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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의 서재] 시베리아·바이칼·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들풀과 문화 속에서 현실의 나를 찾다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송종찬 저 도서출판 삼인 펴냄
  • 송종찬 저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었던 최루탄 냄새, 두려움에 움켜쥐고 있던 깨어진 보도블록, 지극히 낯선 세상을 토로하며 마시던 카바이트 막걸리의 숙취. 상아탑의 낭만을 꿈꾸며 입학했던 캠퍼스에는 늘 긴장과 우울한 영혼의 그림자가 뒤따르던 시절이었다. 반공 교육을 받고, 냉전 시대를 경험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저자에게 러시아는 그 시기를 지나온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동경과 공포, 경외와 적대감 같은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저자 송종찬은 세 권의 시집을 상자한 중견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러시아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5년 러시아 현지에서 활약했던 조명희 시인의 시비 건립행사에 동행하면서부터다. 짧은 일정으로 마무리된 그 러시아행에서의 미련을 계속 쌓아두던 저자는 2011년 재직 중이던 회사가 추진한 러시아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자원하여,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러시아인의 삶과 문화를 깊이 목도하게 된다. “러시아에 대한 동경은 꽤나 길었는데 첫 만남은 너무 짧았다. 가슴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바이칼호수를 떠나며 야생에서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 한 송이를 책갈피 속에 넣어 왔다. 서울로 돌아와 책상 위에 횡단열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자작나무 그림을 올려놓고 언젠가 다시 러시아로 가겠다는 소박한 꿈을 키웠다”는 책 속의 술회 속에서 그의 러시아행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서 그리던 러시아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그가 맞이한 것은 해가 지지 않는 러시아의 백야와 겨울의 혹독한 어둠과 추위, 우랄산맥, 바이칼호, 그리고 눈이었다. 저자는 이 낯설고 이질적인 자연과의 조응을 통해 열악한 생존의 조건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생성하고 진화해온 슬라브적 감수성과 그 세계의 비의를 섬세하고 날카롭게 촉지해 나가기 시작한다.저자는 시인의 시선과 감성으로 혁명가 레닌과 크룹스카야, 이네사의 행적을 좇으며 사랑과 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내기도 하고, 깊고 맑은 바이칼호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슬라브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정령에 대해 상상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제정러시아 시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의 동선을 오갔던 수많은 예술가와 혁명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러시아인의 면면에 흐르고 있는 사랑과 기다림에의 열정을 소구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톨스토이의 작품들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이 구체적으로 소환되어 저자의 소회를 돕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표피적 감각으로 외국의 문물에 대한 인상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육화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관적인 해석과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의 풍부한 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효과적으로 동원된다. “러시아는 장편의 나라다. 긴 겨울과 대륙의 빈 공간을 시로 채우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많은 시인이 절명한 이유는 광활한 시간과 공간을 시로 다 채울 수 없어 좌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견딘다는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작가와 함께 러시아혁명을 돌아보며 과거의 영화를 품고 현실을 순박하게 살아가는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의 모습을 현실의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은 에세이라기보다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과거 꿈 꾸었던 세계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감정 속에서 한없이 낭만적이 되고, 젊은 시절 느꼈을 따스함이 솟아난다.

조상현 주간한국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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