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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③ 인간의 영혼

③ 인간의 영혼
타협이 사라진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는 경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더이상 자식의 지혜가 되지 못하는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주간한국>은 따듯한 감성의 기족 이야기를 애정 어린 필체로 풀어놓으면서 온가족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민호 작가의 글을 격주로 소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필자의 작품들을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로 재각색한 주옥 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 삶의 영원한 디딤돌인 가족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남성과 여성이 아득히 먼 우주의 각각 다른 행성에서 영혼의 원천이 비롯되었다는 비밀을 알고 있을까?

인간에게 내재하는 본능의 원천이 어딘가의 알 수 없는 별들에게서 비롯되어 그들을 탐구하는 우주적 욕구가 그런 영혼의 발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태초에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행성에서 지구적 개념의 망원경과 현미경을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들에게 그런 차원의 시각 능력은 모태에서부터 타고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킬로미터 단위로 떨어진 물체나 미크론 단위의 미생물을 식별하는 수정체의 능력은 수만년의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이었다. 이들은 광년단위 거리에 있는 행성의 표면을 육안으로 살피는가 하면 개미다리에 기생하는 벼룩의 미토콘드리아까지도 관찰한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투시능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그들의 시력은 그것으로 한계를 보이지 않는다.

3차원의 시상체를 1차원으로 분해하여 이해하는가 하면, 초속 수킬로의 순간 이동체라도 그들의 망막에서는 슬로 모션으로 변환되어 투사시킬 수 있다. 그들은 눈이 유난히 크고 깊은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시각적 능력을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경탄해마지 않을 일은 그들의 놀라운 심미안이다. 그들 세계에서 무지개는 7가지 색깔이 아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색상의 범위는 가시광선을 몇 배 뛰어넘는 것이라서, 말하자면 색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플라스마라는 현상으로 작용되는 불이라는 존재 속에 몇 가지의 색깔이 포함되어 있는가는 의문이 아니다. 무지개에서 17가지 자외선과 적외선을 분구별해 내는 그들의 세계에서 우주는 이른바 색의 예술품이고 빛의 창조물이었다. 그들의 환경과 구조물 중 경이로운 예술적인 구성체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들의 삶 또한 이채로웠다. 극세밀의 관찰을 통한 과학적 원리와 응용으로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이 정교한 도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고요했다. 그들에게 우주는 한없이 고요한 공간이었다. 세상이 고요한 인자가 있었다. 그들은 들을 수 없었다. 듣는다는 개념은 초능력이라고 분류되는 상상의 산물이었다. 들리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느낌은 공상에서조차 실재하지 않는 감각이었다. 그곳은 빛의 행성, 그들은 볼 뿐인 생명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이 관찰해 왔던 행성에, 전혀 비과학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어 언젠가는 탐사해 볼 것이라는 야심을 잊지 않고 살아온 것이….

그 행성은 무질서 그 자체처럼 보이는 미개한 것이었다. 빛도 색깔도 형체도 없이 그저 암흑뿐이어서 저 행성에서는 무엇인가가 생존하고 있는지 관찰조차 쉽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변화라는 것이었다. 암흑 속에서도 움직이고 있었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무엇인가가 살고 있었다….

그곳에 생명이 있었다. 그들은 수 킬로미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고주파 청진기로나 들을 수 있는 미세음도 그들의 고막은 감지할 수 있었으며, 인간의 가청범위를 까마득히 벗어난 소리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들리면 거리를 잴 수 있었다. 어떠한 물체도 자체적으로 내는 음파와 두드려서 나오는 소리로 파악했고, 만져서 그 원리를 터득했다. 우주 안에서 발생하는 수없는 음파나 전자파는 그들의 삶의 원자재였다.

그들 세계에서 들리는 그 경탄스런 소리들. 그것은 어디에서도 비견될 수 없는 울림의 아름다움이었다. 음악은 그들에게 예술이전에 생존의 일상이었다. 모든 소리는 음악으로 승화되었다. 소음이라고 분류되는 소리는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로 그들은 행복을 충만시키며 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경이는 언어였다. 어휘적 표현으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사건은 없었다. 음성으로 전달하는 소통의 정확성, 속도와 함께 운율이 고려된 언어를 듣고 있노라면 걸작의 오페라를 매순간 듣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는 빛이 없었다. 있어도 무의미했다. 빛을 소용되게 하는 기관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눈이 없었다. 눈과 시각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그들 세계는 깜깜할 수밖에 없었다. 암흑이라 해서 불편함이란 없었다. 손의 감각과 귀의 능력이 빛을 대신하고도 남았다. 듣고, 만지면서 그들은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었다. 눈은 없고 귀가 크고 깊은 그들의 모습. 그곳은 소리의 행성이었다. 운명의 날이 닥쳤다.

수만 년을 진화해 온 빛의 행성인들은 암흑의 행성을 탐사라기보다 정복하기 위해 발진하였다. 그들은 최첨단 영상과 광학장비로 무장하고 암흑의 행성으로 출발하였다. 그들의 기준으로 볼 때, 그곳이 원시문명일 것이라는 추측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정교한 레이더 장치로 반사되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그들은 암흑의 행성으로 접근해 갔다. 가시범위에 행성이 포착되자 착륙을 서둘렀다. 이때.

보이지 않던 암흑의 세계에서 의미있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체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장비가 그들을 향해 조준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호 접촉 가능한 거리에 근접했을 때, 양쪽의 무기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피차가 놀라운 조우였다.

빛의 행성인들은 암흑의 세계에서 정확히 자기들을 조준한 포격이 있다는 사실에 뒤집어지게 놀랐고, 소리의 행성인들은 들리지 않는 거리에서 자기들을 향해 무엇인가 정확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까무러치게 놀랐다.

빛의 행성인들은 암흑의 행성에 요란하게 착륙했다. 색깔도 형상도 없는 암흑의 별에서, 그들은 미세하게 보이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소리의 행성인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소리들을 경청했다.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들리는 악의적인 소리에 대해 모두 공격했다. 눈의 인간들은 보이는 대로 공격하고, 귀의 인간들은 들리는 대로 방어했지만, 기습과 방어라는 시차가 있었다.

소리의 행성이 궤멸되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표적을 명중시키는 적들의 공격은 상상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소리의 행성인들은 장거리 공격에 취약했다. 빛의 행성인들은 숨어서 공격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격은 더 쉬워졌다. 청각은 시각에게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빛의 행성인에게 애로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빛이 전혀 없는 세계에서 시각이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리의 행성을 장악하기 시작하였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발견하기 전에 발각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각의 행성인은 스스로 내는 소리에 무감각했다. 그들의 무기는 엄청난 소리를 내고 있었고, 대화를 통한 통신이라는 것이 없었다. 반면에 청각의 행성인들은 기민한 통신이 있었다. 반격의 기제였다.

그들 세계 차원 속의 시간이 흘러갔다. 전쟁의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세를 보였던 시각인들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저히 관찰되지 않는 지하로부터 기습공격이 있곤 하였다. 들리지 않는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치는 땅굴기습에는 대처 방법이 없었다.

청각인들은 지하가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하로 숨어들어 시각인들의 위치를 잡아내고 폭파하였다. 아무리 큰 소리로 접근해도 그들은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땅굴 밑에서 소리를 죽일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각의 행성인들은 무지하게만 보았던 이 암흑의 별에 이렇게 무서운 방어력이 있다는 사실에 실로 놀랐다. 시각의 사람들은 얼굴 옆에 붙어있는 커다란 무엇으로 상대방을 움직이는 그들의 능력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만의 교신 방법으로 긴밀히 협동하는 그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초능력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되었다.

소리의 행성인들은 전혀 들리지 않는 방법으로 교감하고 있는 빛의 행성인들이 신비스럽고 무서웠다. 공격에 관한 한, 그 정확성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을 초월한 존재라고 느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었다. 포성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추어졌다. 그리고 시각의 세계인들은 철수를 시작하였다. 청각의 세계인들은 단지 듣고 있을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암흑의 세계와 고요의 세계는 서로 조용히 물러섰다.

기적적인 역사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시각의 행성인들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암흑인들에게 초능력이 있지만 자신들과 비슷한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각의 행성인들도 긴밀히 탐색하여 마찬가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DNA와 공통 DNA가 상호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초능력의 비밀을 알고 싶었고, 그것을 서로 보유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빛의 세계에서 먼저 결단을 내렸다. 선발된 시각의 사람들이 용감하게 청각의 세계에 파견되었다. 도착했을 때, 그들은 손뼉을 치며 청각인들에게 접근하였다. 청각의 인간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수소리를 내며 접근하는 시각인들을 청각인들은 함께 박수를 치며 환영하였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상대방은 내가 가지지 못한 초능력이 있다는 것과 나는 심각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이해했고 배려하였다. 그들은 공통의 감각을 찾아내었다. 스킨십이었다.

시각인과 청각인들은 손을 잡고 서로의 느낌을 전했다. 촉각은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촉감이 공통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교합이 있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다. 2세는 놀라운 생명체였다. 보고,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존재체였다. 2세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소통을 담당하였다. 보고 듣는 개별능력은 부모보다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두 개의 능력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었다. 부모세대는 2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다. 시각과 청각의 부모는 새로 탄생한 2세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푸르른 빛과 아름다운 선율과 사랑의 손길이 있는 곳. 2세들의 행복한 이주가 시작되었다. 지구였다.

지구의 인간들은 갖추었지만 부족했다. 볼 수 있지만 착각했고, 들을 수 있지만 안 들었다. 지구의 남자와 여자는 성장해가면서 부모의 영혼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성들은 시각적 자극에 민감했고, 여성들은 청각적 감각에 예민했다. 여성의 외모에 넋을 빼앗기는 남성을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남성들의 음성에 괴성을 지르는 여성들을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의 직관력과 통찰력. 여자들의 언어능력과 감성력. 남자와 여자는 원천적 영혼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시각의 조상들이 청각의 조상을 무모하게 공격하였다가 알 수 없었던 능력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신화를, 여자들은 시각의 존재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다가 바로 밑에 파고들어 폭파해도 눈치 못 채는 무감각에 새삼 놀라고 마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되풀이되는 숙명을 체험한다.

그들은 자주 망각하고 오해한다. 존중해야 할, 같은 행성에 사는 다른 행성들의 후손이었음을 잊는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탐미하고 있다. 미술과 영화 같은 시각적 예술에 탐닉하고, 클래식과 재즈 같은 변화하는 청각적 퍼포먼스에 심취한다. 그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보고 어머니가 무엇을 들었는지 필사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늘 별을 보며 꿈을 꾼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별 속에서 꿈을 보고 꿈 속에서 별에게 속삭인다.

나는 누구인가? 먼 훗날. 영혼을 찾아 헤매던 인간이 부모의 별을 찾았을 때, 우주는 과연 어떠한 팔을 벌려 이들을 품어줄까? 부모들은,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우매한 자식들의 진화를 어떠한 눈길로 보아줄까? 자식들은, 눈을 더 뜨게 해달라고, 귀를 더 열게 해달라고, 더 큰 은총을 기대하며 세차게 매달릴까? 아니면, 부모들의 절반의 완전함을 비웃으며 어리석은 교만을 보이고 말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종말에….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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