 크게 뜬 청자빛 두 눈이 뚫어지게 서기영을 쳐다보았다.

“미래 자동차 렌터카 수리를 안하셨다고요? 사흘 전 1번 하이웨이에서?” “무슨 착오가 계셨던 모양인데, 미래 자동차는 고장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다른데 가서 미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했다는 말씀은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자동차가 고장나다니요$.” “오. 이런, 이런$ 이럴 수가$.”

독일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서기영과 전무를 번갈아 보았다. 전무가 서기영의 눈빛을 그윽히 쳐다보다 말문을 열었다. “그렇군요. 고객께서 무슨 착각이 계셨나 봅니다. 혹 다른 회사 차가 아닐까요? 미래 자동차가 고장 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무도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독일인은 한참동안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조용히 사무실을 떠났다. 전무가 벌떡 일어나 서기영을 와락 껴안았다. “죄송합니다. 회사에 누를 끼쳐서$벤츠자동차라고만 하지 않았어도$그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서기영에게 전무가 가만히 속삭였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 $” 전무는 차 한 잔을 하자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서대선씨. 아버지 맞지요? 저는 서대선씨를 잘 압니다.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농민은행에 다니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서대선 선생 밑에서 금전출납 일을 배웠대요.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고객에게 돈을 잘못 지불하는 실수를 하였답니다. 정확성과 신용은 금융기관의 생명이잖아요. 문책과 함께 배상을 해야 했대요. 그런데 다음날 그 고객이 잘못 받은 돈을 반환하러 왔답니다. 살았다 싶었대요. 돈을 회수하려는데, 서대선 선생이 나타나셨답니다. 그런데 서대선 선생님 행동이 너무도 의외였답니다.

‘고객님. 지금 무어라고 하셨지요? 우리 농민은행이 돈을 잘못 지불해서 반환하러 오셨다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계산을 잘못하다니요. 아닙니다. 손님은 정확하게 받으실 돈을 받으신 겁니다. 절대로 농민은행 돈을 잘못 받아서 반환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하면서 돈을 되돌려주고 대신 물어냈다는 거였어요. 감독자인 내 잘못이라 하면서$그때부터 아버지는 서대선 선생이라면 평생에 걸쳐 가장 존경하는 멘토로 여기며 따랐습니다. 돌아가셨을 적에도 3일 내내 상가에 계셨죠.”

서기영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까맣게 모르던 아버지 말씀을 이곳에서 전무에게 듣다니$ “우리 아버지는 농민은행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지요. 그것이 서대선 선생 덕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잊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정작 서대선 선생은 생활이 어려웠지요. 그토록 청렴하셨으니$아이들 가르친다고 밤마다 숙직을 도맡아 하셨다지만 그게 무슨 큰돈이 되었겠어요.” 전무는 지난번 미국 지사장을 인사카드에서 살필 때 서기영의 아버지가 서대선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릎을 쳤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살아나신 서대선 선생을 보았네요. 이게 우연일까요?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그때 받은 감동이 바로 오늘 같았을 것 같아요. 당신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군요. 당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소이다. 그려$” 서기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아버지가 그런 분이셨나? 회상의 편린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머리를 스쳤다. 그랬구나. 술 마시고 안 들어오는 날 숙직을 도맡아 하신 거였구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그렇게 무뚝뚝하셨구나. 아. 흙수저인 줄만 알았던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 아버지의 그런 책임감, 성실성, 감동이 있는 영감$백만불짜리 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서기영은 가슴이 사무쳤다. 한 달 후였다.

독일의 벤츠 자동차 회장명의로 전문이 하나 도착했다. 조건없이 상호 수리 업무협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서였다. 서기영은 출장을 신청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불현듯 보고 싶은 분. 아버지 산소를 찾아뵙기 위해$.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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